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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것은 언제나 옳은 것이다 / 권영심

작성자-미션|작성시간26.06.18|조회수17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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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사속에역사와현재가있다

옳은 것은 언제나 옳은 것이다

권영심 

묵적지수-묵적의 지킴,
자기 소신을 끝까지 지키는 고집.

이 고사성어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끝까지 관철할 때, 또는 그런 사람을 지칭할 때 자주 쓰입니다. 묵자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에,송의 허난성에서 태어난 사상가이자 철학가 입니다. 제자백가 중의 묵가를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유교와도,도교와도 화합하지 않은 그의 근본 사상은 '겸애'입 니다. 즉 '이 세상은 사랑이 부족하고 서로 양보함이 부족하여 늘 다툼이 있다'라고 보는 사상입니다. 중국의 예수라고 표현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틀린 말도 아닙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지만 예수의 사랑의 설파 이전엔 두렵고 무서운, 구약의 유일신만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표방하는 사랑은 신약의 예수 출현 이후부터 였습니다. 그것도 예수가 부처의 제자로 입문하여 자비와 사랑을 배워 자신의 공적 생활의 바탕으로 했다고 하는 목소리도 큽니다.

이름을 적이라고 하는 묵자는 끈질기게 뜻을 관철하는데는 남달라서, 송나라를 초나라에게서 아홉 번이나 방어하여 굳게 지킨다는 -묵수-라는 글자의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직접 전쟁에 나가서 송나라를 구한 것은 아니지만, 그 때문에 묵자의 놀라운 언변으로 인한 업적이 도드라집니다 .

그는 초나라가 어떤 높은 성벽이든지 타 넘을수 있는 운제계를 개발하여, 송나라를 치려고 한다는 정보를 듣고 바로 초로 가서, 조정대신인 공수반을 만나 거부할수 없는 논리를 펼쳐서 그로 하여금 초왕을 만나게 만들었습니다. 초왕을 알현하는 자리에서 묵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금은보화로 장식한 수레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웃의 작은 수레를 뺏으려고 하는 사람은 어떤 심보일까요?”
"그것은 도둑의 심보라고 할수있다."
"자신의 저택에 산해진미의 음식들이 넘치는데, 궁핍한 이웃의 술찌꺼기를 뺏는 사람은 어찌 생각하십니까?"
"그것도 아주 못된 도둑놈의 행태이다."
"몸에 능라비단의 옷을 입고서도 이웃의 다 헤어진 베옷을 내놓으라고 하는 사람은 어찌 생각하십니까?"
"용서할수 없는 도둑이로다!"

초왕은 진노하는 모습으로 묵자를 바라 보며 말했습니다. 그러자 묵자는 그의 앞에 꿇어 앉으며 처연한 목소리로 말하기를,

"전하의 나라는 크고 넓어 사방으로 오천리가 넘사옵니다. 그러나 송나라는 겨우 5백 리에 불과하니, 이것은 화려한 수레와 초라한 수레의 비교에 무엇이 다르리까?

초나라의 비옥하고 넓디넓은 산과 들에는 수많은 짐승들이 살고 있어 사냥의 걱정이 없고, 양자강과 한에는 많은 물고기들이 있어 어부는 배부르지만, 우리 송나라는 좁고 척박하여 겨우 연명하니 산해진미와 술찌꺼기의 비교됨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전하의 초나라에는 훌륭한 재목으로 쓰일 아름드리 나무들이 울울창창 하옵니다. 하지만 송나라에는 초막을 지을 나무조차 귀한 실정이므로, 이것은 능라비단옷과 헌 베옷의 비교에 맞지 않사옵니까?

전하! 초나라와 송나라의 우열이 이토록 명백하온데, 어찌 전하께서는 초나라를 침공하려고 하시옵니까? 전하께서 진노하신, 그 도둑과 무엇이 다르옵니까?"

너무나 맞는 말에 초왕은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겨우 말하기를,

"과인은 송을 침공할 생각이 아니었소.
운제계를 실험해 볼 생각이었지."

그러자 묵자가 조금 소리를 높여 말했 습니다.

"전하! 그 운제계가 그렇게 쓸모가 있는 물건이 아님을 소인이 증명해보고 싶사옵니다. 전하의 앞에서 모의전을 해서 그것을 증명해 보이겠나이다."

그리하여 묵자의 말에 발끈한 초나라의 대신들과의 모의전이 왕의 앞에서 벌어졌습니다. 결과는 어찌 되었을까요?

묵자는 아홉번을 겨루어 아홉번을 다 이겼습니다. 그의 말대로 운제계가 쓸모가 없음을 인정한 초왕은, 송나라 침공 계획을 무산시켜 버립니다. 묵자 한 사람의 힘으로 전쟁을 막은 것입니다.

그는 두려움이 없었겠습니까? 혈혈단신으로 적국에 들어가 조국을 전쟁의 위기에서 구해야한다는 일념이, 그를 승리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가 지킨 일념은 옳은 것이었고, 그 가치는 변함이 없는 옳은 것으로 오늘날까지 '묵적지수'로 남아 있습니다. 옳은 것은 상황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며 옳은 것은 언제나 옳은 것입니다.

오늘 나의 옳음은 어디에 있나 생각해 보며, 그 옳음을 지켜나갈 용기가 있기를 바라봅니다. 진정한 옳은 선택이라면 그 선택을 위해 나는 어떤 용기를 내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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