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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봄, 에게해의 작은 섬 안티키테라 앞바다.

작성자-미션|작성시간26.06.14|조회수22 목록 댓글 0


1900년 봄, 에게해의 작은 섬 안티키테라 앞바다.


천연 스폰지를 따러 잠수했던 그리스 잠수부들은 수심 45미터 바다 밑에서 로마 시대 난파선 한 척을 발견했다.

기원전 2세기, 로마로 약탈품을 싣고 가다 폭풍에 가라앉은 화물선이었다.

수많은 보물이 나왔고, 그 유물 중에는 손바닥만 한 청동 덩어리가 하나 있었다. 용도를 알 수 없는 그 물체는 몇 달 동안 박물관 한쪽에 방치되었다. 그동안 덩어리가 마르면서 저절로 갈라졌다.

그 속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것이 나타났다. 정교하게 깎인 청동 톱니바퀴 여러 개가 맞물려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 정도 톱니바퀴 장치는 14세기에서야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그보다 1400 년이나 앞선 고대 그리스의 배에서 정밀 기어가 나온 것이다.

처음 이 톱니바퀴를 알아본 사람은 1902년, 박물관의 고고학자 발레리오스 스타이스였다. 그는 이것이 천문 시계의 일종일 것 같다고 발표했다.

대다수 학자들은 고개를 저었다. 2천 년 전 난파선에서 나온 물건이라기에는 너무 선진 기술이기 때문이었다. 그저 후대의 톱니가 어쩌다 섞여 들어간 것이라 일축했다.

그렇게 청동 덩어리는 다시 박물관 수장고에서 잊혔다. 그리고 50여 년 후에야 다시 빛을 본다.

영국 출신의 과학사학자 데릭 드 솔라 프라이스에 의해서였다. 짧은 조사 후 1959년, 그는 예비 분석을 발표했다. 제목은 <고대 그리스의 컴퓨터>였다. 학계에서는 이 유물이 진짜인지를 두고 다시 논쟁이 일었다.

당시 기술로는 덩어리 안을 들여다볼 방법이 없었다. 다시 십여 년이 흘렀다. 1971년, 프라이스는 기술발달로 감마선 촬영을 이용하면 부식층을 안을 투과해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파편들을 감마선과 X선으로 촬영했다.

부식된 덩어리 속에서 30 개의 톱니바퀴가 겹겹이 포개진 구조가 드러났다. 잇수까지 헤아린 프라이스는 1974년 결론 내렸다.

이 장치는 기원전 87년 무렵 만들어진 천체의 운행을 계산하는 기계, 즉 고대의 천문 계산기였다. 훗날 그는 이 발견이 '피라미드를 열었더니 원자폭탄이 나온 격'이라 했다.(추후 2세기 것으로 수정됨)

2005년, 드디어 청동 덩어리의 내부가 완전히 드러났다. 의료용 CT의 수천 배 해상도로 촬영이 가능한 마이크로포커스 CT를 이용해서였다. 이를 위해 연구팀은 영국에서 8톤짜리 장비를 아테네 박물관으로 실어 왔다.

파편을 단층 촬영하자 부식된 청동 속에 숨어 있던 톱니의 잇수가 정확히 밝혀졌고 표면에 새겨진 깨알 같은 그리스어 수천 자도 읽히기 시작했다. 2천 년 동안 아무도 몰랐던 사용 설명서였다.

지금도 아테네 국립고고학박물관에는 이 2천 년 전의 컴퓨터가 전용 전시실에 복원 전시되어 있다.

파편 82점과 함께 놓인 복원 모형은 신발 상자만 한 나무 케이스에 들어 있다. 그 안에 최소 30 개가 넘는 청동 기어가 맞물려 있다.

기계의 앞면에는 황도 십이궁과 달력이 그려져 있다. 특정 날짜의 태양과 달의 위치를 알려주는 것이다. 뒷면의 나선형 눈금은 일식과 월식을 예고했다.

기계에는 고대인이 알던 다섯 행성의 운행과 4년마다 돌아오는 올림픽 경기의 주기도 새겨져 있었다. 반은 검고 반은 희게 칠해진 구슬이 돌아가며 달의 차고 기우는 모양도 보여준다.

가장 놀라운 것이 달의 운동이었다. 달은 하늘을 일정한 속도로 도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빨라졌다 느려졌다 한다. 타원 궤도를 돌기 때문이다.

안티키테라 기계의 제작자는 이 움직임을 재현하기 위해 톱니바퀴를 살짝 어긋나게 맞물려 놓았다. 이 때문에 한 바퀴가 일정하게 돌아도 다른 바퀴는 빨라졌다 느려진다. 케플러가 행성의 타원 궤도를 수학으로 정리하기 1700 년 전이었다.

이 기계는 손잡이로 돌리는 태양계의 축소 모형이자 천문력 계산기였다.

정밀 톱니 기어가 유럽에 다시 나타난 것은 1400년 후 초기 성당 시계에서였다. 그 동안 이 기술은 유럽에서 완전히 잊혀졌다.

다만 비잔틴과 아랍세계에서는 이 기술이 전수되어 비슷한 천문력과 아스트롤라베가 만들어졌다.

안티키테라 천문력은 고대 그리스 문명이 유럽에서 얼마나 깨끗이 잊혔는지, 반면 비잔틴과 아랍 문명에서는 어떻게 계승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다.

#김효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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