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 안 내면 도둑인가?

말라기 3장8절-9절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 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이 말씀은 부흥집회를 통해서 수 없이 들었던 말씀입니다. 곧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한것으로 몰아부쳤습니다. 저도 그렇고 이것 때문에 콧물 눈물 흘리며 회개한적이 수없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그 말씀이 기록될 당시의 사회적인 배경과 그 말씀 전후의 유기적인 문맥관계를 고려해서 해석 해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목사님들이나 강사들이 특정 구절들만 떼어서 편리한대로 전달하고 있는 거죠.
말라기 3:8-10 절의 바른 해석은 느혜미아서 13장이 자세히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말라기와 느혜미야는 동시대 인물이기 때문이죠.
그 내용중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십일조 도둑은, 백성들이 십일조를 하지 않아서 도둑이 된 것이 아니라 당시의 제사장들이 십일조를 몰래 훔쳐 빼돌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도둑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목사님들이 이것을 몰랐다면 신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신 분들입니다.
바벨론포로에서 돌아온 느혜미야는 레위인과 제사장들에게 명령합니다. 백성들이 십일조와 헌물을 가져오면 제사장들은 그것들을 받아서 성전 옆에 있는 성전 창고에 거둬들이라고 했었죠.
그런데 당시 제사장 엘리야십과 도비야 라는 두 사람이 서로 공모해서 그 성전 창고 바로 옆에 또 다른 자기들의 개인 창고를 만들어 놓고 백성들이 십일조 및 각종 식량과 예물들을 가져오면,
그것들을 성전 창고에 넣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개인 창고로 계속 빼 돌렸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성전 창고에는 식량이 바닥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당시 썩고 부패한 대제사장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 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오늘날 현대 어느 교회의 목사가 교회 돈을 무수히 착복, 횡령해서 치부하는 것과 같은 사건이 이미 구약에서 있었던 거죠. 그래서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생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되자 성전 일을 버리고 자기들의 먹고 살길을 찾아 도망가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이 내용이 바로 최초로 일어난 십일조 도둑 사건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교회에서는 이 구절을 가지고 성도들이 십일조를 한번이라도 못내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했다고 몰아 세우니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요? 백성이 십일조를 못내서 도둑이 아니라 제사장 엘리야십과 도비야가 백성들이 바친 십일조를 자기 개인 창고로 빼돌렸기 때문에 도둑 사건이 된 것을 지금은 교인들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은 분명하게도 엘리야쉽과 도비야가 도둑이라고 하는데 목사님들은 그것을 바꾸어 교인들을 도둑이라고 몰아세는 형국이 도래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이 자세히 해석되어 있는 느혜미아 13장을 설명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 내용을 교인들이 알아차릴가 봐서 전전긍긍한다고 할까요.
그리고 그들은 이 십일조를 이야기 할 때마다 항상 등장하는 메뉴가 있는데, 그것은 '십일조 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돈 복을 쌓을 곳이 없을만치 넘치도록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넘치도록 돈 복을 주시나 아니주시나 하나님을 시험 까지 해 보라고 하지요.
이러한 발상은 '시험' 이란 히브리어 단어를 잘못 이해한데서 비롯됩니다. '시험하다'의 원어에는 다음과 같은 몇가지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히브리어 차라프, 나싸, 빠한 등입니다.
{차라프는 (Trial)(헬) 굼나시아(gumnasia ) (히 5;14,12;1) 시련을 통한 연단}의 의미이고,
{나싸는 Temptation(헬) ×페이라조(peirazo)
즉 '시험하다(test, tempt)'} 의 뜻이고,
{빠한은(Prove) (헬)도키마조(dokimazw) 즉'마음과 삶으로 증명하다'}의 뜻입니다.
그래서 말라기 3장 10절의 '시험'은 차라프(Trial)도 아니고, 나싸(Temptation)도 아니고 오직 빠한("Prove 증명하다")입니다. 이같이 시험이란 용어를 잘못 번역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고 까지 부추기는 것은 성경 원어의 무지의 소치라고 할 수 있죠.
성경의 다른 모든 여러 곳에서도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고 할 때 '시험' 이라는 뜻으로 사용된 히브리어 단어는 나싸(test, tempt)입니다. 그러나 말라기 3장10절의 본문의 시험(우베하노니)은 '나를 입증해 보여라' 는 뜻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이나 헬라어 성경은 모두 이 두 단어를 명확히 구분하여 번역하고 있지만 우리말 성경은 구분 없이 모두 '시험하다' 라고만 번역함으로서 말도 안되는 의미로 왜곡되어 있는 것입니다.
결국 성경에서 하나님을 시험하라는 말씀은 모두가 마음과 삶으로 살피고 입증하라는 말씀이지, 하나님을 향하여 흥정하고 '이렇게 하는지 안하는지 두고 보자'식으로 시험하라고 부추긴 경우는 한번도 없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시험하면 죽음을 면치 못합니다. 특히 십일조로 하나님을 시험한다면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자초하는 행위가 되는 거죠.
그럼에도 목사님들은 설교 시간에 감히 십일조를 내라고 하면서 성경에 하나님을 시험하라고 한 것은 십일조 밖에 없으니 무조건 십일조 내 보고 부자가 되나 안되나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고 합니다. 십일조 내고 죽을 일 있습니까? 참으로 한심한 설교가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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