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리가 있었던 일본의 ‘유토리 교육']
일본의 ‘유토리 교육(ゆとり教育)’은 현대 일본 사회를 이해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주제 가운데 하나다. 흔히 한국에서는 “공부를 덜 시켰다가 실패한 정책”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단순한 학습량 축소 정책이 아니라 일본 사회 전체가 교육의 목적을 다시 정의하려 했던 실험에 가까웠다.
유토리(ゆとり)라는 말은 일본어로 ‘여유’, ‘느긋함’, ‘여백’을 뜻한다. 교육에서 말하는 유토리는 아이들에게 단순히 놀 시간을 늘려주자는 의미가 아니었다. 과도한 경쟁과 암기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스스로 생각하고 살아갈 힘을 기르자는 철학이었다.
이런 생각이 등장한 배경에는 전후 일본의 급격한 경제성장이 있었다. 1950~1970년대 일본은 고도성장을 이루면서 교육열도 함께 높아졌다. 좋은 대학에 가야 좋은 회사에 취직할 수 있다는 인식이 강했고, 학교와 학원, 입시가 촘촘하게 연결된 경쟁 구조가 만들어졌다. 학생들은 어려서부터 긴 수업시간과 방대한 학습량을 견뎌야 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이런 교육을 ‘쓰메코미 교육(詰め込み教育)’이라고 불렀다. 직역하면 ‘억지로 채워 넣는 교육’ 정도의 의미다. 정답을 빨리 찾고 시험 점수를 올리는 데 집중하면서 창의력과 자율성이 희생된다는 비판이 점점 커졌다. 여기에 청소년 스트레스와 학교 부적응 문제까지 사회문제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1980년대 들어 일본 사회는 경제적 풍요를 어느 정도 달성한 뒤 “아이들을 이렇게까지 경쟁시켜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교육계와 정부는 인간다운 성장, 창의성, 개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 결과 등장한 것이 유토리 교육이었다.
정책은 하루아침에 시작된 것이 아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점진적으로 추진되었고, 2002년에 가장 강한 형태로 본격 시행되었다.
대표적인 변화는 학습량 축소였다. 초·중학교 교과 내용을 약 30% 정도 줄였고, 암기 중심 내용을 덜어냈다. 수업 시간 자체도 감소했다. 여기에 완전 주5일 수업제가 도입되면서 토요일 등교가 사라졌다. 정부는 학교 밖에서 가족과 보내는 시간, 독서, 체험 활동, 지역사회 활동 등이 교육의 일부가 되기를 기대했다.
또 하나 상징적인 변화가 ‘종합적 학습의 시간’이었다. 정해진 교과서를 따라가는 대신 학생들이 환경, 국제문제, 복지, 지역사회 같은 주제를 스스로 조사하고 발표하는 수업을 만들었다. 지금 보면 프로젝트 수업이나 탐구 활동과 비슷한 개념입안자들은 당시 정책 입안자들은 일본이 산업화 시대를 넘어 창의성과 문제 해결력이 필요한 사회로 이동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정답을 많이 외우는 사람보다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가장 먼저 나온 비판은 학력 저하였다.
2000년대 초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일본 학생들의 일부 성적 지표가 이전보다 하락하자 언론과 학부모 사이에서는 곧바로 “유토리 교육 때문에 일본 아이들이 공부를 못하게 됐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실제 원인이 전부 유토리 교육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지만, 대중의 인식은 빠르게 굳어졌다.
또 다른 문제는 사교육이었다.
공교육에서 배우는 내용이 줄어들자 불안을 느낀 학부모들은 학원과 과외를 더 찾기 시작했다. 경제력이 있는 가정은 부족한 부분을 사교육으로 보완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가정은 어려움을 겪었다. 아이들에게 여유를 주려던 정책이 오히려 교육 격차를 키웠다는 비판이 나왔다. 입시제도도 문제였다.
학교에서는 창의성과 자율성을 강조했지만 대학 입시는 여전히 시험 중심이었다. 학생과 교사는 학교에서는 자유롭게 탐구하고, 동시에 시험 준비도 해야 하는 이중 부담을 안게 되었다. 교육 철학과 현실 구조가 서로 맞지 않았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본 사회에는 ‘유토리 세대(ゆとり世代)’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대체로 유토리 교육 시기에 학교를 다닌 젊은 세대를 가리킨다. 이들은 사회에 진출한 뒤 “경쟁에 약하다”, “도전보다 안정을 선호한다”, “조직보다 개인 생활을 중시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이런 평가는 상당 부분 세대에 대한 편견이라는 반론도 있다. 실제 연구에서는 유토리 세대가 협업 능력과 삶의 균형 감각이 높고, 과거 세대보다 과도한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결국 일본 정부는 방향을 수정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는 ‘탈유토리(脱ゆとり)’라는 표현이 등장했고, 교육과정을 다시 강화하기 시작했다. 줄였던 수업 시간과 학습량을 일부 회복하고 기초학력 향상을 강조했다. 다만 예전처럼 무조건 암기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창의성과 탐구라는 유토리의 철학 일부는 남겨두고, 학습량을 다시 늘리는 절충형 모델이 자리 잡았다. 그래서 오늘날 일본 교육은 유토리 교육 이전으로 완전히 돌아간 것이 아니라 그 실패와 교훈 위에서 다시 설계된 형태에 가깝다.
유토리 교육은 흔히 실패한 정책으로만 기억되지만, 조금 다르게 보면 일본이 처음으로 “교육은 시험 성적만을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국가 차원에서 던진 사건이었다. 문제는 질문 자체가 아니라, 그 질문에 맞는 입시와 사회 구조까지 함께 바꾸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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