시들지 않는 꽃 4장. 폭우 속 안골로 향하는 길
나는 현관문 손잡이를 잡고 잠시 멈춰 섰다.
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문을 열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한 가지 생각만 계속 맴돌았다.
으니를 찾아야 한다.
그 아이가 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었다. 왜 하필 이런 날 수내리 안골로 갔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누군가는 그 아이를 찾아야 했다.
나는 우비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정우야.”
뒤에서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순간 멈칫했다.
천천히 돌아보았다.
엄마는 거실 문 앞에 서 있었다.
언제 돌아온 걸까.
“너 지금 어디 가려고 하는 거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엄마는 내 손에 들린 손전등과 배낭을 보았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설마…… 안골에 가려고?”
“엄마.”
“안 돼.”
짧고 단호한 말이었다.
“지금 산에 들어가는 건 위험해.”
“으니가 거기에 있을 수도 있어.”
내가 말하자 엄마 표정이 굳었다.
“정우야.”
“엄마도 알잖아. 그냥 기다리고 있을 수 없다는 거.”
“네가 경찰도 아니고, 어른도 아니야.”
“그래도…….”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으니는 혼자잖아.”
그 말을 듣자 엄마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빗소리만 거실을 채웠다.
한참 뒤 엄마가 조용히 말했다.
“너는 왜 그렇게 그 아이에게 마음이 쓰이니?”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왜일까.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수상한 아이.
마을 사람들이 이상하게 바라보는 아이.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으니가 어떤 비밀을 숨기고 있든.
누군가가 그 아이를 찾아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결국 고개를 숙였다.
“민우 형한테 연락은 했어?”
“안 돼.”
“그럼 혼자 가지 마.”
엄마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최소한 민우 형하고 같이 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형도 아마 갔을 거야.”
“뭐?”
“으니 찾으러.”
엄마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 아이까지…….”
그 순간.
밖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낡은 트럭 한 대가 집 앞에 멈춰 서 있었다.
차 문이 열리고 누군가 내렸다.
“정우야!”
나는 깜짝 놀랐다.
“민우 형?”
민우 형은 온몸이 젖은 채 현관 앞으로 뛰어왔다.
“너 설마 혼자 가려고 했냐?”
나는 놀라서 물었다.
“형, 어디 있었어?”
민우 형은 숨을 고르며 말했다.
“으니 흔적을 찾고 있었어.”
“흔적?”
형은 손에 들고 있던 작은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안에는 낡은 천 조각 하나가 들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바라보았다.
“이게 뭐야?”
“으니가 입고 있던 옷 조각.”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어디서 찾았는데?”
민우 형은 창밖 산 방향을 바라보았다.
“안골 입구.”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럼 으니는…….”
“아마 안골 안쪽으로 들어갔어.”
민우 형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리고 누군가가 따라간 흔적도 있었어.”
“누가?”
형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배낭에서 작은 수첩을 꺼냈다.
수첩에는 여러 가지 그림과 글자가 적혀 있었다.
“형, 이거 뭐야?”
“조사 기록.”
“언제부터 조사한 거야?”
민우 형은 씁쓸하게 웃었다.
“네가 둔갑여우 이야기에 빠져 있을 때부터.”
나는 어이가 없었다.
“형, 진짜였어?”
“뭐가?”
“둔갑여우.”
민우 형은 잠시 침묵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처음에는 전설이라고 생각했어.”
“그럼 지금은?”
형은 창밖 어두운 산을 바라보았다.
“지금은 모르겠어.”
“왜?”
“증거가 너무 많아.”
민우 형은 수첩을 펼쳤다.
거기에는 사진 몇 장이 붙어 있었다.
낡은 돌탑.
폐허가 된 절터.
그리고.
꽃 한 송이.
나는 사진을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이 꽃…….”
“이상하지?”
민우 형이 물었다.
사진 속 꽃은 분명 겨울에 찍힌 것처럼 보였다.
주변에는 눈이 쌓여 있었다.
그런데 꽃은 시들지 않고 피어 있었다.
“말도 안 돼.”
내가 중얼거렸다.
민우 형이 말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걸 ‘시들지 않는 꽃’이라고 부르는 거야.”
나는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으니가 이 꽃 때문에 간 걸까?”
“그럴 가능성이 있어.”
“왜?”
민우 형은 조용히 대답했다.
“으니가 남긴 메모에서 이 꽃 이야기가 나왔어.”
“메모?”
형은 낡은 종이를 꺼냈다.
젖은 종이 위에는 삐뚤삐뚤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꽃이 사라지면 안골도 사라진다.’
나는 숨을 삼켰다.
“이게 무슨 뜻이야?”
민우 형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몰라.”
그때였다.
밖에서 갑자기 큰 소리가 났다.
쿠우우웅!
땅이 흔들렸다.
집 안의 창문이 덜컹거렸다.
엄마가 놀라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산 쪽에서 난 소리 같은데…….”
민우 형의 얼굴이 굳었다.
“산사태.”
그 한마디에 모두가 조용해졌다.
비는 더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수내리 안골 쪽에는 이미 위험 신호가 울리고 있었다.
민우 형이 배낭을 들었다.
“가야 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으니가 위험해.”
엄마가 우리를 바라보았다.
말리고 싶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신 내 손을 꼭 잡았다.
“정우야.”
“응.”
“꼭 돌아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민우 형과 함께 빗속으로 나섰다.
수내리 안골로 향하는 길.
평소 십 분이면 갈 길이었지만 오늘은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 길처럼 느껴졌다.
산길 입구에 도착했을 때였다.
민우 형이 갑자기 손을 들어 우리를 멈춰 세웠다.
“잠깐.”
“왜?”
형은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진흙 위에 발자국이 있었다.
하나는 우리 것.
그리고 또 하나.
작고 가느다란 발자국.
으니의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 옆에 또 다른 발자국이 있었다.
사람인지.
동물인지.
구분할 수 없는 이상한 발자국.
민우 형이 낮게 말했다.
“정우야.”
“응?”
“우리만 안골로 들어가는 게 아니야.”
나는 숨을 죽였다.
“누가 또 있는데?”
민우 형은 어두운 숲을 바라보았다.
빗속에서 희미한 그림자가 움직였다.
그리고 어디선가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가…….”
우리는 동시에 멈춰 섰다.
“여기는 들어오면 안 되는 곳이야.”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목소리.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였다.
그리고 숲속 그림자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바로.
으니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