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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명회의 압구정 / 권영심

작성자-미션|작성시간26.06.15|조회수22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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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속에역사와현재가있다

한명회의 압구정 


권영심

조선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사람이 여럿 있는데, 그중 한명회 가 있다. 그에게 붙이는 수식어는 참 많고도 많아 행적에 대해서도 설왕설래하지만, 대단한 정치가였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상당부원군이란 군호와, 자는 자준이며 호는 압구이고 시호는 충성이다. 세조가 왕이 되는데 지대한 공을 세워, 세조는 그를 참으로 아꼈다고 한다. 한미한 가문의 칠삭동이로 태어나 그 만큼 자신을 일으킨 사람도 드물다 하겠다.

그러나 역사는, 그를 바른 사람으로 평가하진 않는다. 세조를 비롯한 몇 대의 왕을 섬기는 동안의 그의 행적은 후인들에게 서글픔까지 느끼게 한다. 한명회는 노년에 자신의 별서 압구정 에서 시 한편을 지었다.

'靑春扶社稷(청춘부사직)   
白首臥江湖(백수와강호)'   
'청춘에는 사직을 붙들고
늙어서는 강호에 누웠네'

이 한명회의 시에 김시습은 다음과 같은 답시를 지었다.


'靑春亡社稷(청춘망사직)      
白首汚江湖(백수오강호)'     
'청춘에는 사직을 위태롭게 하고
늙어서는 강호를 더럽혔네'

이 얼마나 절묘한 답시인가?
늙어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압구정에 몸을 쉼하면서, 한명회는 자신의 살아온 생을 돌아 보았을 때 긍정적으로 보았다. 세조를 세운 것을, 조선의 사직을 지킨 것이라는 자부심은 정말이라고 하겠다.

권력 탐욕이 아니라 강건한 조선을 세우고 싶었던 꿈의 실현이 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시에 드러난다. 어쩌면 그만큼 아집과 변하지 않는 자신에의 믿음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른 다. 그런 자족하는 시에 김시습의 답시는 자못 혹독하다.

젊어서는 사직을 위태롭게 만들고 늙어서는 강호를 더럽혔다고, 채찍같이 내리쳤으니 참으로 서늘하다. 한명회가 김시습의 이 시에 대해 무어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그와 이어지면 저 유명 한 정자 압구정이 나온다.

흔히 압구정이란 이름을 한명회가 지었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아니다. 성종조에 이르러 최고의 권력을 가지게 된 한명회를, 성종이 견제하자 한명회는,

"신과 같은 노신이 이제 무얼 하겠나이까? 그저 한강 남쪽에 조그만 정자를 지어, 갈매기들과 벗을 하여 쉬고 싶을 뿐이외다."

성종의 노염을 피해 정자를 짓고 그 곳에서 머물자 명나라의 예겸이란 사람이 -압구정- 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한명회는 이 압구정이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 이후 호로 사용했 고 실제 모든 벼슬을 내려놓은 이후 이 정자에서 노년을 보내고 죽었다. 그러나 압구정이란 소박한 이름의 정자는, 궁전의 누각 보다 화려했고 명나라의 사신들도 접대 장소로 이용할 만큼 권력과 깊은 관계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오늘날에 이르러 압구정은 특별시의 특별한 동네로 그 명성을 떨치고 있으니 한명회의 은덕인가? 입으로는,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았고 그런 일이 없었다고 발뺌하는, 지금의 한명회의 후예들은 과연 어떤 정자를 지을지 자못 궁금하다.

수없이 스스로의 공명정대함과 청렴함을 말하면서, 뒤로 쌓아 놓은 그 압구정들이 세상에 드러나는 날 과연 어떤 얼굴들일까? 한명회는 부관참시를 당했으나 요즘의 후예들은 좋은 세상이어서 그런 일을 당하지는 않겠다.

우리와 같은 민초들은 믿을 수 없는 숫자의 재산을 지니고도 더! 더! 하면서 기어이 망칠을 하고 마는 어떤 압구정들의 세상이 자못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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