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혜순이 출판사에 근무할 때. 독재 정권 말기,
국내에서 출간되는 모든 출판물을 정부가 먼저 검열하던 시기입니다.
해서 바른말 하는 글꾼들은 가차없이 핑계를 대어서
죽이고 용공분자로 몰았지요. 귀천이라는 아름다운 시를 쓰고
평생을 똥 오줌도 못 가리며 살다 가신 천상병님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당시 출판할 수 없는 글들에 검은색 콜타르가 가득 칠해져 돌아오던 시절
. 어느 날 시인이 경찰서로 잡혀갑니다.
형사는 문제가 된 책의 번역자가 사는 집의 주소를
대라며 김혜순의 뺨을 올립니다.
일곱 대. “몰라요.” 집으로 돌아온 김혜순은 그다음 날부터
출판사를 결근하고 뺨 한 대에 시 한 편씩, 일곱 편을 썼다합니다.
먼 훗날 즉 2023년 베를린 시 축제에서
김혜순이 한 기조연설인 ‘Tongueless Mother Tongue’(혀 없는 모국어)에
그가 편집자로 일하던 때의 일화가 담겼습니다.
글에서 시인은 또 말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시인인 나에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
‘왜 시를 쓰냐고, 이게 다 무슨 뜻이냐고’ 질문을 받으면
여기서는 도저히 살 수 없어서, 여기서 죽지 않고서는
도저히 쓸 수 없어서, 유령이 된 내 목소리가
자꾸만 생성되는 유령을 구축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합니다.
. 시는 죽음이라고,”
얼마전 큰아들이 폰이 와서 하는 말
교보에서 예쁜글씨 공모한다고 응모해보라고 하는데
하지 않았습니다 본인도 시를 쓰지만
내가 스스로 시를 쓰고 활동하는
농민문학에 실리는 것은
하지만 어디에 상금을 노리고 응모는 않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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