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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의 님의 침묵에 나오는 님은 누구인가?

작성자-미션|작성시간26.06.23|조회수24 목록 댓글 0

이별은 미美의 창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 나오는 님은 누구인가?


만해스님이 설악산 오세암에서 정진하고 있을때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한겨울 눈 덮인 설악산 오세암에 한 젊은 여인이 찾아온다. 그녀는 세속의 번뇌를 피해 산으로 들어온 상태였고 그곳에서 수행하던 만해를 처음 보게 된다.
​여인이 본 만해의 첫인상은 매우 강직하고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이 느껴지는 수행자의 모습이었다.

만해 역시 그녀의 맑고 정갈한 모습에서 예사롭지 않은 인연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여련화라는 법명을 가진 여인은 만해의 수행을 돕기 위해 스스로 오세암의 공양주를 자처하며 곁에 머물게 된다. 이것이 훗날 만해의 시와 사상에 큰 자양분이 된 인연의 시작이었다.

​만해는 여련화와의 이별을 통해 님의 침묵이라는 위대한 시 세계를 열었다.

만해가 여련화와 헤어지며 남긴 생각들이 "이별은 미의 창조"라는 철학으로 이어진다.불교의 계율을 중시했던 만해가 여련화라는 존재를 통해 겪었을 인간적인 고뇌와 깨달음을 살펴본다

여련화(김부용)는 강릉 선주의 미망인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녀는 남편과 사별한 뒤 속세의 인연을 뒤로하고 설악산 오세암으로 들어왔고, 그곳에서 수행 중이던 만해 스님을 만나게 되었다.

만해 스님을 지극정성으로 공양하며 정신적 도반이자 시적 영감의 원천이 되었던 인물이다.

여련화와의 만남과 이별이 어떻게 한국 문학의 걸작인 님의 침묵이라는 열매를 맺었을까?

만해 스님이 1914년에 간행한 불교대전(佛敎大典)의 출판 비용과 관련해서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만해 스님은 팔만대장경을 완독하고 주제별로 정리하여 불교대전을 편집하였다. 이때 강릉의 김부용(여련화 보살)이 자신의 재산을 정리하여 출판 비용을 시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님의 학술적·종교적 업적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물질적으로 큰 뒷받침을 한 셈이다. 이러한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만해의 사상을 집대성한 『불교대전』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만해 스님이 여련화라는 구체적인 인물을 향한 인간적인 감정을 어떻게 종교적차원의 님으로 승화시켰는지, 그 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이 과정은 세 단계의 심리적, 철학적 변화로 요약해볼 수 있다.

처음에는 한 개인을 향한 그리움과 이별의 슬픔이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에서 시작한다. 이는 누구나 겪는 고통이지만, 만해는 이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했다.

​이별은 미(美)의 창조라는 그의 고백처럼, 님이 곁에 없을 때 오히려 님의 존재 가치가 가장 선명해진다는 역설을 깨닫는다. 여기서의 님은 이제 여련화라는 개인을 넘어, 내가 반드시 도달해야 할 진리나 구원의 상징이 된다.

​나를 돌봐주던 여인의 손길은 조국을 향한 헌신으로, 그녀와의 이별에서 느낀 슬픔은 식민지 민중의 고통을 치유하려는 의지로 확장된다. 결국 시 속의 '님'은 여련화이면서 동시에 조국이고, 부처이며, 우주의 진리가 되는 것이다.

​만해는 개인적인 인연을 거대한 문학적 성취로 바꾸어 놓았다.

이별은 미美의 창조創造입니다.

ㅡ만해 한용운 ㅡ

이별의 미美는 아침의 바탕(質) 없는 황금黃金과 밤의 올(糸) 없는 검은 비단과 죽음 없는 영원永遠의 생명生命과 시들지 않는 하늘의 푸른 꽃에도 없습니다.

님이어 이별이 아니면 나는 눈물에서 죽었다가 웃음에서 다시 살아날 수 없습니다.

오오 이별이여.

미美는 이별의 창조創造입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만해는 원효이후 우리역사의 기적이다.

만해학을 정립하여
한민족의 정신문화를 되살려야 한다. 

#석현장역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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