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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무(113)

작성자하얀산|작성시간26.06.21|조회수151 목록 댓글 16

광풍무(113)

 

백랑(白郞)!


비무대를 기준으로 빙 둘러 세워진 건물 중, 정 남쪽을 차지하고 있는 건물은 동창제독 하후장설이 기거하는 곳이다.
두 달간의 짧은 비무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하후장설이 머무는 건물 정문에는 백야거(白夜居)라는 편액이 달려 있다.
이른 새벽, 백야거를 방문한 이들이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소 황야!”

내실로 들어선 여섯 명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인물, 놀랍게도 그는 동창제독 하후장설이었다. 정계 제일의 권력을 틀어쥔 자, 황제보다 더한 권력을 쥐고 있다는 그가 고개를 숙여야 하는 인물이 있다니.

“수고가 많소이다, 백야. 일단 앉읍시다.”

희미한 미소로 하후장설의 인사를 받는 인물. 그는 선무룡(仙無龍) 순우창천(淳于蒼天)이었다.
사람들이 자리하자마자 선무룡 일행으로 있던 여인이 주담자를 들어 각자의 잔에 차를 따랐다.

“북경을 너무 오래 비워두는 것 아니오?”

여인의 가느다란 손가락을 응시하던 순우창천은 찻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물었다.

“일부러 떠나왔습니다. 그동안 많은 노력을 했는데, 그도 뭔가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후회가 남지 않는 법이지요.”

“뿌리까지 뽑아내기 위해서가 아니고?”

“그가 실패하면 뿌리까지 드러나지 않겠습니까. 다시는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할 참입니다. 그리고 장로들께서는 북경으로 가주셔야 하겠습니다.”
빙긋 미소를 짓던 하후장설은 순우창천 곁에 있는 네 명을 보며 말했다. 

“우리가 가야할 정도로 강자가 있소”

하후장설의 말을 받은 이는 붉은 얼굴의 공손대환(公孫大桓)이었다.

“변황사신이 사신위란 이름으로 그의 곁에 있습니다. 이십 년 만의 재회를 가져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그것뿐이오?”

“아닙니다. 그들말고도 없애야할 자들이 몇몇 있습니다. 한데 동창무인들로는 벅찰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알겠소. 그런데 그는 어떻게 처리하길 바라시오.”

“그는 살려 둬야 합니다. 아직은 필요한 인물이거든요.”

“이유가 뭔가?”

질문을 던진 이는 두 사람을 지켜보던 순우창천이었다. 뿌리 채 뽑아내기 위해 북경에서 몸을 피했다고 했던 사람이 하후장설이다.
그런데 모든 일의 핵심이 되는 자를 살려두겠다는 그의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그가 필요한 이유는 이곳 무림 때문입니다.”

“무림이라. 천붕회를 없애는 명분으로 이용하려는 건 알겠는데…….”

흥미로운 얼굴로 순우창천은 하후장설을 보았다. 남경왕, 그가 없어짐으로 해서 황실은 완전하게 하후장설이 장악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들이 원하는 건 그 이상이다.

“귀광둡니다. 얼마 전 귀광두는 주하연과 나란히 주홍에게 절을 했습니다, 마치 사위처럼요. 그리고 이곳에서는 천붕회 비무를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하후장설은 담담하게 말을 받았다. 무림을 어떻게 처리할까 내심 고민하고 있던 차에 뜻밖의 장소에서 해법을 찾았다.
장마를 향해 백보신권을 난사하고 있던 귀광두를 보면서 강호 정복의 밑그림이 그려졌다.
더구나 녀석은 주홍의 딸을 구해준 전력도 있고, 정식으로 인사까지 했다. 그보다 좋은 미끼가 있을 수 없었다.

“제가 봤을 때 놈의 무공은 최상이었습니다. 더구나 예맥황가의 지존보도인 혈월까지 그에게 있습니다. 일대일 비무라면 세 세력에서 그를 이길 자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나도 알지 그를 만나 보았으니까. 귀광두를 천붕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만들겠다는 복안인 게로구먼.”

“그렇습니다, 소 황야. 일단은 거기까지입니다. 나머지는 일이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서 대처할 예정입니다.”

“그런가? 그럼 우리 무극계(無極界)의 깃발은 언제 올릴 예정인가?”

“아직은 시기가 아닌 줄 압니다. 천붕회가 지리멸렬하고 강호 무림이 전쟁국면으로 접어들면 사령계(死靈界)가 나타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무극계가 나설 시기는 그때로 보고 있습니다.”

“좋군. 강호 일은 자네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게. 사령계의 후예는 본가에서 찾고 있으니 조만간 나타날 걸세. 그리고, 이건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무림인의 능력을 무시하지 말게. 무극계와 사령계가 잠들어 있을 때 그들은 엄청난 발전을 했네.”

