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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 권력 욕망이 가득 담긴 얼굴

작성자미션|작성시간26.01.19|조회수243 목록 댓글 1

#기묘한역사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 권력 욕망이 가득 담긴 얼굴


클레오파트라 7세(기원전 69년 출생), 고대 이집트의 마지막 파라오이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라고 더 자주 부릅니다.

그녀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권력이 있고 야심 넘치는 여성 중 한 명이었습니다. 카이사르, 안토니우스, 그녀의 남동생, 아들 등 수많은 남성 사이를 오가며 이집트의 독립을 지키려 했습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군주로 길러졌으며, 이집트어, 그리스어, 라틴어, 히브리어 등 9개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했고 철학, 수학, 천문학, 정치적 권모술수도 배웠습니다.

18세 때 아버지 프톨레마이오스 12세가 죽자, 유언에 따라 10세 남동생과 결혼해 공동 통치해야 했습니다. 결혼 후 3년 동안 그녀는 남동생이자 남편인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계속 충돌했고, 심지어 시리아로 추방되기도 했습니다.

21세의 그녀는 추방당하는 것을 못 견뎌, 밤낮으로 군대를 모아 반격할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그녀는 카펫에 몸을 감싼 채 카이사르의 거처에 잠입했고, 지혜와 미모로 그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카이사르의 도움으로 그녀는 남동생이자 남편에게서 왕위를 되찾았지만, 여성이라는 신분 때문에 11세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4세와 다시 동맹을 맺어야 했습니다. 명목상 공동 통치였지만, 실제 권력은 그녀가 쥐고 있었습니다.

카이사르의 지지를 얻기 위해 그녀는 그의 연인이 되었고, 22세 때 아들 카이사리온(프톨레마이오스 15세)을 낳아 그를 카이사르의 후계자라고 선언했습니다. 25세 때 카이사르가 암살당하자 그녀는 재빨리 이집트로 돌아와 프톨레마이오스 14세를 독살하고 아들을 새로운 공동 통치자로 세웠습니다.

👸 여성의 정치 권력은 언제나 더 강력한 남성에 의존해야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기원전 41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그녀를 불렀습니다. 28세의 클레오파트라는 황금빛 대형 배를 타고,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로 변신해 그를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동맹을 맺었고, 안토니우스는 그녀를 위해 동쪽 영토를 확장해 주었으며, 그녀는 그를 위해 세 명의 자녀를 낳았습니다.

안토니우스는 그녀를 위해 아내(옥타비아누스의 누이 옥타비아)를 버리고 클레오파트라와 정식으로 결혼했습니다. 이 행동은 옥타비아누스와 로마 여론의 분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아누스와의 전쟁에서 패배했고, 그녀는 결국 유배되어 감금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로마 개선식의 전리품이 되는 것을 거부했고, 결국 독사를 이용해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한 세대를 풍미한 ‘요부’의 격렬한 삶은 38세로 막을 내렸습니다. 이후 옥타비아누스가 카이사리온을 처형했고, 이집트는 로마의 속주가 되었으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멸망했습니다.

이것이 클레오파트라의 인생입니다. 2천 년이 지난 오늘, 역사에는 그녀의 진짜 얼굴이 남아 있지 않지만, 후세 화가들은 각자 마음속의 그녀를 그려냈습니다.

화가들이 그린 클레오파트라는 왕좌에 기대어 앉아 있고, 머리에는 두 마리의 뱀이 장식된 왕관을 쓰고 있으며, 왼손으로는 의자 조각상을 꽉 움켜쥐고 있습니다. 그녀의 눈빛은 날카롭고, 입술은 꽉 다물어져 있어 파라오의 권력을 지닌 패기와 끊임없는 경계와 불안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정말 역사 속 클레오파트라 7세의 일상적인 모습일까요? 이것이 바로 권력 정상에 선 여성의 모습일까요? 모든 것은 후세 사람들이 말해 줄 것입니다.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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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종승 | 작성시간 26.01.19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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