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국지의 세계에 탐닉하다
- 3부 일통 천하 (97)
제12권 사라지는 영웅들
제 11장 하나를 다시 여섯으로 (10)
어느 날 그는 진무왕을 찾아가 말했다.
"신이 진(秦)나라를 위해 한 가지 계책을 세웠습니다. 왕께서는 이 계책을 써보시겠습니까?"
"무슨 계책이오?"
"지금 제왕(齊王)은 신을 몹시 미워하고 있습니다. 신이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 군사를 이끌고 와서 칠 것입니다. 다만 현재 신이 진(秦)나라에 있기 때문에 섣불리 공격하지 못할 뿐입니다."
"만일 신이 위(魏)나라로 가면 제나라는 틀림없이 위나라를 공격할 것입니다. 제나라와 위나라가 싸우는 동안 왕께서는 삼천(三川)으로 출병하여 주나라를 멸망시키십시오."
"주(周)나라를 멸망시키면 진나라는 왕업의 터전을 마련하게 되니 이 어찌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신이 그 계기를 만들어낼 터이니, 왕께서는 신을 위(魏)나라 대량으로 보내주십시오."
이것은 소진(蘇秦)이 연나라에서 위험을 직감했을 때 써먹은 수법이었다.
위험에 처했을 때 가장 안전하게 몸을 빼내는 방법으로 이것이 가장 효과적인 것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제(齊)나라가 위(魏)나라를 공격하는 동안 주나라를 치라는 장의의 계책을 들은 진무왕(秦武王)은 귀가 솔깃했다.
'장의(張儀)는 지금 조정 신료들의 탄핵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선왕의 공신을 선뜻 벌 줄 수도 없는 일이다. 장의가 위나라로 가면 조정 신료들도 무마할 수 있고, 천하 통일의 터전을 다질 수도 있다. 이야말로 일석이조(一石二鳥)가 아닌가.'
진무왕(秦武王)은 장의의 청을 허락하고 수레 30승(乘)을 내주어 위나라로 떠나 보냈다.
장의(張儀)는 진나라 재상의 인수를 반납하고 위나라 도읍인 대량으로 들어갔다.
대량(大梁)은 장의의 고향이기도 하다.
산천이 모두 눈에 익었다.
오랫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장의(張儀)는 감개무량해하며 궁으로 들어가 위애왕에게 인사를 올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위애왕(魏哀王)은 천하 제일의 외교가인 장의가 자신에게로 귀의해오자 몹시 기뻐했다.
"부디 과인을 도와 위(魏)나라를 일으켜 주시오."
위애왕(魏哀王)은 장의에게 재상으로 복귀할 것을 권했다.
장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또 다시 위나라 재상에 올랐다.
모든 것이 장의(張儀)가 예측한 대로 움직였다.
과연 제민왕(齊湣王)은 장의가 위나라의 재상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자 분개했다.
- 혓 바닥만 놀리는 이자가 또 무슨 짓을 꾸미려 하는가. 내 위(魏)나라를 쳐 장의를 붙잡아 천하 제후들이 보는 앞에서 찢어 죽이리라.
제민왕(齊湣王)은 군사를 일으켜 위나라의 대량 땅을 향해 진격했다.
이 소식을 접한 위애왕은 잔뜩 겁을 먹었다.
장의를 불러 의논했다.
"제(齊)나라가 우리 나라를 치려고 하니 어찌하면 좋겠소?"
장의(張儀)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왕께서는 염려하지 마십시오. 신이 제(齊)나라 군대를 저절로 물러가게 하겠습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오랫동안 자신을 섬겨온 풍희(馮喜)를 불러 귓속말로 지시했다.
"그대는 초(楚)나라 사신으로 가장하여 제(齊)나라로 가서 이리이리 하라."
그 날로 풍희는 제나라 도읍인 임치성을 향해 떠났다.
