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열국지(列國志)*

- 3부 일통 천하 (98)

작성자-미션|작성시간26.06.14|조회수27 목록 댓글 0

🎎 열국지의 세계에 탐닉하다
- 3부 일통 천하 (98)

제12권 사라지는 영웅들

  •  


제 11장 하나를 다시 여섯으로 (11)

장의가 죽은 것은 BC 309년으로, 이 해는 진무왕 2년에 해당한다.

그 해, 진무왕(秦武王)은 진나라에 승상제도를 두었다.
승상(丞相)이란 재상을 말한다.
그 전까지 진나라는 재상을 대량조(大良造), 서장(庶長) 등으로 불렀으나 이때에 이르러 승상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첫 승상으로 좌승상에는 저리질(樗里疾)을 임명했고, 우승상에는 감무(甘茂)를 임명했다.

저리질(樗里疾)은 진혜문왕의 이복동생으로 언변이 유창하고 지혜가 뛰어났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지낭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지낭(智囊)은 꾀주머니라는 뜻이다.
그는 진혜문왕 시절 장수로서도 많은 공을 세웠다.

반면 감무(甘茂)는 남방 하채 사람이다.
하채(下蔡)는 지금의 안휘성 봉대현이다.
장의의 천거로 발탁되었다.

진혜문왕 시절에 위장(魏章)과 함께 한중 땅을 정벌한 바 있다.
진무왕 대에 들어서 그 공을 인정받아 우승상에 올랐다.

승상제도를 도입한 이듬해인 BC 308년(진무왕 3년).
진무왕(秦武王)은 좌우 승상 저리질과 감무에게 지나가는 듯한 말로 중얼거렸다.
"삼천(三川)을 구경할 수만 있다면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겠소."

진무왕(秦武王)이 이 말을 던진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이는 지난날 장의가 위나라로 떠나기전,
- 제(齊)나라가 위나라를 치는 사이 주(周)나라를 멸망시켜 왕업의 터전을 마련하십시오.
라고 한 말에 대한 연장선이었다.

그때 진무왕(秦武王)은 장의가 시키는 대로 낙양으로의 출병을 단행하려 했으나, 제나라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위(魏)나라 공격을 중단하는 바람에 실천하지 못했다.
하지만 진무왕의 귓전에는 언제나 그 말이 맴돌았다.

'왕업의 터전!'
꿈만은 아닌 듯했다.
칠웅(七雄) 중에서도 진나라의 국력은 단연 압도적이지 않은가.

우승상 감무(甘茂)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대뜸 진무왕의 뜻을 알아차렸다.
"삼천을 구경하기 위해서는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오?"

"우리 진(秦)나라에서 낙양으로 가려면 반드시 한나라 의양(宜陽) 땅을 지나야 합니다. 먼저 의양을 도모하심이 순서입니다."
"좋은 말이오. 경(卿)은 과인을 위해 의양성으로 가 삼천으로 가는 길을 닦을 수 있겠소?"

삼천(三川)으로 가는 길을 닦으라는 말은 곧 의양(宜陽)을 점령하라는 뜻이었다.
의양은 지금의 하남성 의양현이다.
교통의 요충지로 한때 한(韓)나라 도읍이기도 했다.

여느 때 같았으면 두말없이 명을 따를 감무였다.
그런데 그 날은 그렇지 않았다.
감무(甘茂)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궁을 물러났다.

얼마 후, 진무왕은 여러 장수들과 식양(息壤) 땅으로 사냥을 나갔다.
마침 우승상 감무(甘茂)가 진무왕의 차우가 되어 여우의 뒤를 쫓게 되었다.
사냥은 별로 신통치 않았다.

흥을 잃은 진무왕(秦武王)이 생각났다는 듯 오른편의 감무를 돌아보며 물었다.
"경은 어째서 며칠 전 과인이 했던 말에 대해 아무 답도 하지 않는 것이오?"
감무(甘茂)가 되물었다.
"의양을 치는 일 말입니까?"
"그렇소."

"왕께서는 의양(宜陽)을 치지 마십시오. 신은 의양성을 함락시킬 수 없습니다."
"백전노장의 경이 그런 말을 하다니, 무슨 뜻인지 알 수 없구려."
감무(甘茂)는 정색하고 설명했다.

