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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고무의 역사 -1

작성자-미션|작성시간26.06.11|조회수15 목록 댓글 1

[천연고무의 역사 -1]

1900년대에 천연고무는 오늘날의 석유만큼 필수적이고 귀중한 자원이었다.
나무진액을 굳혀서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고무를 만들어내는 가황처리법을 1839년 찰스 굿이어가 발견한 이후로 천연고무의 쓰임새는 점점 더 다양해졌고,1880년대에 자동차와 고무타이어가 발명된 이후에야 그 수요가 급증하게 되었다.
천연고무 없이는 산업화된 세계가 제대로 굴러갈 수 없게 되자, 20세기 초에 고무시장은 다른 어떤 자원시장보다 더 호황을 누렸다. 수십 년 동안 고무시장의 호황 덕분에 가장 큰 이득을 본 나라는 브라질이었다.
세계 고무시장의 엄청난 수요가 대부분 브라질에서 생산된 천연고무로 충당되었기 때문이다.
천연고무나무인 헤비아 브라질리엔시의 주요 서식지는 아마존 열대우림 깊은 곳에 있었다.
브라질의 고무 귀족들은 천문학적인 수입을 올렸다.
오늘날 열대림 한가운데 있는 도시인 마나우스에 유럽의 어느 도시보다도 화려한 오페라하우스가 남아있는 것만 보아도 당시의 호황을 짐작힐 수 있다.
타이어의 수요가 늘어나자 천연고무 값은 점점 더 올라갔고 브라질의 천연고무의 호황은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갑자기 아시아산 천연고무가 시장에 등장하기 시작했고,빠르게 고무시장을 점령해나갔다. 이 천연고무는 영국상인들과 농장주인들이 동남아시아의 영국 식민지에서 재배한 것으로 아마존에서 나오는 고무보다 값이 저렴할 뿐 아니라 품질도 더 좋았다.
불과 몇 년 전 사이에 브라질 천연고무에 대한 수요는 급감했고 브라질 천연고무 상인들과 마나우스는 큰 타격을 입고 깊은 침체기에 빠져들었다. 반면 영국은 수십 년 동안 세계 천연고무 시장을 석권했다.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화학고무가 생산된 뒤에야 이 두 번 째 호황도 끝이 났다.그렇지만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에서 사용되는 천연고무의 3분의 1이 동남아시아의 농장에서 생산되고 있다.
반면 남아메리카산 천연고무 거래는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브라질의 학교에서는 당시 브라질에 어마어마한 수입을 안겨주었던 이 나무를 영국이 불법적으로 빼돌렸다고 학생들에게 가르치기도 했다.
어느 영국 탐험가가 왕실의 의뢰를 받아 천연고무 씨앗을 브라질 밖으로 몰래 가지고 나갔다는 것이다.당시 천연고무를 브라질 밖으로 나가다가 발각되면 사형을 당했는데, 이 영국인은 목숨을 걸고 모험을 감행했다고 한다.이 이야기는 세계 여러 나라의 수많은 책과 백과사전에 실려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여기에 언급된 탐험가는 Henry Wickham이란 청년이었다. 아마존에서 몇 년 째 거듭된 실패로 고생하고 있던 위크햄은 1876년 무렵 전문수집가 행세를 해서 천연고무나무 씨앗을 영국 식민지로 빼돌릴 수 있었다.
당시 영국황실의 의뢰를 받은 사람들이 이미 이 귀중한 씨앗을 손에 넣었으나 영국으로 가지고 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에 왕실 의뢰인은 위크햄이 무능한 허풍쟁이라고 여기면서도 그에게 이 일을 맡겼다. 위크햄은 의뢰를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영국인들은 이 씨앗을 런던의 왕립식물원에서 파종한 후 아시아 식민지의 여러 농장으로 보내 재배했다.
위크햄은 이 의뢰를 성공시킨 대가로 약속된 보상을 받았지만 만족하지는 못했다.
이 일로 역사적인 조명을 받기 원했던 위크햄은 자신의 모험기를 출판했다. 그는 자신의 탁월한 능력 덕분에 천연고무나무 씨앗을 브라질 밖으로 빼돌려 최대한 빨리 유럽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책 내용은 다른 탐험가들의 기록만큼 세부묘사가 정확하지 못했다.

-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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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진고개 | 작성시간 26.06.12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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