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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글

끝은 본질을 거른다

작성자-미션|작성시간26.06.08|조회수16 목록 댓글 2

끝은 본질을 거른다


사람은 시간이 많다고 느낄수록 삶을 가볍게 쓴다. 오늘이 아니라도 된다는 생각, 지금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여유가 선택을 흐릿하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중요하지 않은 일에 시간을 쓰고, 정작 중요한 말은 미루고, 꼭 해야 할 선택을 뒤로 밀어둔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무엇이 본질인지 분별하지 못한 채, 그저 이어지는 일상에 몸을 맡긴다.

그러나 끝을 의식하는 순간, 모든 것은 달라진다. 오늘이 마지막 하루라고 생각해보면, 해야 할 일의 목록은 급격히 줄어든다. 그동안 붙잡고 있던 수많은 것들이 한순간에 힘을 잃고, 정말 남겨야 할 것만 남는다. 관계에서든 일에서든, 우리는 그제야 무엇이 중요한지 분명하게 알게 된다. 끝은 시간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간을 정리해준다. 본질이 아닌 것을 자연스럽게 떨어뜨리고, 진짜 필요한 것만 남기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을 분리된 두 사건으로 보면 끝은 두려움이 된다. 그러나 그것을 하나의 흐름으로 바라보면 끝은 단절이 아니라 전환이 된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앞과 뒤가 없는 하나의 면 위를 걷고 있는 것과 같다. 우리는 어딘가에서 시작해 어딘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어진 길 위에 서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끝은 사라짐이 아니라, 방향이 바뀌는 지점에 가깝다. 이 관점에 서면, 끝을 두려워할 이유는 줄어들고, 지금을 대하는 태도는 달라진다.

끝을 떠올리는 것은 삶을 위축시키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삶을 선명하게 만드는 일이다. 시간의 유한함을 자각하는 순간, 우리는 선택을 압축하게 된다. 중요하지 않은 것은 내려놓고, 반드시 해야 할 것을 앞에 둔다. 이때 비로소 삶은 양이 아니라 질로 평가되기 시작한다. 길게 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는지가 중심이 된다.

이 변화는 거창한 결심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하루의 작은 선택에서 시작된다. 미루지 않고 전하는 한마디, 불필요한 일을 줄이는 한 번의 결정,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사용하는 태도. 이런 선택들이 쌓이면 삶은 점점 정리되고, 그 정리된 흐름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의 방향을 확인하게 된다. 끝을 의식하는 사람은 시간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삶을 정밀하게 선택하는 사람이다.

불안은 대개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서 만들어진다. 그러나 끝을 받아들이는 순간, 불안은 줄어든다. 미래를 통제할 수 없다는 두려움 대신, 지금 선택할 수 있다는 감각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더 이상 막연한 가능성에 흔들리지 않고, 현재라는 확실한 지점에 집중하게 된다. 그때 삶은 흩어지지 않고 모이기 시작한다.

결국 끝은 우리를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선별하게 만든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가를 묻는 기준이 된다. 그래서 끝은 파괴가 아니라 정리이고, 상실이 아니라 분별이다. 본질이 아닌 것을 걸러내고, 진짜 필요한 것만 남기는 마지막 기준이다.

삶은 길어서 흐려지는 것이 아니라, 끝을 잊어서 흐려진다. 그리고 끝을 마주하는 순간, 비로소 삶은 또렷해진다.

#박진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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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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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한마음 | 작성시간 26.06.09 감사히 보고 갑니다
  • 작성자김종승 | 작성시간 26.06.09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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