풍희(馮喜)는 임치성에 당도하자 제민왕에게 알현을 청하고 말했다.
"왕께서 이번에 위(魏)나라를 치시는 것은 장의를 몹시 미워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참말입니까?"
"그러하다."
그러자 풍희는 기밀입니다, 라고 말하고는 좌우를 물리쳐줄 것을 요구했다.
기밀이라는 말에 제민왕(齊湣王)은 좌우 시종을 내보내고 채근하듯 물었다
"과인에게만 알려야 한다는 기밀이 무엇인가?"
"왕께서 진실로 장의를 증오한다면 속히 위(魏)나라로 출병시킨 군대를 불러들이십시오. 신은 이번에 진(秦)나라로 갔다가 두 번째로 제나라에 들른 것인데, 진나를 떠나올 때 함양에서 들은 바가 있습니다. 장의(張儀)는 위나라로 가기전에 진왕과 비밀히 약속을 했다 합니다."
"약속이라니?"
"장의(張儀)는 진나라를 떠나기 전 진왕에게 '신이 위나라로 가면 제(齊)나라가 위나라를 칠 것입니다. 그러니 제나라가 위(魏)나라와 엉켜 싸움을 벌이는 동안 왕께서는 주(周)나라를 멸망시키십시오' 라고 했답니다."
"즉, 장의(張儀)는 제나라와 위나라 사이를 이간시키고 그 틈을 이용해 중원을 도모하려는 속셈으로 위(魏)나라에 거짓 망명한 것입니다. 따라서 왕께서 위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또 한 번 장의의 계책에 걸려드는 셈이 됩니다."
"그 증거로 진왕(秦王)은 장의가 진나라를 떠날 때 수레 30승(乘)을 붙여 전송했다고 합니다. 왕께서 장의에게 보복하시려면 속히 군대를 철군시키시고 위나라와 우호를 맺으십시오."
"그러면 진왕(秦王)은 장의를 믿지 못하고 다시 불러들이지 않을 것이며, 위(魏)나라에 머물러 있는 장의 또한 크게 힘을 쓰지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풍희의 말을 들은 제민왕(齊湣王)은 한편으로는 놀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대가 아니었더라면 과인은 또 한 번 장의(張儀)의 농간에 휘말려들 뻔했소."
그러고는 사자를 보내어 속히 회군하라 명했다.
이리하여 장의(張儀)의 위나라 망명은 완벽하게 이루어졌다.
그는 약 일 년쯤 위(魏)나라 재상직을 수행하다가 편히 세상을 떠났다.
자객의 손에 피살된 소진과는 대조적인 임종이었다.
그렇다면 장의에 대한 후세 사가(史家)들의 평은 어떠했을까?
중국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마천(司馬遷)은 장의를 몹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삼진(三晉 : 위, 조, 한)에는 임기응변의 변사(辯士)가 많았다.
합종론과 연횡론을 내세워 진나라를 강성하게 한 자들은 모두 삼진 사람들이다.
장의(張儀)가 한 일은 소진보다 더 심하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소진만을 미워한다.
그 이유는 소진(蘇秦)이 먼저 죽는 바람에 장의가 소진의 단점을 모두 들추어내 자신에게 유리하게 전개했기 때문이다.
장의(張儀)와 소진(蘇秦),
이 두 사람은 진실로 다 위험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혹평 중의 혹평(酷評)이다.
그러나 명, 청 시대에 들어서면 장의나 소진에 대한 평은 완전히 달라진다.
'뛰어난 재사(才士)' 혹은 '당대 최고의 외교가' 라는 수사를 붙이고 있는 것이다.
같은 인물이라도 시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가.
그렇다면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의 사람들은 장의와 소진을 어떻게 평가할까?
난세(亂世)의 뛰어난 재사라고 여길까, 아니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출세욕의 화신이라고 생각할까?
역으로 이런 평가를 보고 그 시대를 측정하는 것도 재미날 듯 싶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