“승천무극대혼진(昇天無極大混陣)으로 그들을 잡아두지 못한 모양이군요.”

“맞아, 그들은 승천무극대혼진에 갇혀 있으면서도 더욱 발전하고 있는 것 같네. 조만간 탈출할 것 같더구먼. 하기야 천하제일인이라 불리는 자들인데 그 정도는 해야겠지만.”

순우창천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불해삼진의 하나로 불리는 승천무극대혼진이고, 해진법이 없으면 무극계 무인들조차 통과하지 못하는 그곳을 힘으로 통과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의 가공할 능력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으음!”

하지만 순우창천과 달리 하후장설은 나직한 신음을 뱉어냈다. 지금껏 계획을 세움에 있어 그들을 염두에 둔 적은 없었다.
승천무극대혼진은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는 진이라 여겼고, 지난 이천 년 간, 몽선무극계에서는 그랬다.
그런데 그곳을 통과하는 자들이 있다니.

“걱정 말게, 그들은 다섯이고 천붕회가 없는 강호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네. 설사 천붕회가 건제한다고 해도 팔십이 넘은 자들일세.”

“하긴 그렇기도 하군요. 무공이 강하다고 한들 세월을 거꾸로 사는 사람은 없으니까.”

하후장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승천무극대혼진에서 살아 나온다 해도 상대는 다섯, 그들에 비해 강호 무림은 한없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팔십이 넘은 노인 다섯 명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맞아. 나이를 거꾸로 먹는 사람은 없지. 우선은 이곳 일에 집중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소 황야. 조만간 좋은 결과를 접하게 될 겁니다.”

하지만 하후장설이나 순우창천은 잊고 있는 게 있었다. 무림엔 나이를 거꾸로 먹는 사람이 분명 존재하고 가끔가다 등장하곤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들을 가리켜 무림인들은 반노환동(返老還童) 고수라 부르고 있다.


귀광두에 대한 이야기는 하후장설이 머무는 건물에서만 흘러나오는 게 아니었다. 비무대 동쪽에 세워진 건물에서도 백산을 언급하는 자들이 있었다.

“은밀하게 알아본 바에 의하면 동창제독 역시 귀광두를 중심으로 일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세 사람을 보며 보고를 하고 있는 이는 총사 제갈승후였다. 하후장설에 대해 그동안 조사한 바를 바탕으로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고, 련주 및 가주들 앞에서 보고를 하는 중이었다.
하후장설은 남경왕과 귀광두를 이용하여 두 가지를 꾸미고 있었다.

“그럼 천붕회를 없애고자 하는 건 우리와 같은 생각이라 보면 되겠는데 그 이유가 뭐라 생각하느냐?”

위지천악은 제갈승후를 보며 물었다. 지금까지 보고된 바로는 하후장설에게는 동창을 제외한 세력이 없다고 되어있다. 설령 무림을 손아귀에 넣는다 하더라도 다스릴 여력이 없는 사람이 그가 아닌가. 그런 자가 천붕회를 없애려고 하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의문은 바로 풀렸다.

“하후장설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드러나지 않는 어떤 세력과 연계되어 있는 듯했습니다. 몇 시진 전에 확인한 일입니다.”

조금 전 본 광경을 제갈승후는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했다. 보고를 받은 게 아니라 산책을 하던 참에 직접 보았다. 
하후장설의 거처로 들어간 여섯 명, 몸에서 풍기는 기운으로 보아 그들은 무림인이 분명했다. 그것도 가공할 고수들.

“그들은 동창무인이 아니었습니다.”

백야거라 적힌 현판을 쳐다보는 모습에서 추론해 냈다. 동창무인들이라면 백야거란 현판을 당당하게 쳐다볼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백야거란 현판을 보며 미소를 짓는 여유까지 보였다.

“그런 정황으로 볼 때 그들은 하후장설보다 아랫사람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빌어먹을 놈! 나를 가지고 놀았군.”

위지천악은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동안 동창으로부터 상당한 도움을 받았고,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게 계산에서 나온 행동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오랜 세월 쌓았던 신뢰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듯했다.

“좋다, 앞으로 우리가 대처해야 할 방안을 말해 보거라.”

이내 표정을 바꾼 위지천악은 제갈승후를 향해 물었다. 하후장설의 의도를 몰랐으면 모를까, 다른 조직의 하수인이란 사실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그가 원하는 대로 해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일단 비무는 빨리 끝내야 할 듯 싶습니다. 굳이 불사삼살까지 투입하면서 전력을 노출시킬 필요가 없다는 거지요. 아마 남천벌이나 마교도 우리와 같은 생각일 겁니다.”

“요광의 죽음도 잊고, 사황에게 도전장을 던진 놈의 말도 잊어라.”

