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 (662)
제20장 흉몽(凶夢) 3
“글쎄요...”
도무지 누군지 이병아는 알 수가 없다. 전혀 낯선 얼굴이다.
“나를 몰라보다니... 자, 자세히 보라구. 누군지”
그러면서 남자는 얼굴을 쑥 앞으로 내밀어 보인다.
“어머나”
이병아는 깜짝 놀란다. 뜻밖에도 죽은 남편 화자허(化子虛)가 아닌가.
“이제 알아 본 모양이지”
화자허는 싱그레 웃는다.
“아니 당신이 이 밤중에 웬 일이에요”
“왜, 내가 찾아오면 안되나”
“안되는 게 아니라, 너무 오래간만이어서 말이죠. 그동안 어디가 있다가 오시는 거예요?”
“염라국(閻羅國)에 가 있었다구”
“염라국이 어딘데요”
“당신은 아직 설명을 해도 모른다구. 그런데 말이야 내가 당신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서 찾아왔다구”
“뭔데요. 물어보시라구요”
그러자 화자허는 안고 있는 아기를 이병아에게 보이며 묻는다.
“이 아기가 누구지?”
“글쎄요, 누군지 잘 모르겠는데요”
“그래? 자, 그럼 자세히 보라구”
화자허는 그 아기를 이병아 앞으로 바싹 내밀어 보인다.
“어머나!”
“이병아는 입이 딱 벌어지고 만다.
다름 아닌 바로 죽은 관가였던 것이다. 분명히 얼마 전에 고양이에게 물어 뜯겨 죽고 말았는데,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서 눈앞에 나타나다니, 더구나 죽은 전남편 화자허가 안고 찾아오다니, 도무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어서 이병아는 뭐라고 얼른 말이 나오지가 않는다.
“인제 누군지 알겠어. 누구야?”
“.......”
“왜 대답이 없지?”
그제야 이병아는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내 아들 관가예요”
“당신 아들이야... 뭐 이름이 관가라구?”
“예”
“누구하고 이 아기를 낳았지?”
“........”
“이 아기의 애비가 누구냐 말이야. 응?”
그래도 아무 대답이 없자 그만 화자허는 두 눈을 부릅뜨며 무섭게 노려본다. 흰자위가 푸르스름하게 변하면서 두려움에 그만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찔끔 목을 움츠린다.
“왜 대답을 못하지, 얼굴에서 손을 떼고 대답을 해봐. 얼굴을 가린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구”
“........”
“어서, 손을 못 떼겠어”
고함을 지르는 것도 아닌데, 그 목소리가 이상하게도 으스스한 그런 울림으로 들려 섬뜩한 생각에 이병아는 온몸을 바르르 떤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얼굴에서 손을 뗀다.
“대답을 해 보라구. 이 아기의 애비가 누군지”
“........”
“끝내 대답을 못하는 걸 보니 그래도 한 가닥 죄책감은 남아있는 모양이지. 대답을 안한다고 내가 이 아기의 애비가 누군지를 모를 것 같애. 천만에. 다 안다구. 허허허...”
화자허는 시뻘건 핏발이 선 푸르스름한 눈에 웃음을 띠며 껄껄 소리를 내어 웃는다. 그리고 말을 잇는다.
“염라국에 가면 모든 게 다 밝혀지게 되어 있다구. 아무리 이승에서는 감쪽같이 속았어도 그곳에 가면 대번에 알게 된다 그거야. 지나간 세월이 훤히 그림처럼 눈앞에 펼쳐지기도 한다니까”
“..........”
“한번은 말이야 재미삼아 지나간 세월을 구경하고 있으니까 글쎄 밤중에 우리 집 담 옆의 호두나무에 등불이 걸려있지 않겠어.
웬 등불인지 이상하다 싶어서 유심히 지켜보니까 시꺼먼 그림자 하나가 담을 넘더라구.
누군가 하고 살펴보니 서문경이란 놈이 아니겠어. 그녀석이 당신 침실로 찾아들어가지 뭐야.
아니 저놈이...
싶으며 그 때 나는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는가 살펴보니 기방에서 술을 마시고 있더라니까.
내가 밖에서 술을 마시는 날 밤에는 그 뒤 계속 호두나무에 등불을 달아 서문경이란 놈을 불러 들이더라구.
어때,
내 말이 틀렸나?”
이병아는 놀라움과 두려움에 바짝 굳어져서 넋이 나간 듯 그저 멀뚱히 화자허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너 이년!”
화자허는 말투가 싹 달라진다.
“네년은 그때부터 벌써 나를 배반하고 서문경이란 놈과 붙었구나. 남편의 친구와 붙어 놀아난 년이 겉으로는 요조숙녀인 것처럼.......
이 더러운 년!”
그만 냅다 호통을 치며 화자허는 안고 있던 아기를 이병아에게 사정없이 내던져 버린다.
화들짝 놀라며 이병아는 벌렁 뒤로 넘어진다.
그런데 아기를 내던지고 돌아서서 방을 나가는 화자허를 보니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가 아닌가.
온몸이 하얀 바로 거창하게 큰 백사자였다.
“으악~”
냅다 이병아는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눈을 떴다.
물론 그것은 꿈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게 도무지 꿈처럼 여겨지지가 않았다.
방안은 어두웠다.
어둠 속에 마치 지금도 그 사람 크기만한 흰 고양이가 방문 밖으로 걸어 나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직도 희끄무레한 형체가 방문 쪽에 보이는 듯했다. 꿈의 잔영(殘影)이라고나 할까.
“아이고 무서워~ 으 으 으 ~~”
누운 채 이병아는 온몸을 와들와들 떨기 시작했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잠시 후 어디선가 야웅 야웅 야웅...
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집 바깥에서 우는 것 같기도 했고, 바로 방문 밖 복도에서 들리는 듯도 했다. 그런데 그 소리가 실제로 고양이 우는 소린지, 아니면 환청(幻聽)인지 도무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다음회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