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고무의 역사 -2]
특히 그 내용이 흥미진진할수록 다음 탐험을 위한 경비를 넉넉히 조달할 수 있었다.
위크햄도 자신의 경험담을 사실보다 과장되게 각색했는데,나이가 들수록 그 정도가 심해졌다.그는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며 목숨을 걸고 그 씨앗을 브라질 밖으로 빼돌렸다고 주장했다.
마침내 영국이 동남아시아 농장에서 생산되는 원료로 천연고무 시장을 거의 독점하게 되어 엄청난 경제적 호황을 누리자, 위크햄도 뒤늦게야 공로를 인정받게 되었다. 그는 말년에 귀족작위를 받고 연금까지 수령하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브라질 밖으로 천연고무나무 씨앗의 반출을 금지하는 법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위크햄은 그 씨앗을 가지고 세관을 통과할 때 어떤 위험이나 모험도 감수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이 예민한 씨앗이 부패하기 전에 늦추지 않고 급히 서둘러야 했던 것은 사실이다.
브라질 사람들은 이 소중한 나무가 아마존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자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영국인들은 자국의 산업발전에 필요한 막대한 양의 고무수요를 전적으로 값비싼 브라질 천연고무에 의존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당시 영국이 천연고무를 직접 생산하고자 노력한다는 것은 전혀 비밀도 아니었다. 바로 그 직전에 영국은 페루에서 생산되던 기나피(말라리아 치료제인 키니에의 원료)에 대해서도 똑같은 시도를 했다.
인도에 주둔하던 영국군의 말라리아 치료를 위헤 키니네를 직접 생산하고자 페루의 기나피 나무를 아시아 식민지에 옮겨 심었던 것이다. 반면 브라질은 천연고무에 대한 세계적 수요가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에 빠져 방심하고 있었다. 브라질은 뒤늦게 고무나무의 외부 반출을 금지하는 법을 시행했지만 이미 상황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그러자 브라질은 자신의 행위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아무런 생각 없이 천연고무나무 씨앗을 빼돌렸던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기 시작했다.
마침 위크햄의 과장된 체험기가 브라질 천연고무의 수요를 급감시켜 국가경제에 엄첨난 불이익을 끼친 책임을 전가하기에 적합한 내용이었다.
그렇더라도 브라질은 계속 증가하는 천연고무의 수요를 독자적으로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자동차 시장의 한없는 성장으로 고무의 수요가 끝없이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 역시 몇몇 사람의 힘겨운 노력 덕분에 이 엄청난 호황을 누릴 수 있었다.
당시 영국 정부는 이 문제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소수의 현명한 사람들이 수십 년 동안 온갖 반대와 실패를 무릎쓰고 노력한 끝에 동남아시아에서 천연고무 재배에 성공했고,그 덕분에 시기적절하게 세계시장을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이다.-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