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단상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돈과 멀리 떨어져 살아갈 수 없다. 먹고사는 문제에서부터 집과 교육, 병원과 노후까지 삶의 거의 모든 현실은 돈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돈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돈이 없으면 삶은 쉽게 흔들리고, 최소한의 경제적 안정조차 없을 때 인간의 마음은 생존의 불안 속에서 지쳐간다. 돈은 인간 삶의 중요한 기반이며, 때로는 인간의 존엄과 선택의 자유까지 지켜주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돈 때문에 가장 많이 싸우고, 가장 많이 멀어지며, 가장 깊이 외로워지기도 한다. 사랑하는 연인도 돈 앞에서는 조심스러워지고, 피를 나눈 형제도 유산 앞에서는 등을 돌린다. 몸은 섞어도 돈은 섞지 않고, 마음은 나눈다면서도 정작 삶의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숨긴 채 살아간다. 죽을 만큼 괴로운 일은 털어놓으면서도 경제적 어려움만큼은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쉽게 말하지 못한다.
왜 인간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일까.
그것은 돈이 단순한 물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돈은 인간에게 생존이고 안전이며 미래다. 동시에 자존심이고 불안이며 자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돈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숫자를 말하는 일이 아니라 자기 삶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드러내는 일이 된다.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말 속에는 때로 “나는 지금 불안하다”, “나는 흔들리고 있다”, “나는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마음까지 함께 들어 있다. 그래서 사람은 돈 앞에서 가장 솔직해지기 어렵다.
특히 현대 사회는 인간을 점점 더 개인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가족과 공동체가 서로의 생존까지 함께 책임지는 관계에 가까웠다. 어려우면 서로 먹을 것을 나누고, 힘들면 서로의 짐을 들어주며 살아갔다. 그러나 지금의 사회는 끊임없이 경쟁을 요구한다. 살아남기 위해 각자 버텨야 한다는 불안이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았다. 그러다 보니 사랑하는 사이에서도 계산이 생기고, 가까운 관계일수록 오히려 돈 문제에는 더 예민해진다.
그래서 “가까운 사이일수록 돈을 빌려주지 말고 빌리지도 말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그 말은 차갑게 살라는 뜻이라기보다, 돈이 인간관계를 흔들 수 있을 만큼 강한 힘이라는 현실적 통찰일 것이다. 실제로 돈은 관계 속에 기대와 책임, 서운함과 부담감까지 함께 불러온다. 빌려준 사람은 상처를 받고, 빌린 사람은 미안함과 자존심 사이에서 괴로워진다. 결국 돈보다 관계가 먼저 무너지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정말 옳은 것인가 하는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정말 가까운 사이라면 삶의 가장 현실적인 문제조차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인간은 원래 서로 기대고 살아가는 존재였다. 진짜 공동체란 즐거울 때 함께 웃는 것만이 아니라, 어려울 때 서로의 무게를 나누는 관계에 더 가까웠다. 그래서 돈 이야기를 전혀 할 수 없는 관계는 어딘가 표면적인 친밀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면 문제는 돈 자체보다 돈 앞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두려움인지도 모른다. 잃고 싶지 않은 마음, 손해 보고 싶지 않은 마음, 버려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돈이라는 현실 앞에서 인간을 점점 경계하게 만든다. 인간은 돈을 만들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돈이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원래 돈은 서로의 삶을 편리하게 하고, 교환과 협력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였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돈 때문에 관계가 갈라지고 인간다움이 흔들리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방법이 있을까. 인간의 욕망과 불안이 존재하는 한 완벽한 해결은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방향은 바꿀 수 있다. 돈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가치, 어려움을 말해도 존엄이 무너지지 않는 관계, 가진 것을 조금 더 나누려는 마음, 성공보다 함께 살아가는 삶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는 여전히 가능하다.
결국 인간을 진짜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돈 자체가 아니라 신뢰와 사랑, 존중과 연결감이다. 돈은 인간을 살게 하는 중요한 기반이지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마지막 본질까지 대신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성숙한 삶은 돈을 무시하지도 않고, 돈에 삶 전체를 맡기지도 않는다. 돈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잃지 않으려는 삶이다.
어쩌면 인간의 품격은 돈을 얼마나 많이 가졌는가보다, 돈 앞에서 어떤 사람이 되는가에 의해 결정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진짜 풍요로운 삶이란 많이 소유한 삶이 아니라, 어려울 때 서로를 버리지 않을 수 있는 삶인지도 모른다.
#박진하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