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성찰의시간
씨 팔 놈이란?
권영심
요즘 어디서나 듣는 젊은이들의 말이 있는데 '씨팔'이란 말이다.어린 여학생이나 청년들, 상관없이 웃으면서도 서로 씨팔이라고 접두사나 접미사처럼 붙여 말한다.
그게 욕인지 나쁜 말인지 전혀 의식이 없이 그 말을 붙이지 않으 면 말이 안 된다. 적어도 우리 세대는 그 말을 입에 붙이지도 않았고, 씨...라는 말조차 입에 잘 담지 않았다. 어른들의 불호령 이 무서웠다.
그렇다고 우리 세대가 젊잖고 예의 바른 사람들만 있었을까? 우린 적어도 안해야 될 말은, 그래도 안 하고 살았다는 말이다. 버스 안에서, 하교하는 학생들이 하하호호 웃으며 수없이 내뱉는 씨팔 소리를 들으며 말에 대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떤 말이 어떤 연유로 생겼거나, 그 말이 수 천 년 동안 변함없이 같은 뜻,같은 느낌으로 이어져 온 말은 얼마 되지 않는다. 변함이 없이 한 뜻, 한결같은 목적의 말은 엄마, 아버지, 하늘, 땅, 바다, 나무... 정도일까?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면, 구라라는 말은 '입에서 나오는 비단 같이 아름다운 말'이라는 뜻이었다. 얼마나 말의 내용이 좋았으 면 비단이 입에서 나온다라고까지 했을까? 그러나 요즘 구라는 사람을 사기치는 말이거나 뻔한 거짓말을 뜻한다.
말은 살아 움직이는 생물같은 것이어서 사람들이 쓰지 않으면, 소멸되고 본래의 뜻이 변질되기도 한다. 아무리 좋은 말이었어도 어떤 경우에 나쁜 의미를 담아 붙이기 시작하면 그 본래의 뜻 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 중에 '씨 팔'이 있다.
옛날의 가르침에 농부아사 침궐종자(農夫餓死 枕厥種子 )라는 말이 있는데, '농부는 굶어 죽을지언정 씨종자는 절대로 먹지 않고 베고 죽는다'는 뜻이다. 굶어서 아사할지언정 농부의 마지 막 희망인 씨종자는 끝끝내 지키는 것이 사람이고 농부라는 귀한 가르침이다.
우리의 옛 농부들은 곡식을 만드는 씨종자를 목숨보다 귀하게 여겼고, 굶어서 죽을지라도 석과불식(碩果不食)을 지켰고 어떤 일이 있어도 먹지 않음을 농부의 본분으로 알았다.
그런 농경사회에서 씨종자를 먹어 치우거나 팔아서 다음해 농사 를 지을 씨앗이 없게 만드는 사람들을 능멸하는 말이 있으니 '씨 팔 놈''씨 팔 년'이었다. 그 단 한 마디를 듣는 사람은 상종할 가치가 없는 인간이었다.
거기에 다른 구구절절한 말을 붙일 필요조차 없었다. 그런데 한국어의 특징상 모든 말에 된소리가 가능한데, 씨라는 말에
ㅂ의 된소리가 입혀지니 본래의 뜻과는 전혀 다른 막된 욕이 되어 버렸다.
오늘날 가장 흔한 욕이 되어버린 '씨 팔'의 본 뜻은 아는 사람이 거의 없고, 원색적이고 모욕적인 뜻이 더해져서 듣는 이도 말하 는 이도 추하기 이를데 없다.
한국인은 전 세계에서 욕이 치명적으로 적나라하기로 그 명성이 자자한데, 욕의 내용을 하나하나 뜯어서 분석하면 오금이 저리고 분노가 저절로 치밀 내용들이 많다.
어릴 때 시장에서 생선장사를 하던 아저씨가 있었는데 싸울 때의 그의 욕에 질려서 사람들이 피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 그 남자의 욕은 정말 순도 100%의 잔인함이 진짜로 드러났다
"확 배깝데기를 갈라서 ㅊㅅㄱ를 흩어내갖고 주먹으로 둘둘 말아 망치로 조사서 젖갈을 담아도 시원치 않을 ㅅㄲ!"
이 욕을 나는 머리속에 그대로 기억하고 있는데 생선을 다듬는 칼을 쥐고 잇사이로 내뱉는 그의 얼굴은 정말이지 무서웠다. 생선 비늘이며 내장등이 흩어진 도마 위를 내리치는 그 칼의 섬뜩함이 무서워서 나는 생선을 더 먹지 못 했던 것도 있다.
반면에 작은 오뎅가게를 운영하던 부부의 욕은 맛을 더해주는 양념이나 다를바 없었다. 남편은 오뎅의 모양을 만들어 기름 솥에 넣고 아내는 건져서 펼쳐 놓고 팔았는데, 주고받는 욕설이 그렇게 재미지고 구수했다.
욕이란 하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서 굉장히 다른 느낌을 준다는 것을 나는 어릴 적 시장통에서 알았다. 그럼에도 구라는 못하더라도 내 입에서 나오는 욕설은 내 귀를 가장 먼저 울리는데 그래도 욕이 하고 싶어질까? 헤맑은 얼굴로 씨팔을 주고받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의 말이 앞으로 어떻게 변해질까를 걱정하는 일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