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오느냐?"
유령시마 일행을 처리한 백산이 중화독지대로 돌아왔다.
그곳에는 열심히 운기를 하고 있는 석두와 광견조원을 제외한 나머지 일행이
안쓰러운 눈으로 죽어가고 있는 수구해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미 독의 섭취가 한계를 넘어선 수구해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이곳이 모든 독을 중화시킬 수 있는 중화독지대라는 절지라 해도, 온몸에 크고 작은
상처를 입고 그곳으로부터 흘러나오고 있는 피마저 검은색의 독혈로 변해버린
수구해에게는 효험이 없는 것 같았다.
그나마 지금껏 숨이 끊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 중화독지대의 효과라면 효과였다.
독연 속에 너무 오랫동안 노출되어 있었다는 갈태독의 말처럼, 중화독지대가 그의
고통만 가중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정신을 잃고 있는 상태인데도 얼굴을
찡그리며 힘들어하고 있는 표정을 읽을 수가 있었다.
수구해를 바라보고 있는 모든 일행들이 강호 정의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한 이
기인을 위해서 명복이나 빌어주자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갈태독은 이곳저곳의
바위를 뒤집으며 열심히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백년이 넘었어도 아직 의가(醫家)의 자손인가! 그의 손놀림이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명색이 독을 다루었던 의가 출신이고, 그 비전을 모두 계승했는데 독에 당한 환자를
그대로 방치한다는 것은 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영감! 그냥 유언이나 들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방법이 있는 거요?"
여러 가지 독을 모으고 있는 갈태독을 쳐다보며 백산이 물었다. 의술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백산이었지만 정신도 차리지 못하고 호흡도 끊긴 듯 간간이
이어지고 있는 수구해의 회생은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시도해 보아야지."
그동안 잊고 살았던 의원으로서의 본분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의가에서 태어나
의술을 배웠고, 생명을 살려야 할 그 손으로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이제 다시
생명을 살리는 삶을 시작하려는 것인가.
그가 시도하고자 하는 것은 가문의 비전이다.
더 이상 회생이 불가능한 환자에게 마지막으로 시술해 주는 침술대법.
성공 가능성 일 할, 실패하게 되면 시술 받은 환자는 핏물로 녹아내려 시신조차
보존할 수 없는 그야말로 최후의 수단인 것이다.
바로 만독봉침구혈대법(萬毒蜂針求血大法)이다.
독 중의 독이라는 최고의 극독만을 가지고 시술하는 대법, 필요한 독의 종류도
상당히 까다로워 과거 자신의 가문에서도 몇 번 시술하지 못했던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가능하다.
중화독지대의 넘쳐나는 풍부한 독물들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고 있었다.
조그마한 돌을 깎아서 만든 그릇에 독물들의 독을 수거한 갈태독이 수구해 쪽으로
걸어가며, 자신의 품속에 있던 침통을 꺼내들고 가만히 쓰다듬고 있었다.
단 하나 남은 가문의 유산인 자모천통(紫毛天桶), 지난 백삼십 년간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침통을 들고 있는 그의 손이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백산아, 옷을 벗기거라. 너희들은 저쪽으로 가있고,"
옷을 벗기고 있는 백산을 쳐다보던 갈태독이 자신이 들고 있는 침통을 열었다.
그리고 약간 붉은빛을 띠고 있는 새하얀 침들을 독을 받아두었던 석기 속에 쏟아
부었다.
"흡독자모침(吸毒紫毛針)?"
석숭의 입에서 나온 외침이었다. 아무래도 시술이 궁금했던지 한켠으로 가있으라는
갈태독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마물이며 절대 암기.
희귀함이 금강석보다 더 높다는 자모철로 만들어진 삼백육십 개의 자모침. 흔히
독성의 유무를 판단하는 은보다 독에 더 민감하다고 알려진 광물로 자모철 자체가
독을 흡수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흡수하는 독이 극독일수록 색이 진해지며 최고의 독을 흡수하게 되면 검은색의
광채가 난다고 한다.
자모침을 마물이며 절대 암기라 칭하는 이유는 자모침만이 가지는 특이한 성질
때문이다.
인간의 체온 정도의 온기를 만나면 흡수했던 독을 토해내는 특성 때문에 최고의
암기로 평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존재 자체도 희미한 광물이라 널리 알려진 바도 없고, 구할 수도 없어
독을 다루는 인물들에 의해서 조금 알려져 있을 뿐이었다.
"그럼 어르신께서 잔독문(殘毒門)의 후예?"
석숭의 입에서 또 한번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잔독문,
어디서 들어보았던 이름이다. 바로 백산이 복용했던 광혈단을 만들었던 문파였던
것이다.
