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풍무(42)
음양지극천에서(1)
음양지극천(陰陽至極泉)에서.
"사숙!"
전면을 향해 튀어나가는 백산을 요정대사가 다급한 얼굴로 불렀다.
상대는 단순한 강시가 아니었다. 강시의 몸에서 흐르는 기운은 분명
내기에 의해 생성된 것이 분명했다. 강시임에도 불구하고 내공을 운용
한다는 말이 된다.
그런 자를 향해 백산이 달려든 것이었다.
하지만 백산의 생각은 달랐다. 그 역시나 상대가 내공을 운용하는
강시임을 알아보았다. 구양중에 의하면 내공을 운용하는 강시는 인시
(人屍)라 하였고, 인시는 이름만 빌렸을 뿐 강시가 아니라고 하였다.
앞으로 겪어야할 단계가 인시이기에 내심 궁금함이 앞섰다.
"크-아!"
일순 백산 앞으로 다가온 강시의 입에서 광포한 괴성이 터지고 그의
손이 상하로 검은 그림자를 남겼다.
흑사장(黑絲掌). 5백 년, 수라구노의 막내였던 흑사마군(黑絲魔君)
노철문(盧鐵汶)의 독문무공으로, 현재까지도 혈마문 10대 무공에 속해
있다. 거미가 거미줄을 뽑아내듯 실처럼 가느다란 기운이 백산의 전신
을 향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타핫!"
날카로운 고함과 함께 나아가던 동작을 멈춘 백산은 왼발을 한 발짝
앞으로 내밀며 오른 발을 이용한 선풍각을 펼쳤다.
그의 선풍각은 일반 무인들이 펼치는 방법과 달랐다. 번쩍 치켜올린
다리와 활짝 편 양팔이 그의 몸을 따라 빠르게 돌았다. 거친 바람소리
와 함께 붉은 기운이 백산의 몸에서 흘러나왔다.
픽! 픽픽픽!
찢겨진 검은 천 조각이 사방으로 날렸다. 구멍 뚫린 옷 사이로 흰
살갗이 드러났다.
파앙!
강시의 면상을 향해 나아가던 백산의 오른 발과 검은 강시의 손이
거칠게 맞닥뜨리며 가죽 북 터지는 소리가 울렸다.
"읏찻!"
상대의 팔에 막힌 오른 발을 축으로 허공으로 치솟아 오르며 백산은
왼발을 휘두르듯 날렸다.
상대의 면상을 향해 정확하게 날아가는 붉은 기운이 서린 발. 하지
만 강시의 동작은 백산보다 더 빨랐다.
바로 눈앞까지 다가온 붉은 발을 잡아채더니 부셔버릴 듯 손목을 꺾
어 돌리며 허공으로 던져올렸다.
"니미럴!"
낮은 욕설을 배어내며 재빨리 자세를 바꾼 백산의 시야 속으로, 조
금 전 검은 강기를 쏘아내며 솟아오르는 강시의 모습이 들어왔다.
"쌰앙!"
떨어지는 힘을 이용하여 칠성태극검을 앞세우며 강기막 안으로 몸을
날렸다.
강기에 노출된 상의가 가루로 흩어지는 모습을 보며 강시의 미간을
향해 칠성태극검을 힘차게 찔러넣었다.
하지만 성공하리란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슬쩍 고개를 젖혀 칠성
태극검을 피하는 강시의 면상을 향해, 왼손 정권을 사정없이 박아 넣
었다.
그와 동시에 강시의 검은 손바닥이 백산의 작렬했다.
퍼억! 파악!
두 줄기 거친 소성이과 함께 아래쪽으로 내려가던 백산의 신형은 더
욱 높이 치솟아 올랐고, 강시의 신형은 거친 굉음을 남기며 광장 바닥
깊숙이 박혔다.
"크아악!"
치미는 분노를 어쩌지 못하고 고함을 내지른 강시는 사방으로 돌가
루를 날리며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나도 마찬가지다. 인간도 아닌 강시하나 어쩌지 못하는 나에게 화
가 난단 말이다!"
불쑥 눈앞으로 다가온 강시를 향해 칠성태극검을 사정없이 뿌리며
고함을 질렀다. 온 힘을 다해 정권을 박아 넣었으나 강시의 얼굴은 조
금전과 변함이 없어 보였다. 전혀 충격을 주지 못했다는 의미였다.
팡! 팡팡팡! 팍팍!
강시의 몸을 지지 삼아 백산의 손과 발이 정신 없이 뻗어나갔고, 그
에 대응하여 강시의 쌍장(雙掌)도 백산의 몸에 수많은 흔적은 남겼다.
과거의 무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강시였지만, 박투술에 있어
서는 백산보다 한 수 아래였다.
기이한 싸움이다. 동귀어진 수법을 동원하는 싸움도 아니건만 백산
이나 강시는 수비가 없다.
오직 상대의 몸통에 본인들의 주먹과 발을 박아 넣기에 급급했다.
단지 강시가 방어하는 것은 미간으로 다가오는 칠성태극검뿐이었다.
'오빠, 강시의 단전을 노려요!'
공격의 실마리를 풀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백산의 귓전에 주하
연의 전음이 들려왔다.
'이런 바보,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내심 소리를 질렀다. 비록 강시라고 하지만 상태는 내공을 가지고
있다. 단전에서 내공을 뽑아 쓰고 있다면 미간과 단전 두 곳은 결정적
인 약점인 것이다.
"이제 넌 죽었어!"
