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 (653)
제19장 백사자 12회
춘매는 대수롭게 여기질 않고 먼저 짐을 들고 출발했다.
춘매를 먼저 보내고 나서 반금련은 맹옥루를 찾아갔다. 그녀와 상의할 일이 있다고 춘매에게 말한 것은 거짓말이었다. 자기는 늦게 출발하려는 속셈에서 한 말이었다.
이병아가 무당을 찾아 축원을 드리러 집을 나서는 것을 제 눈으로 확인한 다음 고양이를 그녀의 거처 가까이 데려다 놓고 친정으로 가야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고양이를 이병아의 거처 가까이 데려다 놓는 것을 아무도 보지 않아야 되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자기의 수상한 행동을 눈치채어 나중에 증인이 될 그런 사람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춘매를 미리 친정집으로 보낸 것이었다.
반금련이 아침부터 찾아오자 맹옥루는 반긴다.
“어서 와 오늘은 아침부터 바둑이 두고 싶은 모양이지?”
“형님, 그게 아니라 오늘이 우리 어머니 생신이지 뭐예요. 그래서 친정에 좀 다녀올려고요”
“어 그래, 맞어. 이맘때가 자네 친정 어머니 생신이었다구. 보자... 난 무슨 선물을 해야 되지.
어제라도 얘길 하지 않고 그랬으면 미리 선물을 준비했지”
“선물은 무슨 선물요. 괜찮아요”
“괜찮다니, 자네 어머니 생신인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어”
맹옥루는 일어나 벽장 쪽으로 가서 까맣고 방방한 작은 항아리 하나를 꺼내가지고 온다.
“이거라도 갖다드려”
“어머 꿀단지 아니예요”
“맞어 토종꿀이라구”
“아이 고마워라. 우리 어머니가 무척 기뻐하시겠어여. 꿀은 아주 좋아하시거든요”
“그래. 하하하... 갔다가 오늘 돌아오지?”
“아니요. 가서 며칠 쉬었다 올까 해요”
“그래?”
해마다 당일로 돌아왔었는데 반금련은 이번에는 끔직한 일을 저지르려는 판이어서 현장을 피해 며칠 친정집에 머물다가 올 속셈인 것이다.
그래야 자기가 더욱 안전할 것 같았다.
“그럼 형님, 다녀올게요”
인사를 하고 반금련이 꿀단지를 들고서 거실에서 나가려 하자 맹옥루는 문득 생각이 난 듯 히죽이 웃으면서 반농담조로 묻는다.
“고양이는 어떻게... 데리고 가?”
“아니요”
반금련은 맹옥루의 표정을 힐끗 살피듯 바라본다. 아마도 생각이 있는 것 같아 보여서 되묻는다.
“형님이 데리고 있을래요?”
“......”
“밤으로만 말이에요. 데리고 자보라구요”
“하하하”
“낮에는 바깥에 돌아다닐테니까 내버려두고요. 밤으로만 데리고 있어주면 좋겠는데...”
반금련은 맹옥루가 당장 지금부터 데리고 있겠다고 하면 오늘의 말하자면 거사(擧事)가 틀려버려 큰일이어서 시치미를 뚝 떼고 ‘밤으로만’ 이라는 말을 유난히 뚜렷한 발음으로 지껄인다.
“그래 볼까. 히히히...”
맹옥루도 마침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는 킬킬 웃는다.
“그러라구요. 내가 춘매한테 일러놓을께요. 밤엔 백사자를 형님한테 데려다 드리라고 호호호...”
반금련이 꿀단지를 들고 자기의 방으로 돌아가자 거실에 있던 고양이가 꼬리를 흔들며 다가온다. 그녀는 꿀단지를 탁자 위에 놓고 얼른 고양이를 안아 올려서 그 주둥이에다가 쪽! 소리가 나도록 입맞춤을 한다.
반금련은 고양이를 안은 채 한쪽 창으로 가서 문을 조금 열고 바깥을 내다보기 시작했다. 그 창문에서는 맞바로 이병아의 거처가 바라보이는 것이었다. 이병아가 무당한테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것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기다리면 쉬 나타나지 않는 법이다. 묘한 일이다. 이병아도 좀처럼 그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빌어먹을 년, 뭘 꾸물거리고 있는 거야. 빨리빨리 차려입고 무당을 찾아가지 않고...”
이런 욕지거리를 혼자서 투덜투덜 수없이 내뱉은 다음에야 이병아의 모습이 멀리 정원의 나목(裸木)들 사이로 비쳤다. 화사한 겨울 나들이옷으로 차려 입은 그녀는 수춘이를 데리고 현관을 나서 몹시 추운 듯 잔뜩 고개를 움츠리며 전당포 쪽 문으로 해서 행길로 사라져갔다.