“련주께서 나가신다면 저쪽에서는 화황이나 패왕이 나올 겁니다. 그렇게 되면 하후장설만 좋은 일 시켜주는 게 아니겠습니까. 간신히 천붕회의 우상으로 등장했던 귀광두 또한 그 존재가 미미해지겠지요.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묘한 상황이었다. 불사삼살이라는 절대의 병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투입할 수가 없게 되었다.
더하여 하후장설이 내놓았던 무림왕조차 의미가 없게 되었고, 오히려 남천벌과 마교의 상황을 봐가며 대처해야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귀광두의 정확한 신분은 알아냈느냐?”

“아닙니다. 천붕십일천마가 기거했던 곳에서 출발하기는 했지만 광마도 소살우의 아들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모주앙의 말만 듣고 그를 천붕십일천마의 후예로 여겼었다. 그런데 의심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은 아비인 광마도 소살우를 전혀 닮지 않았다는 것이고, 또 구룡천패의 쓰임새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화황인 남궁미령이 그를 모르고 있었다.
다른 건 제쳐두더라도 남궁미령이 그를 모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조카가 아닌가.

“하지만 그가 천붕십일천마의 후예의 진위여부는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소문을 내겠다는 말이구나.”

“그렇습니다.”

제갈승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귀광두가 천붕십일천마의 후예이건 아니건 문제가 아니다. 소문을 내서 그를 천붕십일천마의 후예로 만들고 일을 진행하면 되는 것이다. 
그의 진정한 신분이 밝혀질 때면 이미 상황은 종료되어 있을 터이고, 그의 존재는 잊혀지게 된다.

“다만 걱정되는 건 칠지금마(七指琴魔)가 귀광두를 공격하지 않을 까 하는 겁니다.”

귀광두가 양천리 무공을 파훼시켜버린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다. 자식을 잃은 아비의 분노를 보았기에 칠지금마 또한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위지천악은 강하게 부정했다.

“글쎄, 그렇다면 남천벌은 큰 악수를 두게 되는 거다. 칠지금마가 그 정도로 바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북황련, 남천벌, 한 시대를 풍미하는 세력은 단순히 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힘에 맞는 행동을 해야하고, 어떤 행동을 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명분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칠지금마에게는 귀광두를 처리할 명분이 없다. 더구나 귀광두는 천붕회 비무 참가자.
나중에 천붕회가 끝나고 은밀히 복수한다면 모를까 지금 귀광두를 암습하는 행위는 득보다 실이 많다.
남의 일이라서 그런 것일까. 위지천악은 얼마 전 잠영루 살수들을 없앴던 사실을 잊고 있는 듯했다.
자식을 잃은 부모는 명분을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파음살객(破音殺客) 열 명의 몸에서 흘러나온 살기에 노랗게 물들었던 나뭇잎들이 찢기며 사방으로 흩날렸다.

[음합파혼진(音合破魂陣)이에요.]

파음살객들이 서 있는 모습을 지켜보던 설련은 떨리는 목소리로 전음을 보냈다.
음합파혼진(音合破魂陣). 천음양씨세가가 자랑하는 최고의 살진(殺陣)이라 알려져 있다. 열 명의 파음살객이 펼치는 음공은 진에 의해 한 점으로 모이고, 그 파괴력은 상상을 불허한다고 했다.
열 명의 공력과 열 명의 음공이 하나가 되는 진. 그 진(陣)이 백산을 상대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쿡! 남천벌이란 이름을 이런 식으로 얻었나 보구나.”

전면에서 밀려오는 기운을 밀어내며 백산은 이죽거렸다. 설련의 말마따나 음합파혼진의 위력은 대단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움직임이 둔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비열한 놈에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건 남천벌뿐만 아니라 무림의 율법이다.”

“맞다, 양호상. 네 놈의 자식이 그랬다. 봉선군주가 있는 산장을 공격해 양민들을 죽였을 뿐 아니라, 운기행공을 하던 봉선군주마저도 공격했던 놈이다. 그런 놈이 네 자식이었단 말이다.”

“죽일 놈!”

“할말이 없을 거다, 양호상. 이 세상에서 가장 비열한 놈들이 바로 너희들이니까.”

일순 백산의 몸에서 퍼진 붉은 노을이 공처럼 둥근 막을 형성해 두 사람을 감쌌다. 그리고 허리춤에서 풀려난 마안철겸은 날개처럼 좌우에서 퍼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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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백수 | 작성시간 26.06.22 감사합니다
  • 작성자무씨칸 | 작성시간 26.06.22 감사합니다
  • 작성자백로 | 작성시간 26.06.22 감사 합니다
  • 작성자백록담 | 작성시간 26.06.22 즐독
    감사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작성자용유정 | 작성시간 26.06.23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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