"의양(宜陽)은 하늘이 내려준 땅입니다. 지세도 험하고 성벽도 높습니다. 말이 현(縣)일 뿐 실제로는 군(郡)이나 다름없습니다. 따라서 단시일 내에 함락시킬 수 있는 땅이 아닙니다.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한 마부가 있었다.
그 마부의 이름은 증삼(曾參)이었다.
공자의 제자 증삼과 글자 하나 틀리지 않은 동명이인(同名異人)이었다.

어느 날, 마부 증삼이 살인을 했다.
이 소문이 퍼져 어떤 사람이 공자의 제자 증삼의 어머니에게 달려가 말했다.
- 큰일 났습니다. 증삼(曾參)이 살인을 했습니다.

하지만 베를 짜고 있던 증삼의 어머니는 조금도 놀라지 않고 대답했다.
- 내 아들 증삼(曾參)은 효자다. 결코 살인할 사람이 아니다.
그러고는 여전히 베를 짰다.

또 다른 사람이 달려와 외쳤다.
- 증삼(曾參)이 사람을 죽였습니다.
어머니는 베 짜던 손을 잠시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 세상 사람이 다 살인을 한다 해도 내 아들만은 그런 짓을 할 리 없다.

잠시 후 또 다른 사람이 달려왔다.
- 살인자 이름이 틀림없이 증삼(曾參)이라고 합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베틀에서 내려와 관가로 달려갔다.
가보니 물론 그 살인자는 그녀의 아들이 아닌 마부 증삼이었다.......

"대저 공자의 제자 증삼(曾參)은 어질기로 유명한 분입니다. 그러한 분의 어머니도 '아들이 살인했다'는 말을 세 번 듣자 곧이들었습니다. 신은 증삼만큼 어질지 못합니다. 왕 또한 증삼의 어머니가 증삼을 믿었던 만큼 신을 믿지 못하실 것입니다."

"더욱이 신은 기려지신(羇旅之臣)입니다. 만일 어떤 신하가 '감무가 사람을 죽였다' 고 한다면, 왕은 세 번은 커녕 단 한 번에 그 말을 믿고 신을 잡아오라고 명을 내리실 것입니다. 신이 두려워하는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기려(羇旅) -.
객지를 떠돌아다니는 나그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기려지신(羇旅之臣)은 타국 출신의 신료를 말함이다.
감무는 진(秦)나라 출신이 아닌 남방 태생이었다.
아무래도 본국 출신과는 차별이 있었을 것이다.

조정 내에 그를 시기하는 사람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그가 증삼(曾參)의 고사를 예로 든 것은 바로 이러한 분위기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감무의 말을 들은 진무왕(秦武王)은 한동안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만일 누가 그대를 중상모략(中傷謀略)할지라도 과인은 결코 그 말을 듣지 않을 것을 맹세하오."
그러고는 즉석에서 사냥한 짐승의 피를 내어 입술에 발랐다.

이듬해인 BC 307년(진무왕 4년) 가을.
마침내 감무(甘茂)는 대장에 임명되어 한나라 의양 땅으로 쳐들어갔다.
과연 의양성은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였다.

해가 바뀌었다.
출병한 지 5개월이 지났으나 감무(甘茂)는 좀처럼 의양성을 함락시키지 못했다.

그러자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좌승상 저리질(樗里疾)을 비롯한 진나라 출신의 신료들이 감무를 모략, 탄핵하기 시작한 것이다.

- 감무(甘茂)는 한나라와 내통하고 일부러 시일을 끌고 있습니다. 당장 소환하시어 옥에 가두십시오.
진무왕(秦武王)도 의심이 들었던지 감무에게 사자를 보내 회군하라 명했다.

이에 감무(甘茂)는 품속에서 봉함 하나를 꺼내 진무왕의 사자에게 건네줬다.
"다른 말은 필요없다. 이것만 왕께 전하라."
사자는 함양으로 돌아가 감무가 내준 봉함을 진무왕에게 바쳤다.

진무왕이 봉함을 뜯어보니 그 안에는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 식양(息壤).
진무왕의 뇌리로 퍼뜩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그렇구나. 나는 지난날 식양에서 감무와 맹세한 일이 있다. 내가 하마터면 저리질(樗里疾)의 말을 믿고 그를 의심할 뻔했구나!'

다음날 진무왕(秦武王)은 조당으로 나가 명을 내렸다.
"의양성(宜陽城)은 치기 어려운 곳이다. 군사 5만을 추가로 감무에게 보내라!"

그 후 두 달이 안 돼 감무(甘茂)는 한나라 군사 6만 명을 목베고 끝내 의양성을 함락시켰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