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그림이 가장 많은 곳은 어디일까?
루브르도, MOMA도, 런던 내셔널 갤러리도 아니다.
스위스 제네바의 한 창고다.
축구장 수십 개의 넓이의 이 곳에는 컨테이너가 빼곡이 쌓여 있다. 프리포트 Freeport라 불리는 이 곳은 원래 수입 전 잠시 곡물을 쌓아두는 면세창고였다.
그런데 지금 창고를 채운 것은 귀리와 밀이 아니라 피카소, 고흐,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의 그림이다.
피카소 그림만 1천여 점, 총 120만 점의 그림이 이 곳에 보관되어 있다. 가치는 1,000억 달러에 이른다.
뉴욕 경매에서 5천만 달러의 그림을 샀다고 하자. 보통의 경우라면 440만 달러의 세금이 붙지만 프리포트 내에서 거래하면 세금은 0원이다. 게다가 어떤 기록도 남지 않는다.
조세 회피처에 페이퍼 컴퍼니를 세운 그림의 소유주들은 프리포트 내의 호화로운 프라이빗 쇼룸에서 그림을 감상하고 매매를 체결한다. 세금도, 기록도 없고 그림은 이 구역에서 저 구역의 나무상자로 옮겨갈 뿐이다. 러시아 재벌은 이런 식으로 오늘 당장이라도 수백만 달러의 그림을 현찰로 바꿀 수 있다. 미술품은 자금 세탁에 최적의 자본이 된다.
1975년 100곳 남짓이던 이런 창고는 2008년 3만 곳으로 불어났다. 룩셈부르크, 싱가포르, 모나코 등지의 프리포트에는 첨단 항온·항습 시스템, 망막 인식과 지문 인식기, 두께 수십 센티미터의 티타늄 금고문이 준비되어 있다.
역대 가장 높은 가격에 빈 살만 왕세자에게 팔렸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추정)의 <살바토르 문디>도 이 곳에 묻혀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2014년, 이탈리아와 스위스 경찰은 제네바 프리포트를 급습했다. 그들은 무려 45개의 상자에서 로마와 에트루리아 시대 등의 고고학 유물수천 점을 찾아냈다.
이는 수십 년 간 이탈리아 도굴꾼으로부터 장물을 모은 자코모 메디치와 관련있었다. 그들은 치외법권인 이 곳에서 장물을 세탁해 팔아왔던 것이다.
구매자 중에는 세계 최고의 박물관도 있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비롯한 주요 박물관들은 프리포트에서 구매한 소장품을 이탈리아 정부에 반환하는 수모를 겪었다.
프리포트는 자본의 도구가 된 미술시장의 종착지이자 수많은 명작의 카타콤이다.-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