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병매 (656)
제19장 백사자 15
서문경의 진노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마치 살짝 실성한 사람 같았다.
여의로부터 어떻게 된 일인지 대충 얘기를 듣자 다짜고짜 그녀의 따귀를 사정없이 냅다 갈겨댔다. 유모라는 것이 아기를 어떻게 봤기에 이 모양을 만들어 놓았느냐고, 고양이보다도 오히려 네년이 더 죽일 년이라고 욕을 퍼부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관가가 이런 지경이 되도록 뭘 하고 있었느냐고, 오월랑을 비롯해서 그곳에 남아있는 이교아와 맹옥루에게도 공연히 호통을 쳐댔다. 그 부인들이 거처가 다른데 어떻게 그런 불상사가 안 일어나도록 할 수가 있었겠는가 말이다. 너무나 화가 치밀어 아무에게나 닥치는 대로 분통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의생에 대해서도 만약 관가를 살려놓지 못하면 재미없다는 식으로 으름장을 놓았다. 그리고 서문경은 이병아가 보이지 않는 걸 알고 묻는다.
“관가 어미는 어딜 갔지?”
“무당한테 갔어요. 초하루와 보름날이면 축원을 드리러 가거든요”
여의가 울먹이는 듯한 소리로 조심스레 대답한다.
“어서 가서 불러오라구”
“예”
여의는 얼른 방을 나간다. 그 자리를 벗어나게 되어 살았다는 그런 표정이다.
여의의 전갈을 받고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간 이병아는 내실로 들어서 관가의 몰골을 보자 그만 자리에 비실 쓰러지고 말았다.
“아이고머니나!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헐떡거리며 급히 돌아온 데다가 너무나 끔찍한 일에 놀라 정신이 아찔해지고 만 것이다.
반금련의 친정어머니 생신에 갔던 춘매가 돌아온 것은 해질 무렵이었다. 반금련은 며칠 친정에서 쉬었다가 오기로 하고 춘매만 혼자 당일로 귀가를 한 것이다.
관가가 고양이한테 물어 뜯겨서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이 되었다는 말은 듣고 춘매 역시 무척 놀랐다. 그리고 슬그머니 두려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만약 관가가 죽기라도 한다면 고양이를 키운 반금련 마님은 어떻게 되는 건지, 생각하니 절로 몸이 떨렸다. 짐승인 고양이가 한 짓이니, 키운 주인에게 직접적인 잘못이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러나 책임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그 불똥이 어쩌면 자기에게까지 미칠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서문경의 성깔로 봐서 화가 극에 달하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것이다.
춘매는 이일을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몰라서 반금련과 가까운 사이인 맹옥루를 찾아갔다.
맹옥루는 저녁을 먹고 나서 거실에서 혼자 차를 마시고 있었다. 춘매가 찾아오자 들고 있던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말없이 바라보기만 한다. 절로 표정이 굳어진다.
“마님, 관가가 백사자에게 물렸다면서요?”
춘매는 대뜸 이렇게 말을 꺼냈다.
“야단났구나. 그놈의 백사잔가 뭔가 하는 고양이 때문에...”
“이일은 어쩌면 좋죠?”
“.......”
“예? 마님”
그러자 맹옥루는 한결 가라앉은 어조로 바뀐다.
“너의 마님도 돌아왔냐?”
“아니요. 몸이 좀 피곤하다고 며칠 쉬었다가 오신다 그랬어요”
“태평이군. 집에 난리가 났는데 며칠 쉬었다가 오다니...”
“이런 일이 일어난 줄을 모르시거든요”
“좌우간 말이야 당장에 가서 얘길 하고 돌아오도록 하라구”
“밤에는 못 간다구요. 얼마나 먼데요”
“그럼 내일 날이 새거든 곧바로 가서 알리라구. 알겠지?”
“예”
“그럼 됐으니 나가봐. 너 나한테 할말 없지? 난 혼자 있고 싶다구”
춘매와 같이 얘기를 나누고 있는 것도 불안한 듯 맹옥루는 매정할 정도로 거침없이 말한다.
돌아서 거실을 나가려던 춘매는 몹시 기분이 안 좋아 멈추어 서서 맹옥루를 헬끗 돌아보며 기어이 짓궂게 이죽거리듯이 지껄인다.
“우리 마님이 말이에요, 집에 이런 일이 일어난 줄을 모르고 뭐라 그러시는지 아시겠어요? 오늘밤에 백사자를 맹옥루 마님한테 데려다 드리라지 뭐예요. 그러기로 했다면서요?”
“뭐라구?”
맹옥루는 그만 발칵 화를 내고 만다.
“하하하...”
춘매는 재미있다는 듯이 웃고는 얼른 밖으로 나가 버린다.
“저것이....”
맹옥루는 의자에서 벌떡 몸을 일으켜 뒤쫓아 나갈 듯이 에라, 참자 싶으며 도로 털썩 궁둥이를 내린다.
*
이튿날 아침 날이 새자 곧바로 춘매는 반금련의 친정집으로 향했다. 찾아온 춘매로부터 백사자가 관가를 물어뜯어서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이 되었다는 말을 들은 반금련은 깜짝 놀란다,
“어머, 그게 정말이야?”
그러나 그 눈빛은 무척 기쁜 소식을 들은 것처럼 밝게 반질거린다.
“마님, 빨리 집에 가셔야 되겠어요”
“그래야 되겠는데... 관가가 죽지는 않았다 그거지?”
“아직 목숨은 붙어 있는가봐요”
“음 - 이거 야단났군”
그제야 반금련은 무척 근심이 되는 듯한 그런 표정으로 바뀐다. 실제로 걱정이 되는 것이다.
용케 백사자가 시킨 대로 일을 하긴 했는 모양인데, 관가가 아직 목숨이 붙어있다면 어쩌면 살아날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깨끗이 뒈져 버려야 목적이 달성 되는 건데, 일이 어중간하게 끝나서는 오히려 화만 자초한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반금련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당장 집으로 돌아가야 할지, 아니면 처음 예정대로 몸이 피곤하다는 핑계로 며칠 쉬었다가 귀가하는 게 좋을는지... 춘매가 일부러 그 사실을 알리고 데리러 오기까지 했는데, 안간다면 오히려 의심을 받고, 서문경의 화만 돋울 것 같았다. 당장 돌아가는 게 옳겠는데, 막상 귀가를 하려니 왈칵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반금련은 이를 악물었다. 기왕에 발등에 떨어진 불똥이니, 눈 똑바로 뜨고 감당해내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싶어서 귀가의 채비를 서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