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쟁 중에서]
의원으로서
이 세상의 모든 병, 모든 상처를 고루 모두 들여다보고,
매만지고 싶어하는 허준의 소망은 현실로 닥쳤다.
이 나라 역사상 가장 참담하고,
잔혹한 전쟁이 임진왜란이라는 이름으로 닥친 것이다.
"난리가 났다!"
"왜군이 쳐들어온다!"
난리나면,
이 나라에서는 대륙세인 중국으로 부터의 침입과 해양세인 왜로부터의 침략밖에
없다.
특히,
그 왜는 조선 사람이라면 누구나 잊지
못하는 조상 대대의 기억이 있다.
여말. 선초,
일본남방과 대마도를 본거지로 한
왜구들의 그 엄청난 분탕질 ...
척박한 화산도에 칩거해 사는 왜족은
바다 건너 조선땅 특히,
삼남의 비옥한 들에 추수철이 되면
거의 어김없이 적게는 10여 척,
1백 명 미만의 해적 규모로,
많게는 2백 명을 태운 대형선박 5백척
이라는 일대 전쟁의 규모로 몰려와
곡식과 가축을 빼앗고,
여자를 끌고 가고 조선의 남아라면
임부의 뱃속에 든 태아까지도 서슴없이
죽이는 만행을 거침없이 저질렀다.
비단 삼남에서만 있었던 사실이 아니다.
영, 호남과 충청도의 곡창지역은 물론,
여경의 지호지간인 강화도를 위시,
황해 넓은들과 평안도 ·함경도 저 북쪽
오지에 이르기까진 짓밟지 않은곳이 없도록 조선에 있어 왜는 천적 이었다.
고려 패망의 양대 원인의 하나로 일컫는 이 왜구의 발호는,
조선 개국 후 태종이 지휘한 세종 원년의 대마도 정벌로 징치되어
국교를 터주는 형국으로 점차 가라
앉았으나,
그 왜를 야만으로 보며,
문약에 흐른 조선의 평화가 2백 년이
흐른 지금,
그 왜가 이번에는 본격적인 조선 침략에 나선 것이다.
군대는 백 년 동안,
한 번도 사용 아니할 수 있으나
단 하루라 할지라도 이를 갖추지 않으면
나라가 위태롭다 그래서,
10만 양병론을 주창하던 율곡 이이도
세상을 뜬 지 8년,
그 율곡을 서당이다, 동당이다,
좌우에서 헐뜯고 마침내 조정에서 내쳐그 말년을 유폐된 고향땅에서 피를 토하고,
죽게 했던 조선의 당쟁 속에 있을 때
왜국은 60여 주로 나뉘어,
군웅할거 하던 자체 상쟁의 시기를 거쳐 무력으로 국권을 틀어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그 팽창한 힘으로
조선과 명을 정벌하리 라는 야망을 품고 이에 그 현지 염탐의 역을 띤,
왜승 현소가 사신이라는 미명으로
조선땅을 다녀간 지가 3년 전 ...
이에 물색 모른 조선 조정은,
일본 사신 현소가 찾아온 데 대한 답례를 겸하여,
조선의 통신사 황윤길과 김성일이 왜국의 정정을 살필 겸 도일했다가 돌아온 지
1년여...
그러나,
왜의 실체를 간파하는 안목에서
서와 동으로 당파를 달리하는 황윤길과
김성일은 왜는 쳐들어온다,
아니다,
로 주장이 엇갈리니 국론조차 통일돼 있지 못했다.
그 조선을 향해 왜군이 호호탕탕 바다를 건너 상륙한 것은,
4월 14일.
정명가도 -명나라를 정벌코자 하니,
조선은 길을 빌려달라- 왜를 미개족으로 보고,
명에게 사대하는 조선에게 있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그 조건으로 왜는
선전포고를 대신했다.
국내 통일전쟁에서 연마되고 연마된
왜군 15만,
게다가 최신병기인 조총으로 무장된
그 왜의 압도적인 무력 앞,
당일로 부산포가 함락되고 다음날,
동래성 공략에선 부사 송상현이 장렬한
전투 끝에 전사,
마침내 7년 임진왜란의 서막은 오른
것이다.
