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의 역사]
안경은 인류의 지적 발전을 이끈 가장 위대하면서도 조용한 혁명이다. 안경이 발명되기 전, 시력이 나쁜 인간은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살아야 했다. 고대 로마의 문학가 키케로는 글을 읽어주는 노예가 없는 삶의 비참함을 토로했고, 네로 황제는 검투사 경기를 더 잘 보기 위해 녹색 에메랄드를 눈에 대고 숨을 죽였다. 10세기 무렵 등장한, 투명한 수정 공을 반으로 잘라 글자 위에 올려두던 ‘독서석(Reading Stone)’은 인간이 흐릿함에 맞서기 시작한 첫 번째 몸짓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눈에 쓰는 안경’은 13세기 후반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에서 처음 숨을 쉬기 시작했다. 유리 공예가 번창하던 베네치아의 장인들과 지식의 최전선에 있던 수도사들이 이 혁신의 주역이었다. 초기 안경은 지금처럼 세련된 모습이 아니었다. 두 개의 볼록렌즈를 동물 뼈나 대나무로 만든 테에 끼우고 못으로 연결해 코 위에 간신히 얹거나 손으로 들고 보아야 하는 형태였다. 이 기묘한 물건은 노안으로 지혜를 잃어가던 늙은 학자와 필사원들에게 기적 같은 시각적 구원을 선사했다. 당시 베네치아 공화국은 유리와 렌즈 제조 기술을 국가 기밀로 분류해 장인들을 무라노 섬에 격리할 만큼 안경 제조 기술을 독점하려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 작은 유리 조각이 인류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뒤흔든 것은 15세기,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을 만나면서부터다. 책이 쏟아져 나오자 글을 읽는 이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안경은 지식인들의 전유물에서 시장 가판대의 대중적인 상품으로 내려앉았다. 수요가 늘자 기술도 진화했다. 16세기에는 젊은 층의 근시를 교정하는 오목렌즈가 개발되었고, 18세기 영국의 안경 장수 에드워드 스칼렛이 안경테에 다리를 달아 귀에 거는 형태를 완성하면서 비로소 인간은 안경을 쓴 채 두 손의 자유를 얻었다. 미국의 벤자민 프랭클린이 돋보기와 멀리 보는 안경을 번갈아 쓰는 번거로움을 없애고자 이중초점 렌즈를 발명한 것 역시 이 무렵의 일이다. 19세기에는 네덜란드의 안과의사 헤르만 스넬렌이 시력검사표를 고안하면서, 주먹구구식으로 고르던 안경은 비로소 개인의 눈에 맞춘 정밀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서게 된다.
이 혁신의 바람은 조선반도에도 닿았다. 16세기 말 서양 선교사와 중국을 통해 흘러 들어온 안경은 구름이 낀 듯 흐릿한 모양을 뜻하는 ‘애체(靉靆)’라 불렸다. 초기에는 경주 남산에서 캐낸 고품질의 수정을 깎아 만든 '경주남석안경'이 사치품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다만 조선의 안경에는 엄격한 신분제의 예법이 얽혀 있었다. 왕이나 높은 어른 앞에서는 안경을 쓰는 것이 불경으로 여겨졌기에, 시력이 극도로 나빠진 정조 임금은 어린 세자와 신하들 앞에서 "내가 안경을 쓰는 것은 예법에 어긋나지만 글을 읽기 위함이니 이해하라"며 양해를 구하고서야 안경을 쓸 수 있었다. 신체적 한계를 극복하는 도구조차 사회적 시선을 비껴갈 수 없었던 시대의 단면이다.
20세기에 접어들며 안경은 기술적 완성도를 정점으로 끌어올렸다. 깨지기 쉽고 무거운 유리를 대체할 가벼운 플라스틱 렌즈가 상용화되었고, 항공 우주 소재였던 티타늄이 안경테에 도입되면서 착용감은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 또한 난시를 교정하는 원주렌즈와 빛의 굴절을 자연스럽게 조절하는 누진다초점 렌즈의 등장은 노화와 시력 저하로 조기 퇴직해야 했던 수많은 숙련 노동자들의 생산적 수명을 수십 년 연장하는 경제적 효과를 낳았다.
대모 실다리 안경. 안경테를 거북의 등껍질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안경으로 1500년대 김성일 선생이 쓰던 안경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안경. 1350년 경
예전에는 가끔 볼 수 있었던 어르신들의 안경집
백범 김구 선생이 쓰시던 안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