"쓸데없는 소릴…."
갈태독의 눈빛이 엄해졌다. 잔독문이란 한마디에 마음의 평정을 잃고 말았다.
과거의 잔상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다 지나간 일인 것을….'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념을 떨쳐버렸다.
"시작하자!"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백산에게 하는 말인지 한마디를 툭 던지며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그의 손이 가볍게 휘둘러지고 석기그릇 속에서 새카만 묵광을 발하고 있던 침
하나가 둥실 떠올라 수구해의 양미간 사이 인당혈(印堂血)에 깊숙이 박혀들었다.
"만독봉침구혈대법의 시작은 양미간 사이의 인당혈에서 시작하여…."
"……."
"……."
"마지막으로…."
대법을 시전하면서도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갈태독이었다. 소운에게
들으라고 하는 소리인 모양이다. 자신 가문의 비전이 후세에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전수하는 비법이다. 시술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도 기회가 없는
시술법이기에 더욱더 진지하고 상세하게 전하고 있었다.
이야기하는 도중에도 그의 침술은 계속되고 있었고, 허공에 떠있는 수구해의 몸은
마치 적을 발견한 고슴도치처럼 빽빽하니 침이 꽂혀 있었다.
"의술은 인술이라 했다. 치료하는 수단이 독이 되었건 약이 되었건 인체의 조화와
균형을 다시 이루게 하여 정상적인 상태로 만드는 것이 의술이다. 우리 의술의
근간은 바로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이다. 즉 잠재력이란 소리다. 그 잠재력을
격발시켜 몸을 치유하는데 독을 사용하느냐 아니면 약을 사용하느냐는 의원의 선택에
달려있다. 독을 사용하여 치료하는 방법은 그 효과는 탁월하지만 그만큼 위험도
높다…."
마치 이번이 아니면 말할 기회가 없기라도 하는 것처럼 갈태독의 입에서는 끊임없는
의술의 비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순간 수구해의 몸에 박혀있던 자모침이 본래의 색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갈태독의 손이 가볍게 저어지고 온몸에 박혀있던 모든 침들이 일수에 수거되어
자모침통 안으로 들어갔다.
"의술이란 지금부터가 가장 중요하다. 특히 독으로 치료하는 의술은 깨어난 순간
환자의 안정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독에 의해 맞추어진 몸의 조화가 안정될
때까지는 네 시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전에 심적인 충격을 받게 되면 독에
의해 맞추어졌던 균형이 무너지며 독을 견디지 못한 육체는 죽어가게 되는 것이다."
독을 이용한 치료술의 가장 큰 단점이었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그의 가문이었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
"자, 안정을 취해야 하니까 이제 자리를 피하거라. 너도!"
석숭이 소운과 함께 다른 쪽으로 움직이고 있는데도 꼼짝도 하지 않는 백산을
향해서 갈태독이 하는 말이었다.
"으음!"
수구해가 깨어나는 소리였다.
그러나 갈태독의 표정은 그리 밝아 보이지 않았다. 재빨리 그의 몸 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고, 잠시 후 그의 얼굴에 희열의 빛이 떠올랐다.
"성공이닷!"
들뜬 목소리였다. 이번 시술이 열한 번째 시술이다. 앞의 열 번의 시술마저도 그가
전부 시술했었고 절반만 성공했다. 그가 시술했던 인물들이 얼마 살지 못하고 핏물로
녹아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친구에게는 그들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남아있던 독정(毒精)이 없었다.
만독봉침구혈대법의 결과 반드시 나타났던 독정,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
독정이 몸의 내부에서 폭발하게 되고 그 사람을 녹이게 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독정이 없었다.
내부 장기마저 녹아가고 있던 회생불가능의 환자를 그의 가문 비전이 살려낸 것이다.
"여기는!"
어느 정도 의식이 들었는지 수구해의 입이 열렸다. 무심결에 나온 소리였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생각났는지 갑자기 온몸을 부르르 떨며 눈을 번쩍 떴다.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사람은 자신을 놓고 싸우던 인물 중의 한 사람이 아닌
흡족한 미소를 띠고 있는 백발 백염의 인물이었다.
"일단은 아무 생각하지 말고 안정을 취하게. 이제 자네를 해칠 사람은 없네."
환자를 안정시키기 위한 배려였다.
"구명지은에 감사드립니다, 대협! 하지만 그것보다 더 급한 일이 있습니다. 천하의
안위가 걸린 일입니다."
역시 정파의 인물답게 자신의 목숨보다 천하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이것을 천무맹의 맹주님께 전해…."
"헉!"
