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가 인간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 우리는 왜 자신을 관찰하지 않는가
오늘날 알고리즘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안다. 내가 어떤 음식을 주문할지, 어떤 뉴스에 분노할지, 심지어 며칠 뒤 무엇을 구매할지까지 기계는 놀랄 만큼 정확하게 예측한다. 인간의 행동 패턴, 생체 데이터, 무의식적인 클릭 한 번까지 분석하며 기계는 우리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그 데이터의 주인인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는 추천 목록을 따라가느라, 자신의 내면을 관찰할 기회를 잃어가고 있다.
1. 관찰의 주도권을 빼앗긴 인간
선인들의 성찰은 자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일이었다.
“나는 왜 우울한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그러나 이제 우리는 답을 기계에게 묻는다. 우울하면 추천 음악을 듣고, 건강이 걱정되면 스마트워치 수치를 확인한다. 나의 상태를 규정하는 주체가 ‘나’에서 ‘데이터’로 이동했다. 그 결과 인간에게 가장 본질적인 능력 중 하나인 관찰의 근육이 서서히 약해지고 있다.
2. 분석은 넘쳐나지만 통찰은 사라진 시대
기계는 우리를 분석한다. 그러나 이해하지는 못한다. 새벽 두 시까지 잠들지 않았다는 사실은 알지만, 그 밤의 고독이나 설렘의 무게는 알지 못한다. 분석은 패턴을 찾지만, 통찰은 의미를 만든다.
우리가 스스로를 관찰하지 않을 때 삶은 숫자와 그래프로 환원된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철학적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뇌과학에 따르면 인간이 ‘자기 자신을 인식’할 때 활성화되는 영역은 전전두엽과 #기본모드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다. 이 회로는 외부 자극에 반응할 때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바라볼 때 가장 강하게 작동한다. 다시 말해 자기 관찰은 취미가 아니라 인간 인지의 핵심 기능인 것.
이 기능이 약해지면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습관과 자극에 반응하는 자동화된 존재에 가까워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우리는 이 기능을 점점 외부 장치에 위임하고 있다.
3. 왜 우리는 자신을 관찰하기를 두려워하는가
그 이유는 단순히 편리함 때문만은 아니다. 자기 관찰은 생각보다 불편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바라본다는 것은 잘 꾸며진 자아가 아닌 가공되지 않은 감정, 불안, 질투, 공허를 만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매끄러운 세계 속으로 도피한다. 그곳에서는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 묻지 않아도 되고, 선택하지 않아도 되며, 이미 선택된 것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기계는 대신 계산해줄 수는 있어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마치며: 다시 ‘나’에게로 시선을 돌릴 때
기계가 인간을 정밀하게 모사할수록 인간의 고유함은 더 선명해진다. 그것은 창의성도, 감정도 아닌 자기 관찰 능력이다. 알고리즘의 제안을 잠시 끄고 자신의 호흡과 마음의 움직임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데이터의 객체에서 경험의 주체로 돌아온다.
기계가 나를 이해하는 속도보다 내가 나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느려지는 순간, 인간은 기술을 사용하는 존재가 아니라 기술에 반응하는 존재가 되고 마는 것이다.
이제 스마트폰 화면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라는 스크린을 켜야 할 시간이다.
#기본모드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오히려 가장 활발해지며, 자기 생각·기억·자아 인식을 만들어내는 뇌의 ‘내면 활동 회로’
(옮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