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 도덕경 제50장을 읽고 ‘삶과 죽음에 초연함’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50-1 삶과 죽음이 오고가는 중에,
삶의 무리가 열에 셋이요,
죽음의 무리가 열에 셋이요,1)
살려다가 스스로 사지에 뛰어드는 자가 열에 셋이네.2)
2 왜 그런가?
삶에 집착하기 때문이네.
3 대개 들으니 섭생3)을 잘하는 자는
육지에서도 코뿔소와 호랑이를 만나지 않고,
전쟁터에서도 적군의 칼에 해를 입지 않는다고 하네.
4 그는 코뿔소의 뿔에 들이받힐 곳이 없고,
호랑이의 발톱에 공격받을 곳이 없으며,
적군의 칼날에 베일 곳이 없네.
5 왜 그런가?
그에게는 애초에 죽을 곳이 없기 때문이네.
주1) 여기서 ‘삶의 무리[生之徒]’는 삶의 원리를 따르는 자로서 ‘부드럽고 약한 자[柔弱者]’를 말하고, ‘죽음의 무리[死之徒]’는 죽음의 원리를 따르는 자로서 ‘뻣뻣하고 강한자[堅强者]’를 말한다. 노자는 ‘부드럽고 약한 것’을 살아있는 것으로 보고 가치적으로 높이 여기고, ‘뻣뻣하고 강한 것’을 죽은 것으로 보고 가치적으로 낮게 여긴다.(77장 참조)
주2) 이 구절은 해석이 분분하다. 이 구절을 인생의 3분기를 논하는 것으로 보고 ‘삶의 무리’를 소년(‘삶만 생각하며 사는 자’)으로, ‘죽음의 무리’를 노년(‘죽음만 생각하며 사는 자’)으로, ‘살려다가 스스로 사지에 뛰어드는 자[人之生, 動之死地]’를 ‘삶만 생각하며 살다가 죽음만 생각하며 사는 삶으로 옮겨가는 자’로 옮기고 삶의 넉넉함을 좇아 필사적으로 경쟁하는 삶을 사는 청장년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주3) 여기서의 ‘섭생(攝生)’은 후대의 도교 성립 이후의 ‘양생[養生: 장수를 위해 단약(丹藥=仙藥=仙丹=金丹) 복용, 조식(調息), 식이요법, 방중술(房中術), 부적(符籍) 등의 건강관리를 함]을 통해 장생불사(長生不死)의 신선이 되자.’는 개념이 아니다.
생사에 집착함이 없이 자유스럽고 참된 삶을 추구하자는 의미에서 ‘삶을 가꾸는 것’이다.
물론 후대에 노자의 이런 구절들을 토대로 도교의 그러한 대중 종교적 섭생(양생) 개념이 발전한 것도 사실이다.
“1~2절의 구구한 해석에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장에서 가르치려는 요점이 우리가 삶과 죽음에 구애받지 않고 초연한 태도를 취하게 될 때 진정으로 자유스럽고 참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노자나 장자에게 죽음이란 근본적으로 삶과 다를 것이 없다. 장자는 죽음이란 한 가지 존재 양식에서 다른 존재 양식으로 옮겨감을 뜻하는 것으로 보고, ‘사람의 모양으로 태어난 것이 즐거운 일이지만 세상에는 이와 못지않게 다른 수많은 존재 양식이 있을 텐데, 그런 수많은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도 기쁜 일이 아니겠느냐?’는 식의 말을 했다.(<장자> 제6편 <대종사> 5~8장 등 참조)
그는 자기 부인이 죽었을 때 물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조문차 찾아온 친구가 ‘자네는 부인이 죽은 것이 그렇게도 기쁜가?’ 하면서 놀라워하자, 장자는 물론 자기도 처음에는 슬펐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기 부인도 대우주의 생성 변화의 흐름에 따라 세상에 태어났다가 이제 ‘큰 집’에서 쉬게 되었는데, 이를 슬퍼하는 것은 계절의 바뀜을 가지고 슬퍼하는 것처럼 부질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차라리 노래를 부른다고 말했다.(<장자> <지락> 3장 참조)
사실 비이분법적 안목으로 볼 때 삶과 죽음은 모두 ‘하나’에서 만나는 것으로서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한 가지 사물의 양면 정도에 불과하다.(1~2절)
물론 그렇다고 죽음을 찬양하거나 권장하는 것은 아니다. 죽음이든 삶이든 어느 하나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사에 관계되는 모든 욕심이나 집착의 줄을 끊고 초연해진 사람만이 육지에 다니든 전쟁터에 나가든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작은 자아, 작은 목숨에서 해방될 때 큰 자아, 큰 목숨과 하나가 되고, 이렇게 하나가 된 상태에서는 해를 받을 곳이 없다. 이런 상태에서는 애초에 ‘죽을 곳’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의미에서 우리의 삶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기간을 소비하면서 죽어가는 것이다. 살아가는 연습도 중요하지만 죽어가는 연습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주어진 삶을 성실하고 아름답게 살지만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 의연함을 가져야 할 것이다.(3~5절)”(오강남)
한편 여기서 노자가 코뿔소와 호랑이, 칼을 등장시킨 것은 생사에 초연한 자의 삶을 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문학적 표현이지, 그 속설(俗說)의 내용을 문자적으로 이해하면 안 될 것이다.
50-1 出生入死(출생입사)。
生之徒, 十有三(생지도, 십유삼);
死之徒, 十有三(사지도, 십유삼);
人之生, 動之死地, 十有三(인지생, 동지사지, 십유삼)。
2 夫何故(부하고)?
以其生, 生之厚(이기생, 생지후)。
3 蓋聞善攝生者(개문선섭생자),
陸行不遇兕虎(육생불우시호),
入軍不被甲兵(입군불피갑병);
4 兕無所投其角(시무소투기각),
虎無所措其爪(호무소조기조),
兵無所容其刃(병무소용기인)。
5 夫何故(부하고)?
以其無死地(이기무사지)。
* 生之徒(생지도): 삶의 무리, 삶의 원리를 따르는 자들<부드럽고 약한 자들>; 삶의 길(生之道)<왕필>
* 十有三(십유삼): 열에 셋, 십분의 삼<왕필><대략 1/3을 말함>; 십삼<하상공: 양생에 중요한 인체의 아홉 구멍[九竅]과 사지의 관절/네 경혈[四關]>
* 死之徒(사지도): 죽음의 무리, 죽음의 원리를 따르는 자들<뻣뻣하고 강한 자들>; 죽음의 길(死之道)<왕필>
* 攝(섭): 다스리다; 잡다, 유지하다; 걷다; 돕다; 거느리다; 겸하다
* 兕(시): 외뿔소<유니콘과 비슷한 상상의 동물>; 코뿔소[=무소(犀)≠물소(水牛=犅)]의 암컷
* 措(조): 두다, 놓다, 처리하다; 잡다, 끼우다(책); 찌르다, 해치다(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