자신의 품속에 있어야 할 천선비도를 담아두었던 주머니가 없어진 것이다. 수구해의
표정이 붉게 달아올랐다.
"자! 자! 우선 진정하고 차분히 생각해보게. 아까 치료할 때도 보았는데 자네의 옷
안에는 아무 것도 없었네."
다급한 심정으로 수구해를 안정시키고자 하는 갈태독이었다. 처음으로 성공한
만독봉침구혈대법이다. 자신의 의술로 처음 성공시킨 자신만의 작품인 것이다.
갈태독의 말에 마음을 진정시킨 수구해가 지금까지의 상황을 천천히 되짚어 보고
있었다.
독연 속에서 그의 몸에 손을 댄 사람은 없었다. 서로를 경계하느라 누구도 자신
곁으로 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을 치료했던 이 사람, 비도를 노리는 자였다면 목적달성이 되었는데
굳이 자신을 살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 그의 머릿속을 번쩍 스치는 생각,
'괜찮은가, 젊은이!'
'괜찮습니다. 어르신, 바쁘신 것 같은데 빨리 가보시죠!'
이곳에 오기 전 자신과 부딪친 예의 바른 사냥꾼 청년과 나눈 대화였다.
"그럼, 그놈이! 그놈이…오! 하늘이여."
수구해의 얼굴이 더욱더 붉어지고 있었다. 바로 진기의 역류인 주화입마 상태.
허무함과 자신에 대한 자책이 주화입마로 이어지고 독에 의한 균형이 급격히
무너지고 있었다.
"이것 보게! 진정, 진정하게!"
갈태독이 다급한 음성으로 소리치며 수구해의 진기를 안정시키기 위해서 그의 몸에
내공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엄청난 내공을 소유한 고수답게 역류한 진기가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무슨 일이요? 영감!"
갈태독의 다급한 행동을 보고 이상함을 느낀 백산이 다가온 것이다.
"너? 너는! 크억!"
백산의 얼굴을 바라본 수구해가 비명과 함께 입으로 피를 토해냈다.
갈태독의 얼굴이 참담하게 변했다. 재차 역류해버린 진기는 그가 손을 쓸 사이도
없이 급속하게 온몸을 잠식해버렸고 간신히 균형을 이루고 있던 독들이 온몸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가는 것이었다.
아무리 갈태독이라 해도 더 이상 손을 쓰기에는 무리가 있었는지 멍한 얼굴로 손을
떼며 수구해의 몸에서 물러나고 있었다.
수구해의 몸을 정상으로 돌리기 위해서 온 정신을 쏟고 있던 갈태독은 알 수
없었지만 백산과 같이 다가오던 석숭은 분명히 보았다.
안정을 찾아가던 수구해가 백산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주체할 수 없는 격동에 온몸을
부르르 떨며 피를 토해내는 것을. 수구해의 몸이 머리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녹아
사라지고 있었다.
가장 나중에 녹아 없어지던 손가락은 그때까지도 백산이 왔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허무한 종말이었다.
죽음의 손 대신 생환의 손을 갖고자 했던 의가 자손의 심력을 다한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변한 것이었다.
"너무 자책하지 마시오, 영감. 의술을 행하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것 아뇨. 그래서 우리네 인생살이가 힘든 것이고…."
두 번째 하는 말이다. 유령시마에게도 했던 말이었고 이번에는 백오십이 넘은
노인네에의 어깨를 두드리며 인생이 어쩌고저쩌고 하고 있었다. 이 일의 원흉이
자신인지는 알고나 하는 말인지.
"장사를 지내주려 해도 아무 것도 없으니…그냥 명복이나 빌어줍시다. 그리고
천무맹 놈이라며?"
천무맹 놈이란 말, 자신의 원수라는 소리였다. 자신 때문에 수구해가 죽었음에도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죽은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잊지 않았다.
간단하게 고개를 숙이며 묵념을 해보인 백산이 이번에는 자신이 무엇인가를 찾는 양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이쯤 어딘데? 아, 바로 여기구나!"
십 척 높이의 커다란 바위 앞에선 백산이 감회가 새로운 듯 그것을 가만히 쓰다듬고
있었다. 그곳에는 돌로 찍어서 그렸는지 건장한 장년 한 명과 어린아이 하나가 손을
잡고 있는 그림이 조악하게 새겨져 있었다.
"산아! 다음에 네가 어른이 되었을 때 이곳에 와서 이 아래를 파 보아라, 나의
선물이 있을 것이다."
"뭔데요, 아버지?"
"알면 재미없지 않느냐, 비밀이다."