즉일로 다시,
왜군은 삼로로 나뉘어 한양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그 1군은 고니시로,
부산, 밀양, 대구, 상주, 문경을 거쳐 충주를 지향하고,
가토가 이끄는 2군은,
울산, 영천을 꿰어 충주에서 1군과 합류를 꾀하고,
구로다, 시마즈, 고바야가와 등과 3군을
이룬 떼거리는 김해를 짓밟고,
추풍령으로 치닫고 구키 등이 지휘하는
9천여의 수군도 남해, 서해를 돌아
한양으로,
한양으로 배를 저어 달리니 그 가는
육지와 바다에서 미처 준비가 없는
조선 군사는 달구지가 뛰닫는 연못가에
모기떼 흩어지듯 할 뿐이었다.
"왜군이 침입했다!"
"전쟁이 났다!"
그 급보가 서울 조정에 당도한 것이
4월 18일.
조정은 놀라 나자빠졌고,
이제야 동인, 서인 할 것 없이 벌집을
쑤신 듯이 소연했다.
발칵 뒤집힌 것은 조정뿐이 아니었다.
동래군 다대포의 매봉을 기점으로,
양산, 언양, 경주, 영천, 신녕, 의홍, 의성,
안동, 예안, 영주, 봉화, 풍기를 두려뺀,
왜군의 예봉은 다시,
단양, 청풍, 충주로 방향을 잡으니
상기의 지명과 함께
음성, 죽산, 용인에서 광주 천림산으로
통한 후,
한양 남산까지 이르는 직선봉 40곳과
간봉 1백 3곳을 꿰어 호응하는
산봉우리마다 연일연야 다섯 개씩의 불기둥들이 잇따라 솟아오른다.
봉은 어두운 밤에 홰에 불을 켜서
신호하는 것이요,
수는 낮에 연기를 피워올려 서로를 부르는 신혼데,
그 각 봉수마다 설치된 다섯 개씩의
봉수는 평시에도 하나를 켜,
고장의 이상 없음을 알리는 것이고
적정이 경계태세일 때는 둘을 켜며,
적이 보이면 셋,
국경이 침범되면 넷을,
그리고 다섯은 적과의 접전 중이라는 가장 긴급한 신호다.
그 각 고장의 봉수들이 연일연야
다섯 가닥의 불길과 다섯 가닥의 연기를
피워 올리는 걸 보면,
이미 조선 천지는 온통 벌집을 쑤신 듯
소란했다.
궁금한 것은,
적세는 얼마며 어디쯤 왔으며
아군의 대처는 어떠한가 였으나,
노상엔 그 상대로 역참과 역참을 꿰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양으로 뛰닫는 그 소란한 말발굽소리와 무인지경으로 밀려 올라오는 뺏고 죽이고 불지르는 왜군의 소문만 휩쓸 뿐이었다.
동래 한양 간만이 아니다.
전라도 쪽 또한 순천 방답진을 기점으로
장흥, 강진, 영암, 해남, 진도, 무안, 나주,
함평을 연결한 불길이 다시
영광, 부안, 옥구, 임피를 거쳐
은진, 공주, 천안, 아산, 직산, 음성, 수원,
남양으로 돌아,
김포, 통진, 강화의 여러 봉수에 호응한 후 양천 개화산에 이르기까지
봉과 수가 밤도 낮도 없이 하늘을
그을리며 타오를 뿐이었다.
"짐을 싸야 하올지?"
한양의 생업은 중단되고 있었다.
전쟁의 상황을 오로지 봉수대에 타오르는 홰의 숫자로 밖에 짐작해볼 길 없는
백성들은 연일연야 타오르는,
남산의 다섯 개의 불꽃과 연기를 보며
일변 피난짐을 싸고,
삼삼오오 몰려선 채 조정에 드나든
관리들의 집 문전에 찾아들어 서성댔다.
그 관리의 입을 통하여,
혹시나 상황 판단에 도움이 될 조그만
정보라도 얻어들을까 해서였다.
허준의 집도 마찬 가지였다.
직임은 의원이되,
상감이 계시는 대궐 안을 출입하는
내의다.
대궐 밖 어설프게 직책만 높은 관리보다
상황을 더 자세히 알리라 여기는 것은
무리가 아니었다.
"짐을 싸서 어디로 가잔 얘기요?"
아내의 말뜻도 알고,
집 안팎에 몰려든 인근 사람들의 초조한 눈초리도 알건만,
허준 또한 명쾌한 대답을 해줄 수가 없어 되물었다.
"어디로 가잔 뜻이 아니오라,
왜적이 문경 새재를 넘었다는 소문이
있사옵고 그렇다면..."
"다들 무어라 하더이까?"
"만일,
이대로 왜적을 중간에서 막지 못한다면
도성 안으로 피해야 무사하리하 그런 말을 합니다."
"도성 안으로?"