“인제 됐다. 자, 가자. 백사자야”
반금련은 고양이를 안고 거실을 나선다.
바깥에 사람이라곤 아무도 보이지가 않는다. 날씨가 워낙 추워서 모두 방문을 처닫고 들어앉아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반금련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조심스레, 그러면서도 무슨 볼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예사롭게 종종걸음으로 회랑을 걸어간다.
“아이 추워. 날씨가 왜 이렇게 춥지”
그녀는 곧바로 이병아의 거처까지 가질 않고, 중간에서 회랑을 비취헌 쪽으로 꺾어진다.
비취헌의 문을 열고 한 걸음 안으로 들어선 그녀는 문을 닫질 않고 그대로 바깥을 향해 웅크리고 앉으며 고양이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고양이의 머리를 가만가만 한손으로 쓰다듬으며 속삭이듯이 말한다.
“백사자야, 저기 저 집이다. 저 집 안에 들어가서 빨간 옷을 입은 아이를 물어뜯어 죽이라구. 사정없이 말이야. 알겠지”
“야웅-”
“그래그래, 잘해줘. 자, 그럼 어서 달려가!”
반금련은 고양이의 엉덩이를 살짝 치며 앞으로 밀어낸다. 고양이는 쏜살같이 이병아의 집을 향해 달려간다.
그렇게 고양이를 말하자면 거사 현장에 투입시킨 다음 반금련은 자기 거처로 돌아가 서둘러 채비를 하고서 친정집으로 떠났다.
관가를 침상에 재워놓고 혼자 그 곁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던 여의는 현관문이 자꾸 덜컹덩거리는 소리에 무슨 일인가 싶어 나가 보았다.
“누구요, 누가 왔소?”
하면서 문을 열어보니 뜻밖에도 고양이가 아닌가.
“어머, 백사자 아냐. 백사자가 웬일로 여길 다 찾아왔지 하하하...”
여의는 절로 웃음이 나온다.
관가의 유모인 여의도 반금련이 키우고 있는 교양이의 애칭이 ‘백사자’이고, 또 그 백사자를 반금련이 안고 다니는걸 곧잘 봐서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백사자가 다름 아닌 바로 반금련의 정부(情夫)인 셈이라는 말도 듣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백사자가 마치 자기네 거처를 찾아오듯 현관문을 흔들어대다니 재미있다 싶었던 것이다.
“야옹 야옹 ~”
고양이는 여의를 빤히 쳐다보며 으르렁거리듯이 소리를 지른다.
얼른 봐도 몹시 추워 보인다. 백설같이 흰 털에 뒤덮인 몸을 잔뜩 웅크리고 가늘게 떨고 있는 듯하다싶은 날씨가 추운 탓이기도 하지만, 고양이가 바짝 긴장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마님으로부터 집안에 침입해서 빨간 옷을 입은 아이를 물어뜯어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으니 말이다.
“어서 들어와. 추운데...”
마치 여의의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듯 고양이는 부드럽게 소리를 내며 얼른 현관 안으로 들어선다.
“야옹 ~”
집안에 들어오자 고양이는 거침없이 여의의 앞장을 서서 복도를 달리다시피 안으로 향한다.
“어머, 마치 자기 집에 온 것 같네. 몹시 좋은 모양이지. 하하하...”
여의는 고양이가 좋아서 그러는 줄 알고 기분 좋게 웃는다.
고양이는 얼른 문이 열려있는 응접실로 들어간다. 그러자,
“거긴 뭐 하러 들어가”
하면서 여의도 잰걸음으로 뒤따라 들어가 본다.
고양이는 마치 무엇을 찾는 듯 응접실 안을 이리 저리 쏘다닌다. 탁자 위는 물론이고, 한쪽에 놓인 장식장과 벽에 걸려있는 몇 개의 액자까지 살피듯 쳐다본다.
“하하하... 백사자야, 뭘 그렇게 살피지. 뭘 찾는 거야”
“야웅~ ”
“여기는 손님을 접대하는 응접실이라구.
너 같은 고양이를 접대하는 곳이 아니야.
자, 어서 나가라구. 아마 네가 배가 고픈 모양이니 주방으로 가자구.”
여의가 몰아내자, 고양이는 순순히 앞장서서 다시 복도로 나간다.
“이리 와 이리”
하면서 여의는 고양이를 주방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고양이는 조금 전과는 달리 이제 꼬리까지 살랑살랑 흔들며 다소곳이 여의를 따른다.
다음회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