진득한 살소를 머금은 백산은 강시의 전면으로 더욱 깊숙이 다가들
었다. 검은 강기가 가득 서린 양손이 벌거벗은 상체를 사정없이 두드
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번쩍 들어올린 칠성태극검을 강시의 얼굴
을 향해 쭉 밀어 넣었다.
"이걸 노렸어 임마."
강시의 양손이 머리 쪽으로 올라감과 동시에 활짝 개방된 단전이 눈
에 들어왔다. 일순 백산의 오른 다리에 붉은 기운이 맺히고, 강시의
단전을 향해 무자비하게 박혀들었다.
"크아악!"
움찔 뒤로 물러나는 강시의 미간을 향해 재차 칠성태극검을 밀어 넣
으며 이번엔 왼팔을 차올렸다.
왼발 역시나 붉은 기운이 맺혀 있는 건 불문가지.
"어라? 얼굴이?"
백산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분명 검운비라는 녀석의 명령을 받고
움직였던 강시였다. 그랬던 강시가 잠시였지만 당황한 표정을 지었던
것이다.
"인시라서 그런 거냐?"
풋, 비틀린 웃음을 토해낸 백산은 더욱 거칠게 강시를 몰아쳤다. 인
성을 가졌는지는 알 필요가 없다. 일단 기회를 잡았고, 끝장을 볼 때
까지 정신 없이 몰아쳐야 싸움은 끝날 터였다.
"죽일 놈!"
"이젠 말까지?"
서로를 타격하는 소리에 묻혀 희미하게 들려왔지만 분명 강시는 욕
설을 내뱉고 있었다.
"그럼 상황이 달라지지."
슬쩍 미소를 문 백산은 칠성태극검을 쑥 밀어 넣음과 동시에 자세를
낮췄다.
순간 눈 안으로 벌판처럼 보이는 강시의 단전이 확 박혀들었다.
오른발을 앞으로 내뻗으며 힘차게 바닥을 굴렀다. 바위마저 뚫고 들
어가는 발목의 힘은 허리로 이어지고, 반쯤 틀어진 허리에 외손 정권
이 머물렀다.
"타핫!"
날카로운 고함소리와 함께 맹렬한 회전력을 동반한 왼손 정권이 강
시의 단전을 향해 창처럼 박혔다.
"끄아악!"
진각을 이용한 단순한 공격이었지만 위력은 대단했다. 처절할 비명
을 쏟아낸 강시의 몸은 가랑잎처럼 날렸다.
그리고 강시의 뒤를 따르는 웃통을 드러낸 인물.
"구마 장풍으로만 상대해라!"
다급한 검운비의 목소리가 광장을 타고 울렸다. 설마 같은 또래밖에
되지 않는 녀석이 구마와 대등하게 싸울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놈을 죽여 기선을 제압하고자 하였던 의도는 보기 좋게 실패로 돌아
갔고, 어쩌면 구마가 당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마저 들었다.
슬쩍 고개를 돌려 제갈승후 쪽을 쳐다보았다. 강시들을 이용하여 난
전을 유도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급했구나 검운비."
검운비의 모습을 쳐다보던 제갈승후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두
가지를 동시에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혈마문의 강시 위력을 경험하게 되었고, 천붕십일천마의 후예에 대
해서도 많은 걸 알게 되었다.
그 두 가지만 해도 큰 성과라 할 수 있었다.
"곤옥비를 챙겨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강시를 거칠게 몰아치는 백산을 주시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내
공이 전혀 없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승기를 잡아가는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더구나 장풍을 쓰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이미 강시의 단전은 내공을
뽑아낼 상황이 아니다. 겉모습을 멀쩡했지만 내부는 거의 망가졌다고
봐야했다.
결국은 수라구노의 일인을 상대로 내공 없는 외공 고수가 승리를 일
궈낸 것이다.
"남세옥 준비해라! 검운비가 강시를 동원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치닫는 두 괴물의 싸움을 지켜보던 제갈승후가 바로 곁
에 있는 남세옥을 불렀다.
마천룡 검운비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살기가 점점 강해지고 있었던
탓이었다. 둘의 싸움이 끝남과 동시에 난전이 벌어질 게 분명했다.
그 순간.
백산과 구마의 싸움은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백산의 싸움 방식은
전과 동일했다. 구마의 몸에 바싹 접근한 채 그의 전신을 향해 주먹과
발을 쏟아냈다.
공격부위는 오로지 두 곳. 칠성태극검은 연신 미간을 노렸고, 나머
지 발과 왼손은 단전을 향했다. 특히 백산의 공격이 집중되는 곳은 강
시의 단전이었다.
단순한 공격이었지만 구마의 움직임을 봉쇄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최
고였다.
"내 몸이 더 단단한 모양이다."
문득 혈흔이 비치는 구마의 단전을 주시하며 말했다. 그동안 끊임없
이 차댔던 발길질에 급기야 구마의 아랫배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하였
다.
"시간 없다, 구마. 내기를 일주천 시켜야 살아난다. 모험을 걸어라.
네 놈이 내기를 일주천한 시간이 이 칠성태극검보다 빠르면 살아날 수
있다."
비릿한 조소를 머금고 이죽거렸다. 승기를 잡고 몰아치고 있지만 구
마를 완전하게 없앨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놈이 내기를 일주천할 짧은 시간을 노려 칠성태극검을 미간에 찔러
넣는 방법밖에 없었다.
주저하는 빛을 보이던 구마가 일순 몸을 멈췄다. 그와 동시에 그의
양손이 검게 물들었다.
"타핫!"
백산의 얼굴에 슬쩍 미소가 어리고, 칠성태극검은 번쩍 흰 빛을 쏟
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