과거에 아버지와의 추억이 서려있는 곳, 친구 하나 제대로 없었던 그에게 아버지는
친구였고 어머니였다. 이곳에 와서야 알았다. 이곳도 아버지가 꿈을 이루기 위한
장소로 선택했다는 것을….
잠시 그곳을 응시하던 백산이 바위 밑을 파기 시작했다. 이윽고 흙 속에 묻혀있던
물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그마한 철함 하나와 술항아리 하나.
백산의 입가에 피식 하니 미소가 맺혔다. 어머니를 잃고 나서 유난히 술을 많이
드셨던 아버지, 당신다운 행동이다. 장성한 아들에게 주는 선물이 고작 술항아리라니.
술항아리를 쳐다보던 백산이 이번에는 옆에 있는 조그마한 철함의 뚜껑을 열었다.
"아!"
나지막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옥가락지 두 개.
돌아가셨던 어머니의 손과 아버지의 손가락에 끼어져 있던 옥가락지였다.
살점밖에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던 마을에서 찾아내셨나 보다.
울먹이는 자신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온 마을에 널린
살점들을 헤집고 다니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바로 어머니의 채취가 묻어있는 것을 찾고 싶어서 뒤졌던 것인데 어머니의 손가락에
있던 가락지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코끝이 시큰해져 왔다.
'이미 지난 일인데…고맙소, 아버지.'
조용히 자신과 아버지가 그려진 그림을 쓰다듬는 백산이었다.
"여기였어요, 추억의 장소가?"
백산의 행동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던 조천영이 백산 혼자만의 시간을 준 다음
이제서야 말을 걸어왔다.
"응? 응! 선물이라고 하기에 거창한 것이 있을 줄 알았더니 달랑 이거야."
백산이 술항아리를 보여주며 조천영을 향해서 흰 이를 드러내며 미소지었다.
"이거! 내가 가지고 있으면 아무래도 잊어버릴 것 같아서…."
백산의 손에 있는 것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혼 예물이었던 옥가락지 두 개였다.
조천영이 왜 모르겠는가. 여기저기 긁힌 자국이 있는 초라한 옥반지, 시장에만 가도
흔히 구할 수 있는 그런 싸구려 반지였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시부모님의
유산이라는 것을….
"에게? 겨우 이런 옥반지로 선물이 돼?"
소운이었다. 의술 전수가 어느 정도 끝이 났는지 백산과 조천영의 옆으로
다가와서는 백산의 손 위에 올려져 있는 두 개의 옥반지를 쳐다보며 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말과 행동은 달랐다.
"이것 나도 하나 가질래."
둘 중에 조금 커 보이는 것을 냉큼 집어드는 소운이었다. 이 손가락 저 손가락
끼워보다 맞는 손가락이 없었던지 결국은 엄지손가락에다 끼고는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을 이리저리 돌려보고 있는 것이었다.
조천영도 하나 남은 어머니의 반지를 자신의 약지에 끼워 넣고 있었다.
"영원히 끼고 있을 게요."
두 개의 반지 중 어머니의 반지는 조천영의 손에 아버지의 반지는 소운에게
돌아갔다.
"자, 이제 술이나 한잔 하자고."
모든 일행이 모여 앉아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사주(蛇酒), 술은 흔하디흔한
화주였지만 이곳에 널려있던 뱀들을 잡아넣고 십 년이 넘었다는 백산의 말에 입맛을
다시며 광견조원들이 달려들고 있었다.
갈태독은 자신이 처음으로 성공했다고 생각했던 가문의 비전이 실패했다는 좌절감에
넋을 놓고 있었다.
"영감! 그렇게 생각한다고 죽은 양반이 살아오는 것도 아니고 속도 상할 텐데
술이나 한잔 하쇼."
조금밖에 안 되는 술로 마음을 달래고 일행은 형산을 넘기 위해서 그곳을 출발했다.
그때 갈태독의 귓가로 들려오는 백산과 석숭의 목소리.
"석 대인, 내가 그렇게 무섭게 생겼소?"
"솔직히 자네야 잘생긴 얼굴은 아니지. 내가 여자라면 절대 자네 같은 사람은
선택을 안 하지, 근데 그건 왜 묻나?"
"조금 전 수구해 그 놈 말이오, 다 살아난 것 같더니 내 얼굴을 보자마자 게거품을
물고 가버리지 않았소."
"그것은 나도 보았는데… 혹시 자네 그 사람을 따로 만난 적이 있나?"
"에? 아! 여기 오기 전에 나하고 부딪쳤지요, 그런데 일어나 보니 저 양반이 자신의
주머니를 내 품에 넣었는지 가슴속에 주머니 하나가 있습디다?"
"크악!"
갈태독의 비명소리였다.
4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