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국지의 세계에 탐닉하다
- 3부 일통 천하 (90)
제12권 사라지는 영웅들
제 11장 하나를 다시 여섯으로 (3)
연소왕(燕昭王)은 궁 옆에 큰 저택을 짓고 곽외를 모셔다 재상 겸 스승으로 삼았다.
그러고는 제자의 예(禮)로써 곽외를 섬기고 친히 대청 앞에 꿇어앉아 가르침을 받았다.
뿐만 아니었다.
식사 때면 손수 곽외(郭隈)에게 밥상을 갖다 바치고, 아침 저녁으로 문안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한편으로 연소왕은 역수(易水) 가에 높은 대를 세우고 그 위에 많은 황금을 쌓아두었다.
어진 인재를 구할 수만 있다면 언제든지 이 황금을 쓰겠다는 각오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대를 '초현대(招賢臺)'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황금대(黃金臺)'라고도 했다.
연소왕(燕昭王)이 곽외를 연나라 재상으로 삼고 역수가에 초현대(招賢臺)를 쌓았다는 소문은 곧 천하에 두루 퍼졌다.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 연왕(燕王)이 그토록 인재를 사랑한다니 내 기꺼이 연(燕)나라로 가 보리라.
이리하여 후일 전국시대 최고의 군사 전략가로 평가받는 악의(樂毅)가 위나라에서 달려왔고, 조나라에서는 천하장사 극신(劇辛)이 달려왔으며, 제나라에서는 음양오행의 대가인 추연(騶衍)이 귀순해왔다.
연소왕(燕昭王)은 이들을 모두 높은 자리에 올리고 연나라의 부흥을 꾀하니, 이때에 이르러 연나라는 비로소 전국칠웅의 자리를 확고하게 굳히게 된다.
연(燕)나라가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는 동안 서방의 초강대국 진(秦)나라는 차근차근 연횡책(連衡策)을 펴나가고 있었다.
물론 연횡책의 주도자는 장의(張儀)였다.
그런데 이때 진혜문왕(秦惠文王)은 엉뚱한 것을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진나라 남쪽으로 한중(漢中)이 있고, 다시 그 아래로 내려가면 촉(蜀)이라는 나라가 있다.
사방이 험한 산으로 둘러싸여 좀처럼 중원과 교류를 갖지 않는 조용한 나라였다.
그래서 중원 사람들은 촉을 가리켜 '신비의 땅' 이라고도 하였다.
중원 진출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진(秦)나라 또한 외진 곳에 위치해 있는 촉(蜀)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 신비의 땅 촉과 진나라 사이에 저(苴)라고 하는 작은 나라가 있었다.
촉(蜀)에서 갈라져 나온 나라로, 촉의 속국이나 다름없는 나라였다.
지금의 사천성과 섬서성의 경계 지역에 위치해 있다.
이 저(苴)나라가 촉나라에 반기를 들었다.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촉(蜀)나라는 당연히 저나라를 무력으로 누르려 들었다.
저나라는 저나라대로 저항을 해서 이 싸움은 꽤 오랫동안 계속 되었다.
싸움이 극렬해지면서 저(苴)나라 임금과 촉(蜀)나라 임금은 제각기 사자를 보내어 진혜문왕에게 원군을 요청했다.
이것이 바로 진혜문왕의 고민거리였다.
- 촉(蜀)을 도울 것인가, 저(苴)를 도울 것인가?
그런데 어찌 알았으랴.
이 고민거리 하나가 후일 진(秦)나라가 천하통일을 이루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줄이야.
당시 진혜문왕의 신하 중에 착(錯)이라고 하는 장수가 있었다.
관직이 사마였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사마착(司馬錯)이라고 불렀다.
사마착은 진혜문왕이 촉과 저나라의 일로 고민하는 것을 알고 엉뚱한 제안을 내놓았다.
"이번 기회에 아예 촉(蜀)나라를 정벌하십시오."
진혜문왕(秦惠文王)은 귀가 솔깃했다.
"그거 좋은 생각이군."
그러나 과연 군사를 내어 촉(蜀)나라를 정벌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없지는 않았다.
언제나 그러했듯, 재상 장의를 불러 의견을 물었다.
과연 장의(張儀)는 촉나라 정벌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아직 합종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촉(蜀)나라를 치다가 한(韓)나라의 기습을 받을까 걱정입니다. 군사를 내려면 차라리 한나라를 치는 것이 좋습니다."
사마착과 장의는 이 문제를 놓고 진혜문왕 앞에서 대논쟁을 벌였다.
사마착(司馬錯)은 주장했다.
"촉(蜀)나라는 비록 외딴 곳에 떨어져 있지만 매우 넓을 뿐 아니라 땅도 여간 비옥하지 않습니다. 군사상으로도 대단히 요긴한 곳입니다."
촉나라는 진나라 남쪽에 위치하지만 초(楚)나라 서쪽과 경계를 이루는 지역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촉(蜀)나라를 선점해둔다는 것은 초나라 등뒤에 창끝을 들이미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가지게 된다.
언젠가는 초나라와 쟁패를 벌여야 하는데, 그때 촉(蜀)나라에서 군대를 출병시키면 진(秦)나라는 앞뒤로 초나라를 압박할 수 있게 된다.
"백년대계(百年大計)란 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른바 토촉론(討蜀論)이었다.
반면 장의는 토촉의 무용론(無用論)을 펼쳤다.
"촉(蜀)나라는 서쪽 구석진 곳에 있는 보잘것 없는 융적(戎狄)입니다. 굳이 군사를 내어 정벌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 우리 진나라의 당면과제는 중원입니다."
"공연히 엉뚱한 것에 힘을 빼앗길 필요가 없습니다. 그 힘으로 한(韓)나라를 공격하고 삼천(三川)을 쳐서 주왕실을 멸망시키는 것이 왕업을 이루는 데 지름길입니다."
이른바 멸주론(滅周論)이다.
삼천이란 황하와 그 지류인 이수(伊水), 낙수(洛水)를 말한다.
주나라를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다.
사마착의 토촉론(討蜀論)과 장의의 멸주론(滅周論)을 들은 진혜문왕은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 촉(蜀)나라를 정벌하겠소.
이로써 장의의 연횡책은 잠시 연기되고 진(秦)나라는 모든 군사력을 촉나라로 집중시켰다.
촉나라 정벌군의 대장은 사마착(司馬錯)이었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