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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의 집은 가난하지 않았다? 맹자➁

작성자-미션|작성시간26.06.20|조회수15 목록 댓글 0

맹자의 집은 가난하지 않았다? 맹자➁

맹자는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성장했는데요. 그 때문에 무척 가난했던 것으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맹모 삼천지교’의 고사에서 보듯, 맹자의 어머니는 오직 ‘아이의 교육’을 위해 과감하게 이사를 합니다.

당시는 집을 옮기는 데 지금보다 훨씬 더 큰 비용이 따랐다고 봐야 하는데요. 그럼에도 선뜻 집을 옮겼다는 것은 그만큼 재정이 뒷받침되었다고 봐야 하겠지요.

맹자가 공부를 중도 포기하고 돌아왔을 때 맹모가 짜던 베를 잘라버린 일화가 있습니다.

“네가 공부를 중단하는 것은 여태까지 짜던 이 길쌈을 끊는 것과 같다.” 하면서 실을 끊어버리자 맹자가 각성하여 더욱 공부에 매진했다는 고사인데요.

당시에 귀하고 비싼 베틀과 직조 기술을 가졌다는 것은 ‘가내 수공업’ 수준의 자본을 가졌음을 의미합니다.

또 이를 단숨에 잘라버릴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경제적 여유와 기개가 있었다는 것이지요.

맹자가 중국 천하를 주유할 때, 그의 뒤에는 수십 대의 수레와 수백 명의 제자·수행원이 따랐습니다.

물론 제후들이 여비를 대주기도 했겠지만, 맹자 본인의 재정도 튼튼했음을 증명해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맹자는 노나라의 강력한 세 가문 중 하나인 맹손씨(孟孫氏) 가문의 후손입니다.
가문이 노나라에서 추나라로 옮겨가면서 세력이 약해졌을 수는 있으나 근본적으로 뼈대 있는 귀족(사대부) 집안이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맹자는 가난에 허덕이는 흙수저가 아니라 상당한 자산가 또는 부유한 사대부 집안에서 최고의 엘리트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금수저’ 출신이었습니다.

 

#쇼츠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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