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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국지(列國志)*

- 3부 일통 천하 (103)

작성자-미션|작성시간26.06.19|조회수27 목록 댓글 1

🎎 열국지의 세계에 탐닉하다
- 3부 일통 천하 (103)

제12권 사라지는 영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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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장 조무령왕과 호복기사 (4)

성인이 된 조무령왕(趙武靈王)은 체구가 건장했다.
키는 8척 8촌이었고, 얼굴 모습은 새의 부리 같았다.
짙은 구레나루에 수염은 규룡(虯龍)같이 굽슬굽슬했고, 피부는 검으면서도 윤이 났다.
가슴은 넓어 3척이나 되었다.

조무령왕(趙武靈王)의 성격을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 역시 <사기(史記)>의 <조세가>에 기록되어 있다.
이 무렵, 중원의 강대국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서로 왕호(王號)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조무령왕은 코방귀를 뀌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알맹이도 없으면서 어찌 허황된 명분에만 안주할 것인가?

그러고는 신하와 백성들에게 자기를 부를 때 여전히 '군(君, 임금)'이라 부르도록 명령했다.
조(趙)나라가 왕을 자칭하기 시작한 것은 그 아들대에 가서다.
그러므로 '무령왕(武靈王)'은 나중에 추존된 칭호다.

그는 결혼한 지 얼마 후 아들을 낳았다.
아들의 이름은 장(章)으로 조무령왕은 그를 세자로 삼았다.

재위 11년째 되던 해, 연나라에 '자지(子之)의 정변'이 일어났다.
연나라 공자 직(職)이 한나라로 망명해오자, 조무령왕은 공자 직을 자기 나라로 불러들여 연왕(燕王)으로 삼고 장군 악지(樂池)로 하여금 호위하여 연나라로 들어가게 했다.

그러나 이내 연소왕(燕昭王)이 즉위했다는 소식이 날아들면서 그 일은 무산되고 말았다.

조무령왕 16년 되던 해, 진나라의 진혜문왕(秦惠文王)이 세상을 떠났다.
이 해는 자신의 영토를 순시했는데, 대릉(大陵)이라는 땅에 이르렀을 때 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미인 하나를 보았다.
미인은 거문고를 타며 시 한 수를 읊었다.

미인이여, 광채가 눈부시도다.
농염한 그 모습 능소화(凌霄花)같아라.
운명이여, 가련한 내 운명이여.
이 왜영(娃贏)을 몰라주다니.

그 뒤로 조무령왕(趙武靈王)은 꿈속의 미인을 한시도 잊지 못했다.
한단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술자리 때마다 신하들에게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조정 신료 중 오광(吳廣)이라는 신하가 있었다.
그런데 그의 딸 이름이 왜영이었다.
왜영(娃贏) 또한 거문고의 명인이었다.

기이하게 생각한 오광(吳廣)이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조무령왕의 꿈 이야기를 들려주자 아내가 말했다.
- 그 미인은 필시 우리 딸입니다.

어느 날, 오광(吳廣)은 조무령왕을 자기 집으로 초빙했다.
술자리가 무르익었을 때 그는 딸 왜영(娃贏)을 불러내어 거문고를 연주하게 했다.

조무령왕(趙武靈王)은 깜짝 놀랐다.
바로 꿈속에서 본 그 미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날로 그는 오광의 딸을 궁중으로 데리고 가 후궁으로 삼았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그 여인을 '맹요(孟姚)' 혹은 '오왜(吳娃)'라고 불렀다.
맹요는 '아름다운 맏딸' 이라는 뜻이요, 오왜는 '아름다운 오씨'라는 뜻이다.

그 뒤 맹요(孟姚)도 아들 하나를 낳았다.
그가 공자 하(何)다.
공자 하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한나라 출신의 부인이 죽어 마침내 맹요가 왕후의 자리에 올랐다.
그녀가 바로 혜후(惠后)다.

조무령왕 18년에 진무왕(秦武王)이 낙양에서 구정(九鼎)을 들다가 다리가 부러져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무렵, 조무령왕(趙武靈王)의 가슴속에 하나의 야심이 불타올랐다.
'우리 조(趙)나라도 진이나 제나라처럼 강해질 수는 없을까?'
그는 대등한 자격으로 진왕(秦王)이나 제왕(齊王)을 상대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선행해야 할 것이 하나 있었다.

