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의 진실
개 론
본 카페는 평신도 운동을 하는 카페임을 이미 밝혀드렸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누구나 신앙적 사고를 주장하거나 또는 강해, 설교를 할 때 반드시 성경에 바탕을 두고 논하고 교훈하며 전파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르치는 선생은 "지혜로운 명석함으로 객관적인 사고에 바탕을 두고 성서 이해를 하고 깨우침"을 받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은 원론을 무시하고 각론에 들어가면 한 문장이 여러 해석을 낳게 됩니다.
그래서 교파가 갈라지고 이단이 생기는 것이지요.
1.십일조의 기원.
창세기 14장(14: 17~20)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내용입니다.
아브람의 조카 롯은 삼촌 아브람과 같이 동업 하는 목축업자 였습니다 .
아브람은 조카 롯을 관리자로 쓰지 않고 독립을 위해서 분깃을 나누어 키워주고 있었습니다.
아브람의 덕스러운 모습이지요.
목축들이 늘어나고 볼륨이 커지자 각자의 목자들이 서로 다투게 됩니다.
결국 롯은 아브람과의 불편한 관계가 되었고 분가를 결정하였는데 그 관계가 얼마나 불편하였는지 아브람이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겠고...(창13:9)고... 롯은 소돔 땅 부근에 기름진 곳으로 많은 무리의 소와 양과 노복들을 이끌고 분가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록은 없으나 롯은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목축업을 청산하고 화려한 도시 소돔성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목축업을 청산하고 소돔성으로 이사를 간 이 일은 아이러니한 일로 목축을 할 때 다른 부족들의 습격에 의한 것 였는 지 아니면 롯의 아내의 요구 때문 였는 지는 상상 말고는 알 수 없으나 롯이 목축업으로 어린 시절부터 자라난 것을 감안하면 다른 부족의 습격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가능성이 있고 그런 환경을 롯의 아내가 견디기 어려웠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롯이 소돔으로 이사를 했을 때 그의 목동들 중 일부도 같이 소돔성으로 이주하여 이웃을 이루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가 소돔 성에 거주하고 있을 때 그 주변 동맹국들이 양편으로 나뉘어 큰 싸움이 벌어집니다.
이 싸움에서 롯이 거주하고 있던 소돔 왕 베라 와 고모라 왕 바르사 등 연합 진영이 패하여 도망하고 상대 진영 왕들이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을 사로잡고 약탈을 하여 가는 과정에 롯의 가솔들과 재산도 약탈을 당하여 끌려가게 됩니다.
이 과정에 롯의 목동 출신으로 짐작되는 사람이 탈출에 성공하여 아브람에게 와서 그 사실을 알립니다.
아브람이 자기가 기르는 군병 318명명을 데리고 가서 그들과 싸우는데...
그 싸움의 상대 진영의 군사력의 규모로만 본다면 그들은 부족 국가의 군사력이고 아브람은 사병으로 아브람의 전력으로는 감히 그들의 상대가 안 되는 군사력 였을 것입니다.
아브람의 대담성은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을 것은 당연합니다.
그 상대 진영의 상황은 자기들의 싸움 후에 지치고 먼 길을 전리품을 끌고 가며 승리에 도취해 마음껏 먹고 마시며 피곤한 심신에 깊은 잠이 들었을 것이고 그 밤 틈을 노린 아브람의 군대가 기습하여 아브람의 군대가 승리 합니다.
그렇게 승리한 아브람은 조카 롯과 그 가솔들을 구하고 빼앗긴 물품도 다 찾아오는데 그 싸움의 승리는 소돔과 고모라의 승리와도 같은 소돔과 고모라 왕 입장에서는 놀라운 결과입니다.
당연히 소돔 왕이 영접함 은 물론이지만 의외의 인물인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는데 이 또한 의외의 일로 살렘 왕은 일국의 왕이고 아브람은 정처 없이 떠도는 목축업자 신분인데 왜 살렘왕이 아브람에게 전승 축하 인사를 왔는지 ...?
살렘 왕 멜기세덱이 자신은 전쟁에 휩싸이지 않았고 상관없어 보이지만 이브람의 승리가 자신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 일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어보입니다.
멜기세덱이 318명의 군사들이 먹을 식량과 포도주를 가져 왔다면 많은 량의 음식을 가져왔을 것입니다.
멜기세덱은 살렘 왕 였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 였다 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당시에도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들이 아브람 외에도 더 있었다는 기록이기도 합니다.
이 때 아브람이 전리품 중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게 되는데, 전리품은 서로 나누어 가지는 풍습이 있고 아브람이 승전 축하에 감사의 뜻으로 십분 의 일을 나누어 준(히 7:2)것은 나눔의 행위 이지 신앙적 행위는 아닙니다.
