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에대해말하고싶습니다
바다에서 길어내는 목숨
권영심
세상에 태어나서 씻을려고 물에 손을 넣은 것외엔 단 한 번도 궂은 일을 해본 적이 없다는 여인들은 의외로 많다. 죽을 때까지 자신이 먹는 밥조차도 지어본 적이 없다는 그녀들의 자랑은 손에서 시작된다.
70세가 넘은 것을 아는데 손이 그렇게 곱고, 마디가 없는 손가락 위에서 빛나는 반지가 너무 예쁜 여인이 주변에 있었다. 저런 손이야 말로 보석반지가 필요한 손이구나...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대로 말했더니 그녀의 자랑아닌 자랑이 늘어졌다.
얼굴엔 어쩔 수 없는 주름이 가득한데, 미세한 주름으로 덮였어도 그녀의 흰 손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 두 손을 부채살처럼 활짝 펴고 흔들면서 그녀가 말하기를,
"지금까지 한 번도 쌀도 안 씻어 보았는 걸. 결혼했어도 관사에 일하는 식모들이 둘이나 있었거든. ㅎㅎ 지금도 일주일에 사나흘씩 사람 불러서 다 해요."
과연 자랑할만 하다. 전생에 적어도 한 고을은 구했나 보다. 내 손을 보더니 질겁을 한다. 귀부인처럼 생겼는데 손은 대체
왜 그 모양이냐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래서 나도 상처투성이인 내 투박한 두 손을 쫙 펴고 자랑했다.
"이 손으로 지금까지 적어도 오십여만 끼의 밥을 해서 드렸으니, 손이 이 지경이 되었어도 저는 좋네요."
내 말을 이해 못 하는 그녀가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들었다. 그렇게 큰 식당을 하느냐고...이 세상은 칠 십이 지나도록 한 톨의 쌀도 씻어본 적이 없는 여인도 있고 ,지금까지 오십여만 분의 밥을 짓고 차린 사람도 있다.
내가 고생을 했을까? 나는 내가, 여자로서의 고생을 많이 하고 살았다는 생각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내가 인간으로서의 기이한 고난을 겪은 것은 완전히 다른 장르이다. 나이를 먹어 가면서 나는 언제부터인가 여성의 고생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시장통에서 자랐기에 상인의 삶을 이어가는 많은 여인들, 어머니들의 삶을 눈안에 박듯이 보며 자랐으니, 어찌 무심하랴? 판매하는 품목에 따라 고생의 강도는 달랐으나, 애월이모라고 불리웠던 제주 여인의 삶은 내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우리 엄마가 시장에서 가게를 가장 빨리 여는 축에 속했는데 그와 버금가게 일찍 집을 나서는 여인이 애월이모였다. 그녀의 남편은 같은 제주 사람이었는데, 언제나 술에 취해서 시장 안 골목 끝 집의 어두운 방 안에만 누워 있었다.
제주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으로 인해 남편은 몸과 마음이 망가졌고 애월이모가 부산으로 끌고 나와서 그와 아이들을 부양했다. 특유의 제주사투리로 소리치며 몇 가지씩의 물건을 가지고 난전에서 장사하는 그녀의 원래 직업이 해녀였음을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녀는 엄마가 물건을 펴는 가게에 들러서 설탕물 한 그릇을 얻어 마시고 그 새벽에 바다로 향하는 것을 아는 사람만 알았다. 태종대,이송도,송도,해운대 달맞이고개 밑...또 근처의 바다에 들어가서 해산물을 건져 그 자리에서 팔고, 바위에서 해초와 담치등을 채취해서 머리에 이고 와서 시장에서 팔았다.
오로지 자신의 몸과 손과 발로, 모든 것을 만들고 벌어서 세 자녀 를 키우고 남편을 고이 보내주었다. 제주 여인들이 얼마나 강인한 삶을 일구어가는지 나는 그렇게 어려서 알았다.
빨간 등대며 이송도의 해안선마다 해녀들이 있었지만 그냥 무심 한 정물인듯이 보았다. 바다에 뛰어 들어 해산물을 건져 내오는 그 모습들에서 별다른 것을 느끼지도 못 했다. 바다 속엔 저런 것들이 많이 있구나...
그러나 그 물질이란 것이 얼마나 고통스런 작업인지를 어른이 되어서 알았고, 해녀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공부하면서 가슴이 찢어졌다. 살기 위해 죽음의 물길을 헤치며 숨이 끝나는 직전까지 숨비소리 하나로 자신이 살았음을, 스스로 각성하는 삶을 수 십년 동안 이어가는 여인들...
아직도 해녀들은 그렇게 살아가며 병이, 자신을 쓰러뜨릴 때까지 바다에 들어간다. 어젯 밤, 무심코 돌린 채널에서 극한직업을 방영하는데 해녀들의 삶이었다. 보는 내내 먹먹해진 가슴으로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인간의 삶의 모든 직업은 극한일 수 있으나, 주름 깊은 얼굴에 강인하게 새겨진 삶의 의지는, 바다의 파도가 아로새긴 것이었다. 70세가 넘은 나이에 태왁 하나에 의지해서 전복과 소라를 캐내어서,수 십 키로를 짊어지고 돌아오는 모습에서 나는 완벽한 인간을 보았다.
힘들겠다고, 어쩌면 저런 일을 하느냐고 감히 누군가가 혀를 찬다면 인간에 대한 예의를 모르는 사람이다. 인간이기에, 어머니이기에 하고, 했으며 바당이 품을 열어주는 그 날까지 잠녀로 살아갈 우리의 해녀어머니들...부디 강건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