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의모든삶
그건 너무 끔찍한일
권영심
얼마 전,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리는, 갤러리들의 큰 행사'아트 페어' 에 초대받아 지하철을 두 번 환승해서 갔다. 인천 7호선이 그 시간에 많이 붐벼서 터미날역에 내릴 때까지 내내 서서 갔다. 그런데 대림역에서 젊은 엄마가 전철 안으로 들어왔다.
그것도 아기를 앞으로 업고 띠까지 야무지게 한 모습이어서, 오랜 만에 그런 모습을 봐서인지 놀랍고 반가웠다. 전철 안은 혼잡했으나 그 마음은 다들 같았는지, 좌석에 앉은 남자어르신이 바로 일어서며 자리를 양보했다. 처음엔 괜찮다고 하더니 어르신이,
"어서 앉아요. 아기가 그래뵈도 얼마나 무겁다고. 앉아서 가요."
"그래요. 앉아요. 오늘 날도 이상하게 따뜻한데 앉아서 아기 얼굴도 좀 내놓고 숨도 쉬게 하고."
다른 할머니까지 그렇게 말하자 젊은 엄마는 냉큼 앉았다. 주변의 여러 사람들이 오랜만에 아기띠를 하고 아기를 안은 엄마를 봐서인지 훈훈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수없이 아기를 앞으로 업고 다녀서 아는데, 아무리 추운 겨울이어도 꽁꽁 싸매고 띠를 해도 어딘가 앉게 되면 아기 얼굴 을 내놓게 했다. 그리고 그 날, 날씨는 3월 들어서 가장 따뜻했고 입은 옷도 벗어서 든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엄마는 두 팔로 감싸 안은 채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선 채로 보니 우주복 모자로 푹 씌워져서 아기가 질식할 지경이었다. 모자가 아예 얼굴을 푹 싸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기의 머리카락 한 오라기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고! 아기 숨 막히겠네. 요즘 공기가 나빠서 저렇게 감싸고 다니지만 그래도 모자는 조금 벗겨 줘요."
다른 할머니가 말했는데도 젊은 엄마는 괜찮다면서 눈을 감았다. 더 이상 말 걸지 말라는 무언의 표시였다. 진짜 아기가 맞나? 그 때였다. 그 여자의 옆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이상한 소리를 지르면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모두 들었다. 개소리를.
끼깅 낑 낑낑 꺄앙 끼이...정말 요상한 소리로 우는 것은 개소리였다. 때마침 전철이 섰고 여자는 총알같이 일어나 사람들을 밀치고 나가 버렸다.
"뭐야? 아기가 아니고 개ㅅㄲ였어? 개를 저렇게 품고 다닌거야? 세상에..."
"개를 그냥 안고 다니는 것은 봤는데 저렇게 깜쪽같이 아기처럼 하고 다녀도 되는 거야?"
"에이..,너무 끔찍하다. 원 저렇게까지나."
끔찍하다면서 혀를 차는 어떤 노인의 그 말을 뱉는 심정에, 나는 격하게 공감했다. 그건 정말 선을 넘은 끔찍한 행동이다.
개를 사랑하고 식구이고 반려이지만 이 세상은 사람이 사는 세상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개를 그렇게까지 해서 데리고 다닐 이유를 모르겠다.
전철에서 반려 동물을 데리고 탈 수 없기에 그렇게 한 모양인데, 어엿한 아기 엄마인양 행동한 것은 절대 해선 안될 행동이었다. 사람의 아기가 받아야할 관심과 애정과 호의를 그렇게 이용해선 안 된다고 나는 강하게 말하고 싶다.
물론 타인의 아기보다 자신의 반려 동물을 더 귀하다고 생각할 수는 있다. 그렇더라도 사람의 아기인양 꾸며서는 안 된다. 얼마 전에 이와 비슷한 일을 직접 겪었기에 오늘의 나는 감정이 더 상했는지도 모른다.
다섯 명이 지인의 차를 타고 먼 곳의 공원에서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마침 퇴근 시간이 걸려서 엄청나게 밀리고 지체되었다. 그런데 좀처럼 화를 안 내는 운전자가 작은 소리로 욕을 내뱉았다. 그건 어지간히 화가 났다는 표시였다.
그러나 조수석에 있던 나는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앞 차가 뭔지 운전을 잘못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차의 뒷 유리창에 커다랗게 붙어있는 글귀는,
"소중한 아기가 타고 있어요! 접근 조심!"
그걸 보고 내가 이렇게 말했다.
"아빠인지 엄마인지 아기를 태우고 얼마나 조심할까요? 운전도 능숙하지 않는데..."
"그래서 참는 중입니다. 아기가 있으니 조심하나 보다..
근데 정말 저렇게 하면 민폐입니다. 저 보세요. 앞으로 빠지는 차들이 다 경적을 울리잖아요."
그런데 요행으로 우리 차가 옆 차선으로 빠져서 그 민폐 차와 나란히 가게 되었는데 운전자가 이번에야말로 욕설을 내뱉았다. 그리고 운전석의 문을 내리고 고함치기를,
"야이! 미친 여자야! 개새끼가 소중한 아기냐? 확 직이삐릴라!"
나는 못 봤는데 뒤 좌석에 탄 봉사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그 민폐차의 뒷좌석의 베이비시트에 개가 앉아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대형견이 말이다. 민폐 차는 쌩하니 달려가 버렸다.
운전자는 분해서 씩씩거리고 나는 그의 손을 쓰담쓰담하며, 아마 정말 아기가 있는데 오늘은 개를 태웠나 보다라고 누질렀다. 황당하고 어이 없었으나 그 견주에게 개는 소중한 아기였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제발 그렇게까지는 안 했으면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