2. 야곱의 신앙 행위의 십일조 약속
창 28장(28: 20~22)
야곱이 아버지 이삭과 에서를 속이고 외삼촌 댁 으로 도망하며 노비(시종)도 없이 혼자 도망하는데 그 상황이 얼마나 급했으면 위험한 동물들이 득실거리는 야생의 긴 여정을 홀로 가고 있는 지를... 짐작하여 볼 수 있는 여정입니다.
성경에는 한 곳에 이르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밤이 되어 잠을 자는데 꿈에 사다리가 땅 위에서 하늘에 닿았고 ... 여호와의 축복이 있고... 다음날 아침에 야곱이 단을 쌓고 그곳 이름을 벧엘 이라 하고...(21~22절)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22)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라는 서원을 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의문이 생기는데 하나님에게 라는 물리적인 곳 즉 어느 곳...? 또는 누구...? (물리적인 상대)에게 바치게 되느냐 하는 것인데요. 그 당시 의식행위는 제사 의식으로 불살라 연기로 제사하는 의식여서, 십일조를 바쳤다면 제사 의식으로 그렇게 했을 것 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런 어떠한 기록도 남아있지 않아서 궁금하지요.
단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이라는 조건부 서약입니다.
그리고 돌아갈 곳을 아버지 집이라 하였으니 아마도 아버지 이삭이 생전인 빠른 일정을 의식하고 서원을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외삼촌댁에서 약 20여년의 세월을 살게 되는 미래는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3. 하나님의 것 십분의 일
레위기 27장(27:30~32)
출애굽 이후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십일조의 명확한 한계를 명하십니다.
십일조를 사용하는 용도와 방법
신명기14장 26~ 29)
26절 하반절~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 27절, 네 성읍에 거주하는 레위인 ... 29절,~ 네 성에 거류(떠도는 자)하는 객과,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신명기 26절~ 29절에 기록된 말씀을 보면 십일조는 가난하고 병들고 어려운 객과 과부와 어린 고아 등 낮고 힘든 자를 위한 것으로 구제하고 봉사하라는 뜻으로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의 선물입니다.
신선 같은 교회 지도자나 부유한 교회 지도자가 손을 대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이 십일조 이며 교회의 증축을 위한 목적의 십일조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14장 1절 ~ 너희는 하나님 여호와 의 자녀이니...라는 구절을 보면 이는 우리의 신분이 엄청난 고귀한 신분임을 나타낸 구절이며 이는 베드로 사도가 말한 (벧전 2장 9절)한 여러분은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니...라는 구절과 맥이 같은 말씀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만군의 왕이신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로 즉 왕자들이요 공주들 인 것입니다.
십일조를 먹을 권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모두에게 있다는 것이며 굳이 거두어 나누게 하는 여호와의 목적은 부한 자들의 십일조로 가난하고 형편이 어려운 자들이 먹도록 하게 하시려는 여호와 하나님의 깊은 자비의 뜻입니다.
이 구절에서의 이해와 해석을 구한다면 형편이 어려운 신자가 해당 교회의 십일조 사용 원칙이 무시되는 출석교회 상황이라면 스스로 십일조를 구분하여 떼어 놓고 기도한 후 자기를 위하여 거룩하게 사용한다면 신명기 14장 26절에 기록된 본문 기록 내용과 같은 의미로 생각합니다. 형편이 어려운 성도라고 말씀 드리고 있습니다.
4. 십일조 실현의 사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왕국을 세운 후 히스기야 가 왕위에 올랐을 때, 종교적인 대 개혁을 단행하므로 백성들이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쌓았습니다.
역대하 31:5-21 왕의 명령이 내리자~~~ 소산의 처음 것을 풍성히 드렸고 또 모든 것의 십일조를 많이 가져왔고 또 그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성물의 십일조를 가져 왔으며~~~ 등 등 외에도 사례는 매우 많습니다.
말라기 3장 8~10
(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 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9) 너 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라기 3장 8~10절 말씀은 논란이 많은 구절이기도 합니다.
신명기 6장 16절 : "너희가~~~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말씀과 상충되는 구절이기 때문입니다.
말라기서의 십일조 관련 말씀은 시대적, 환경적 상황도 고민해야 합니다.
왜냐 하면... 십일조를(내고) ~생략~시험하여 내가 ~생략~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라는 구절은 조건부 약속으로 믿음이 아닌 물리적인 조약이기 때문입니다.
물리적 조약이라 함은 분명한 징표를 말 합니다.
또는 당시 십일조는 선한 목적이지만 분명한 구분은 아래 기록과 같이 이스라엘 증세 제도였습니다.
5. 십일조는 이스라엘 국가의 `세금 제도 였습니다.
공동번역, 마태오 23: 23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 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체에 대해서는 십분의 일을 바치라는 율법을 지키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 같은 아주 중요한 율법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십분의 일세"를 바치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겠지만 정의와 자비와 신의도 실천해야 하지 않겠느냐.
공동번역은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반면 개역 성서는 주관적이고 명령어로 구성된 문구로 비슷하지만 뜻은 크게 다른 아쉬움 있습니다.