- 힘!
조무령왕(趙武靈王)의 머릿속은 늘 바삐 움직였다.
'어떻게 하면 힘을 기를 수 있을까?'
조나라는 원래 진(晉)에서 갈라져 나왔다.

진(晉)은 북방을 근거로 한 나라였다.
주변으로 여러 적족들이 많았다.
적족(狄族)들은 때로는 쇠약해지고 때로는 흥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코 멸망하지는 않았다.
진(晉)에서 파생된 조(趙)나라는 싫으나 좋으나 북방 민족과 접촉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우수한 점과 모자라는 점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오랑캐의 저력(底力)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조무령왕(趙武靈王)의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리하여 하나의 결론에 다다른 것이 바로 전쟁터에서의 기동력과 전투력이었다.

- 병차(兵車) 대 기마(騎馬)
중원의 주전투 부대는 보병과 병차대였다.
반면 적족(狄族)은 기마대였다.

'어느 것이 강할까?'
만일 병차대가 앞선다면 기마대를 주력으로 한 적족(狄族)은 진작에 멸망했어야 한다.
그런데 적족은 끈질기게 살아남아 늘 중원 땅을 노리고 남하하는 것이다.

'바로 이거다.'
조무령왕(趙武靈王)의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기마(騎馬)가 강하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지만 오랑캐라 불리는 적족(狄族)의 저력은 기마대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었다.

빠른 기동력.
거기에 병차(兵車) 못지 않은 파괴력.
평지뿐 아니라 험한 지역도 마음대로 들락거릴 수 있는 원활함.

마침내 조무령왕(趙武靈王)은 하나의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 기마대를 창설하리라!
당시 중원인들로서는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엉뚱한 발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조무령왕(趙武靈王)은 신하들 모르게 임시로 기마대 1백 기를 창설하여 훈련시켰다.
그런데 뜻밖에도 기마대(騎馬隊)는 전혀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병차대와의 가상 전투에서 번번이 패하고 마는 것이었다.

'이상하다.'
그는 훈련장으로 나가 기마대(騎馬隊)의 전투 방식을 관찰했다.
이내 그 원인을 찾아냈다.
- 옷 때문이다.

당시 중원인들이 입는 옷은 '의상(衣裳)'이라고 하여 소매가 긴 저고리에 통이 넓은 치마를 입었다.
오랫 동안의 풍습이요, 중원인의 자긍심이었다.

그런데 그 의상(衣裳)이 말을 타는 데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즉 기마대가 약한 것이 아니라 말을 타는 병사들의 움직임이 어설펐던 것이다.

그렇다면 적족(狄族)은 어떠한가.
그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소매가 짧고 통이 좁은 바지를 입고 생활해왔다.
그것을 '호복(胡服)' 이라고 한다.
'복(服)'은 바지를 뜻한다.

치마를 뜻하는 상(裳)에 비해 무척 간편하다.
뛰는 데도 편하고 말을 타는 데는 두말할 나위 없이 효율적이다.

그러면 중원인(中原人)은 어째서 이 간편한 호복을 입지 않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오랑캐 옷' 이기 때문이다.
옛날 중원인이 주변 이족(異族)들을 깔보는 마음은 오늘날 우리들의 상상을 뛰어남을 정도로 심했다.

- 중원(中原)의 문화만이 최고다.
이런 의식이 팽배해 있었다.
어쩌다 중원인이 적족의 풍습을 흉내내면 그 사람은 온갖 수모와 멸시를 당해야 했다.
그 정도로 중원인(中原人)의 자긍심은 대단했다.

그들이 말을 타는 대신 수레를 운송 수단으로 선택한 것도 바로 의상(衣裳)에 대한 풍습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런 중원인이 호복(胡服)을 입고 말을 탄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할 일이었다.

그러나 조무령왕(趙武靈王)은 이러한 사고를 과감히 떨쳐버렸다.
의상을 입고 있던 자신의 기마병들에게 명을 내렸다.
- 호복(胡服)으로 바꿔 입어라!

과연 그때부터 기마대(騎馬隊)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났다.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병차 한 대의 전투력과 맞먹었다.
- 한 마리의 말로 네 마리 말이 끄는 병차(兵車)를 상대한다.

얼마나 효과적인가.
호복(胡服)차림에 말을 타고 병차대를 상대하는 기마병의 훈련 모습을 지켜보던 조무령왕(趙武靈王)은 환희와 감동에 몸을 떨지 않을 수 없었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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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진고개 | 작성시간 26.06.19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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