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 대관령
허림
바닷가 마을에 봄꽃이 다 지고 난 무렵 대관령에 갔다
이제야 노란 향기 품은 꽃들과 발가스름한 까마구 복사꽃이
폈다 밭두렁에서 봄을 캐는 아낙들이 나물처럼 환하다
오래 전에 대관령 어딘가 산다는 산막의 여자에게 편지를
쓴 적이 있다 봄이 다 지나갔다고 쓴 것 같은데 다 지나간
봄을 만나러 오지 않겠냐는 답장이 왔다
몇 번의 봄이 바닷가를 지나간 후 문득 보고 싶은 봄꽃을
보려고 대관령을 갔다가 어떤 꽃향기에 끌려 산막을 지나게
되었다 안개가 밀려오고 이내 바람이 불었고 어떤 꽃향기도
이내 흐릿해지고 서늘했다
긴 밭고랑 끝에서 그 여자 닮은 여자가 이쪽을 한참
바라보았다 이내 안개에 묻히고 밋밋한 등강*에서 한 떼의
소들이 울며 내려왔다
유월 대관령 지날 때마다 봄을 만나러 오라는 한 여자가
산다고 여태 기억하곤 한다
* 등강 : '야산 정상'을 이르는 강원도 강릉 지역 방언
-- 시집 [말 주머니] (2014)
- • <Condition-Light>, 2008, 캔버스에 유채, 193.5 x 97.0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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