상기 본 구절은 불완전 동사 입니다. 또한 반드시 주목해야할 단어는 "십분의 일세"라는 단어입니다.
책임있는 관계자의 해명이 필요한 문제 입니다.
십일조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과 전혀 관련성이 없는, 이스라엘 고대 국가 경영을 위한 목적의 세금 제도입니다.
우리에게 선교사를 통해서 전해진 성서가 번역되고 이스라엘 역사 문화 사회가 아이러니 하게도 성서에 기록된 그 어떠한 내용이든 우리 신앙과 연관시켜 이해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유가 있어서 하나님의 복음을 위한 교회 제정에 보탬이 되는 헌금 목적으로 11조를 내는 것은 순기능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의무조항으로 설교를 한다거나 권면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십일조 주장입니다 .
의미 있게 주목해야할 부분은 예수님 부활하신 후 사도들이 헌금은 거두었지만 십일조는 받지 않았습니다.
그 현상이 언제까지 이어졌는지는 저도 잘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출애굽에서 예수님시대까지 이어져 내려온 이스라엘 세금 제도를 성서기록이라 해서 한국 교회의 기독신앙인들의 의무 납부금으로 정하고 직 간접적으로 십일조를 강요하고 있다면 범죄행위 일 것 입니다.
십일조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 길을 가는 여정에 제정적인 세금 제도였고 이 제도는 예루살렘이 멸망한 주후 70년 까지 이어지다가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계 각지로 흩어지면서 십일조 제도가 없어 졌고 1948년 이스라엘 나라가 제건 되었지만 안식일은 철저히 지키면서도 십일조 제도는 채택하지 않아서 현제 이스라엘 에서는 십일조 제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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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십일조 사용에 대한 하나님 여호와의 령
상기에서와 같이(신명기14장 26~ 29)에 기록(26절 하반절~ )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 27절, 네 성읍에 거주하는 레위인 ... 29절,~ 네 성에 거류(떠도는 자)하는 객과,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는 하나님의 뜻이 있으며 이는 또한 이스라엘 세금 제도 였다 는 사실에 깊은 성찰이 있어야할 것입니다.
7. 결론 및 권면
1)의미 있게 주목해야 할 부분은 예수님 부활하신 후 사도들이 헌금은 거두었지만 십일조는 받지 않았습니다.
십일조를 하고 계신 도시권 성도님께서 혹시 대형 교회 성도님 이라면 제정 자립이 어려운 농어촌 미 자립교회나 낮고 불우한 이웃 (마태복음 25장36절~46절) 중 (40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말씀을 상고하셔서 부자 출석 교회에 만 내실 것이 아니라 미자립교회나 불우한 이웃들을 보며 고민해 보시면 어떠하실지요.
그 과정에 성도님의 실명이 노출 되어서는 의미가 없거나 작을 것이며 반드시 우리 주 예수님 명의로 하시는 것이 복된 행위 일 것입니다.
2) 또한 형편이 어려운 신자가 신명기 14장 과 같은 교회의 분배 원칙이 무시되는 출석교회 상황이라면 스스로 십일조를 구분하여 떼어 놓고 기도한 후 자기를 위하여 거룩하게 사용한다면 신명기 14장 26절에 기록된 본문 기록 내용과 같은 의미가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3) 참고로 필자의 행위가 궁금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필자는 중학교 2학년 때 교회에 다니게 된 이후 50대 초반 까지 십일조를 하였습니다.
부흥강사는 신인(神人) 같았고 그의 말은 절대자의 말 같았습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순기능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역성장을 했다면 그 역성장의 역할을 부흥사들이 했다고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들은 유명인기 부흥강사들 였으며 탁월한 말솜씨로 교인들을 억압했는데 그중에는 헌금과 십일조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들은 논리로 설득하기 보다는 소리 높여 욱박지르는 형태의 설교로 질타했고 십일조가 축복의 길이라고, 그리고 주의 종을 섬겨야 축복 받는 다고 강요하였습니다.
저는 그 믿음이 고집이 되어 오래 갔습니다.
대기업에 다니면서 연봉도 적지 않았는데 과감하고 철저하게..... 그랬습니다 .
과거에는, 목사는 제사장이며 주님의 종이고, 저는 그의 어린 양이므로 저는 바치는 자요 그는 받는 분 으로 믿었지요.
지금은 다르게 믿고 있으며(신명기 14장 1절 :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자녀니...)
마태복음 25장 35~46절에서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라는 말씀에 큰 감동을 받은 후로 다르게 믿고 있습니다.
끝으로, 목사는 초대교회 사도들 같이 낮아지고 평신도는 "왕 같은 제사장(벧전 2: 9)" 같이 존중 받는
한국교회가 되게 하 기 위하여 간절하게 소망하고 노력하며 기도 합니다.
글 : 나단의 소리 등대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