"그래도 대궐이 있는 도성이니,
성벽도 제일 튼튼하고,
서울만은 군사들이 엄히 지킬 터이라
도성 안이 제일 안전하리 라고들..."
허준은 묵묵했다.
어제 동서붕당 서로가 책임을 전가하고
지탄하는 노성과 고함이 터지던,
빈청(궐 안 대신들의 대기소)에서
보고 들었던 양상을 떠올렸으나,
허준의 마음은 편치가 못했다.
그건 낙관론에 매달리기에는
짓 쳐들어 오고 있는 적세를,
단 한번 어디서 분명히 꺾었노라는
한 가닥의 승전보가 아직 조정에 도달해
있지 않다는 것도 알기 때문에 ...
어제 퇴궐하기 전 이동형을 만났다.
신임 도제조 유전이 지병이 재발,
갑자기 직임을 고사하고 사임하고,
임시로 내의원 업무를 이동형이 관장하게 되자,
때가 때인지라 어의 양예수를 비롯,
이공기 그리고 기축옥사 이후,
한직으로 밀려났던 정작도 돌아온
자리에서 이동형이 들려준 얘기,
왕실과 조정의 한가닥 기대는 온통
신립에게 걸려 있다 했다.
그 신립 이라면 조선 사람들은 안다.
일찍이 22살의 나이에 무과급제 특히,
그가 용명을 드날린 것은 온성 부사로
있을 제,
오랑캐 니탕개란 자가 함경도의 변경을
분탕질하기 수년이 되건만,
싸우러 나간족족 우리 쪽 무장이 패전해온다는 걸 듣자,
자원 출전한 신립은 단 일전으로
니탕개를 두만강 너머로 패주시킴은 물론, 끝내 추격하여 마침내,
니탕개의 목을 베어 말머리에 달고
돌아오니 그의 무위는 조선 팔도에
떨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신립에게 딸이 있음을 듣자,
이에 감동한 선조가 사랑하던 제 4왕자
신성군과 혼인시켜 사돈을 맺었으며,
그 신립이 지금은 한성부 판윤으로서
도성을 지키는 중책을 맡아 있다가,
이제 전란을 맞아 도순변사로 임명되어 왜군을 치러 갔고,
지금 그 신립이 충주 달천강가에
배수진을 치고,
왜적자의 필사의 일전을 벼르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러나,
한 사람의 무력이 아무리 용맹하다
할지라도 조총이라는 무기로 무장한
왜적을 상대로,
조선의 희망대로 다시 기적 같은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을지,
그 소식을 전하던 이동형도 허준도
안타까운 한숨만 새나왔다.
집 안팎을 둘러싼 마을 사람과 환자로서
가족으로 안면이 친숙해진 사람들에게
허준이 애써 도순변사 신립 장군의 소식을 알려주고,
입궐한 그날밤 과연,
허준의 불안은 최악의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다.
왕실과 온 조정이 학수고대하는 승전보
대신,
임금의 사돈 그 도순변사 신립은
달천강변,
나라의 운명을 건 그 필사의 배수진에서 패퇴,
부장 김여물과 함께 적진에 돌진,
장렬한 전사를 했다는 소식 이었다.
신립이 전사하고,
그 군사가 패퇴했다면 적이 서울까지
이르는 길목을 지킬 더 이상의 군사가
조선에는 없다.
충주에서 서울까지 287리 ...
왜군의 선두를 이룬 기마 군단이 달려서
채 하루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몽진."
다음 순간,
조정의 이구동성은 이 한마디였다.
아니 대신들의 그 피난 도주의 의견의 일치 이전에,
이 급보는 고관들의 채비를 메고 따라
나와 있던 집안 것들의 달음박질에 의하여 북촌 양반골로 전파 되었다.
"신립 장군이 죽고 충주가 무너졌다!"
"임금이 몽진한다!"
이제야 한양은 싸놓았던 피난짐을 이고
지고 일대 공황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 공황은 내의원도 마찬가지였다.
내의원의 혼란은 시시각각 더해 갔다.
4월 스무아흐레.
15만 왜군이 조선에 상륙하여 15일째,
그 충주 달천강변에서 쌍방 2만 6천여의 병력이 맞붙은 전투에서,
조총과 왜도를 든 왜군이 1만 8천5백,
도순변사 신립이 휘동하는 기병을 앞세운 조선의 군세는 8천 ...
그 양군이 1진, 2진, 3진으로 격돌하기
세 차례 ...
조총을 앞세운 왜군의 화력 앞에 배수의 각오도 헛되어 조선군은 섬멸의 타격을
입는다.
내일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