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것도 재능이다
권영심
나는 사람의 외양에 대해 관심이나 편견, 그런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자부해 왔다. 어떤 외양이든지 언행과 됨됨이가 선행되는 사람이 좋고, 무엇보다 말을 선하고 바르게 하는 사람이면 좋다.
어렸을 때부터 미남이나 미녀에게 감탄해 본 적도 없고 배우나 가수에게 혹해 본 적이 없다. 그 노래나 그 영화의 장면들이 좋았고 완벽하게 동화된 배우의 모습을 기억할 뿐이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알아지는 것이 있었으니, 아름다운 외양은 특출한 재능이라는 것이었다.
일반인조차도 취업에 용모 단정이 필수인 세상이니, 성형외과가 그렇게 성황을 이루는 이유를 알겠다. 외모가 타고난 재능을 이기는 것을 보면서, 나는 연예인들을 유심히 보는 때가 많다.
길거리케스팅으로 특급 배우가 되는 경우들이 많은데, 만약 외모가 출중하지 않았다면 그 안에 천재적인 연기력이 있었어도 발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특급 배우들중엔 외모가 많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수 십 년의 무명을 이겨내고 노력과 인내로 자신의 외모를 완성한 경우이다. 못생겨보이는 그들의 외모가, 내면의 깊은 연기력이 발현할 때 누구보다도 멋진 아우라를 보인다.
그런데 반드시 아름다운 외모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공연을 볼 때 많이 느낀다. 개성있는 얼굴과 생기가 넘치는 표정도 한 몫 하지만, 그보다 더 우선되는 것이 예쁜 얼굴이었다.
연예계의 미모는 말할 것도 없고, 특정 운동의 선수들의 기량도 중요하지만 얼굴이 상당한 영향력을 미침을 깨닫게 된 정점은, 피겨의 김연아 때문이었다. 김연아는 흠 잡을 데 없는 고전적인 미인의 얼굴인데, 그 얼굴이 나타내는 다양하고 풍부한 감정의 표현은 감동이다.
아사다마오를 김연아의 맞수로 말하는데 나는 처음부터 전혀 아니었다. 기량은 솔직히 모르겠으나 신체적으로 마오는 김연아와 처음부터 비교가 되지 않았다. 얼굴의 생김새의 격이 완전히 다르다. 이것은 김연아를 연구하는 외국의 피겨인들도 같은 생각이다.
마오는 그저 예쁘장한 소녀같은, 그야말로 일본인이 좋아하는 얼굴이지만 김연아의 얼굴엔 진짜의 미인이 가지는 많은 표정과 느낌이 녹아있다. 눈빛조차 다르다. 그녀의 압도하는 눈빛과 사소한 입술의 비틀리는 미소가 연기에 녹아드는 아우라는, 어느 피겨선수에게도 없는 것이었다.
김연아는 특징적인 긴 팔과 긴 다리의 놀라운 포지션을 나타내며 같은 동작이라도 더 섬세하고 정교한 듯 보인다. 이것은 피겨의 대가들도 인정하는 점인데, 세계의 기자들이 말하는 또 하나의 장점이 있다.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감정의 풍부한 표현력이다. 마오의 연기에서 내가 점수를 준다면, 예술적 표현에서 사정없이 감점할 것이다. 마오의 특징이 귀여움인데,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예쁘장한 귀염성으로 사랑받는다.
그러나 같은 무대에서 비교해 보면 김연아의 연기가 내뿜는 놀라운 표현의 아우라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눈빛이 말하는 감정이 손끝에 실려 이루어내는 아름다움이 연아를 퀸으로 불리게 했다.
나는 모든 춤을 사랑하고 기회가 있으면 보려고 애쓰고, 특히 발레는 티비에서 애써 찾아 본다. 발레리나는 그 모습 자체로 아름다운데, 발레라는 춤의 특성상 요구되는 체형과 용모가 있다.
예쁜 것만 가지고는 안 되는 것이 있는데 얼굴이 크면 안된다. 목이 길어야 하고 사지가 가늘고 길어야 하는데, 무엇보다 요구 되는 것은 가슴이 크면 절대 안 된다. 예술고까지 갔으나 가슴의 볼륨이 너무 풍만해지는 바람에 발레를 그만 둔 소녀도 있다.
발레의 특성상 회전하고 높이 뛰고 발레리노와의 리프트도 많은데, 볼륨이 큰 가슴은 절대 금물인 것이다. 가늘고 얇아야 하는 절대적인 이유를 발레를 보면 알수있다. 거기에 표정이 풍부한 예쁜 얼굴이면, 같은 기량이라도 더 돋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순도 100%의 흑인이 에뜨왈이나 프린스펄이 못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무리 출중한 실력일지라도 검은 피부의 감정 표현력은 무대에서 관객에게 그 느낌을 잘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발레는 동작의 표현과 표정으로 모든 과정을 나타내는 예술이다. 인종 차별이 아니라, 발레를 하는 여자 솔리스트 중에서 순수 흑인은 거의 없는 이유이다. 그 예술이 요구하는 절대치를 우리는 인정해주어야 한다.
그러니 어찌 외모가 재능이 아니겠는가? 현실에서 만나게 되는 갈등과 차별은 본인이 느끼게 되는 것이겠지만, 무대에서 만나는 예술에서 아름다운 외모는 확실하게 관객에게 더 어필되는 것이 사실이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더 아름다운 모습을 가진 수컷이 암컷에게 간택받으니 미가 재능이고 축복인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너무나 기가 막힌 반전이 있으니,내면의 선함과 재능이 최선의 노력을 다해 오랜 시간을 두고 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뼈아픈 무명의 시절을 이겨내고 투박하고 거친 외모가 그만의 장점으로 부각되어, 국민배우가 되는 많은 연기자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제 아무리 미남미녀여도 세월의 강을 건너는 사이에 허물어진다.
거기에 삶을 함부로 한 댓가는 누구보다 혹독하게 외모에 빚어지는 법이니 세상은 그래서 공평한가? 나이가 들수록 내가 가지는 외모에 내가 책임을 져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