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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이 가난을 이기고 살게 했다 / 권영심

작성자미션|작성시간26.01.18|조회수34 목록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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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이 가난을 이기고 살게 했다

권영심

가끔 산악회를 따라간다. 예전엔 한 달에 두어번 갔었는데, 지금은 아주 가끔 산을 보러 간다. 수술을 거듭한 이후 산에 오르지는 못 하지만,몇 시간이라도 다른 공기와, 다른 하늘과 다른 경치를 만나는 것은 몸에 새로운 생기를 돌게 만든다.

그외 이런 저런 일로 단체 관광버스를 타는 일이 제법 있는데, 그 때마다 한결 같이 감탄하게 되는 것이 있다. 아침에 떠날 때부터 오후에 돌아올 때까지 이어지는 노래들. 요즘은 안전을 위해 차 안의 복도에서 춤을 추지 못하게 해서인지, 춤을 추는 것은 별로 보지 못 하는데 노래만큼은 절대 빠지지 않는다.

일어서지 못 하게 해도 앉아서도 줄기차게 부르고 몸을 흔든다.
어쩌면 그렇게도 지칠줄 모르고 노래를 즐길까? 참으로 한민족은 노래와 춤을 좋아하는 신명의 민족이라는 것을 깨닫곤 한다. 이런 신명은 타고나는 것이다. 우리의 유전자에 선명하게 새겨진 흥과 신명이 있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장통에서 살았다. 옷가게를 하던 부모님은 일년에 서너번은 시장 규모로 관광을 갔는데, 아버지가 갈 때는 나도 함께 가곤 했다. 아버지는 나를 항상 창가의 자리에 앉게 했고 나는 많은 것들을 보았다.

그 때 차안에서의 춤판은 정말 대단했다. 기사가 어떻게 운전을 무사히 하고 갔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지금처럼 도로가 반듯하지도 않고 엄청나게 흔들렸는데도 춤판이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는 내 옆에 앉아서 술을 마시며 박수로 함께 했다.

아마 아버지의 유전자에는 춤과 노래는 없었나 보다. 조용하고 무게있는 노래는 취중에 불렀으나, 신명에 겨운 노래는 들어보지 못했다. 엄마도 마찬가지였으나 함께 춤판에 휩쓸리기는 했다. 아버지는 절대 말리지 않았고 마치 보호자처럼 언제나 지켜보았다.

나는 정말 소란스러운 차 안에서 듣지 않고, 보지않고, 혼자만의 상상에 빠지거나 바깥의 풍경을 즐기는 법을 저절로 터득 (?) 했고 목적지에 도착해서 보는 모든 것들이 좋아서, 싫어하지 않고 따라 다녔다.

그런데 춤판은 차안에서만의 일이 아니었다. 그 곳이 어디든지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고 이어지는 춤판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았다. 남의 시선을 부끄러워할 필요도 없었다. 모두 다 그랬으니까.

계곡이나 산등성이, 공원, 심지어 절 아래에서도 여기 저기 장구와 북소리... 가끔 야외전축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 소리에 이팀 저팀 가릴 것 없이 춤추었다. 춤추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맹렬하게 추었다. 근데 말이다.

그 난장판처럼 보이는 춤사위가, 어린 눈에 참으로 아름다웠다. 나이가 들수록 가슴이 묵지근해지며 그렇게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로 마음에 물들어 왔다. 마치 꽃잎들의 휘날림같은 사람들의 춤은 상스럽거나 어지럽지 않았다.

가끔 신문 지상에서 봄의 꽃놀이, 가을의 단풍놀이의 추태라고해서 실리기도 했으나, 내 눈에는 그 어울려 돌아가는 춤사위가 거대한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 보아라. 사람들아... 우리는 억울함도, 분노도, 슬픔도, 고통도 이렇게 풀고 다시 살아간다. 아무리 핍박하고 짓눌러도 우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민들레처럼 춤추며 살아간다...보아라! 잘난 누구들아! 우리들의 춤으로 우리는 이 생을 살아간다!"

아버지의 가르침 덕분이었을까? 내가 그렇게 느끼고 알도록 아버지는 그런 춤판을, 한민족의 본질로 보았다. 그 덕분에 어렸지만, 어른들의 그 지칠줄 모르는 춤사위가 보여주는 무언가가 나를 뭉클하게 사로잡았다.

내가 어릴 때는 아주머니들이 놀러갈때 한복을 많이 입었는데, 나중에는 속치마 차림으로 춤추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런 것을 나무라지 않았다. 우리의 속치마는 몇 겹으로 여미고 감추는 것이었으니 차라리 무용복처럼 눈부시게 희게 빛났다.

나중에는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하고 그러다가 다시 춤추고... 변변한 음향기기나 악기도 없이 그저 북과 장구만 있으면 되었다. 평소에는 음전하고 쌀쌀맞기까지한 울 엄마도 그렇게 춤추었다. 아버지는 내게 나즉이 말했다.

"저 신명이 조선 백성을 살린기야. 생각해 보라우. 저 신명마저 없었으믄 조선 백성들은 무슨 힘으로 살았간?
저렇게 춤추고 노래하면서 힘든 일도, 슬픈 일도, 억울한 일도 털어내고 다시 죽을 힘을 다해 살아간 기야. 아주 옛날 책에도 나와 있디. 동이족은 밤새 춤추고 노래한다고. 우리 민족은 그렇게 모든 한과 고통을 노래하고 춤추면서 토해 냈으니 얼마나 대단한 민족이가?"

노래와 춤으로 고통을 씻어버리고 다시 삶의 기운을 내었던 우리 민족이, 대단한 민족이라고 한 아버지의 말을 나는 공부를 하면서 다시금 알게 되었다.

살아오면서 수 없이 많이 함께 다닌 모임에서 단 한 번도 춤으로 어울린 적은 없으나, 신명이 넘치는 사람들을 참 좋아한다.
웃으며 박수치면서 간혹 노래도 하는데, 아쉽게도 내 노래는 분위기를 깨는 노래가 대부분이다. 아버지의 딸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내가 신명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모든 공연을 보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고, 누구보다 열렬히 박수치고 호응하는 관객입니다. 그러니까 아마 나는 타고난 구경꾼인 모양이다.
세계에서 노래방이 가장 잘되는 나라가 우리나라라고 한다.

일본인이 가라오케를 만들었으나 그들은 혼자 노래하기를 즐기는 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노래방마저 춤판으로 만들 어 버린다. 서울에 살 때 가끔 외국인과 만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들이 한결같이 놀라는 것은 너무나 잘 노는 우리의 모습들이었다.

노래방에서 젊은이들은 아이돌 가수처럼 놀고 춤추고 노래했다.
아마 그래서 우리의 아이돌이 춤과 노래로 세계를 정복한 모양이다. 우리의 아이돌처럼 예쁘게 노래하고 춤추는 가수들이 없다. 요즘의 노래를 잘 이해할 수는 없으나 그 격동적인 댄스를 보기위해 가끔 보는데, 정말 감탄하게 된다.

타고난 유전자가 우리 민족에게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 신명이 가난의 질곡을 넘게 하고 살게했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이 무엇을 알도록 했는지, 이제는 알 나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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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진고개 | 작성시간 26.01.18 감사합니다
  • 작성자김종승 | 작성시간 26.01.19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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