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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1방

현재 우리의 도읍지는

작성자bighead|작성시간26.06.17|조회수1 목록 댓글 0

 

 

 

서울은 태조 이셩계가 한양도읍으로 정하여서 서울이되었지요
풍수적인 측면에서 한양을 높이 평가한 것은, 무라야마보다 200여년 앞서

<택리지>를 저술한 이중환(1690~1756)도 같은 맥락으로 보았습니다.

 한양 주변을 둘러싼 지세의 몇가지 단점을 지적하긴 했지만,

그는 한양이 “천상의 수도이자 훌륭한 도읍 터”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기술합니다.

 

심지어 도성 안의 “흙이 맑고 깨끗하며 단단하고 희어서

길에 떨어뜨린 밥알을 주워 먹어도 좋을 것 같다”고

할 정도로 그 형국이 밝고 산뜻하다고 찬탄합니다.

이중환과 무라야마의 이야기들은 풍수의 언설을 빌려 서술되기는 했으나

 한양이 수도일 수밖에 없는 본질적이며 필연적인 이유가 있으며

그에 대해 어떠한 의심도 하고 있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처럼 강고한 확신들이 층층이 쌓여 헌재가 결정요지에서 언급한,

서울이 수도라는 당연한 규범적 사실의 근거가 되었을 것입니다 만

태조때 부터 태종에게 귀한 쓰임을 맏은 하륜대감이 한양을 도읍오로

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조선 조 초기 문신들은 개경을 도읍지로 선호를 했지요

1399년(정종 1) 어머니 신의왕후 한씨의 능인 제릉 참배를 명분으로

송경(개성)을 방문한 정종은 환도를 결정합니다.

물론 이성계의 명분론이 한몫을 하지요.

. 1394년(태조 3) 한양으로 천도한 지 햇수로 5년,

후계 문제로 제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난 지 꼭 반년 만의 일로

왕자들끼리의 볼썽사나운 내분으로 인한 민심 이반을 되돌려보려는 자구책의 하나였지요

이렇듯 고려에서는 목씨 성을 가진 이가 한양에서 번창한다는 

설을 일축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해서 핍박했지만

시대의 흐름인지 역사의 물꼬는 한양이 도읍지가 되어 

몇백년션 승승 장구 합니다 

과거에 뉴질랜드 멀둔 수상이 

한국에 와서 이 넓은 수도의 많은 사람들의

물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느냐고 물었을때

당시 서울의 핵심 관료들은 

곧 바로 한강을 지목합니다.

이게 멀둔 수상은 

한국은 복 받는 민족이라 합니다.

 

과거에 고구려의 주몽과 

소서노의 아들 

비류와 온조의 갈등으로

남하한 비류는 

인천 앞바다를 거점으로

온조는 아차산 일대를 잡지요.

해서 

비류는 실패하고 

온조에게 와서 합류를 해서 백제성대를 이루었지요.

이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과거의 메소포타미아 문명등 

물이 없는 지역에서는 역사를 이룰수 업었지요.

독일의 라인강의 기적이라든다 

메소포타미아 문영듬

물을 기점으로 해서 발전한 것을 보면

멀둔 수상의 말처럼 

한강을 기점으로 벌전의 기틀을 마련한 한국은

복받은 민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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