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기 터널을 경계로 들어선 동네를 들여다보면
구기동에 인접한 신영동에 세검정(洗劍亭)이 자리합니다. 본인이 학창시절
세검정을 지나 자리한 백수의약(서독 씨에이치 베링거 인겧 하임과 협약)에
알바하러 버스타고 자주 지나다니던 곳이죠
즉 학교에 늦을까봐 도시락 소리 요란한 책가방을 들고 뛰던 곳입니다.
세검정은 1747년 조선 영조 23년에 세운 정자로 북한산성을 지키는 병사들이
쉬어가려고 지은 정자인데 1941년 불타버렸고, 지금 남은 정자는 1977년 복원한 것이라합니다.
세검정 지명이 유래한 여러 설 가운데
인조반정에서 비롯했다는 주장이 힘들 얻습니다.
1623년 일어난 인조반정은 조선 역사상 손꼽히는 쿠데타로.
폭정을 일삼는 광해군을 폐위하고자 서인 세력이 주도하여
능양군이 왕위를 이어받아 인조에 올랐습니다.
당시 반정 주역들이 대사를 결의하고자 칼(검)을 씻은(세) 자리가 지금의 세검정이라는 것이라합니다.
인조반정 얘기에서 불광동이 빠질 수 없죠.
쿠데타는 왕이 기거하는 경복궁 코앞(세검정)에서 결의가 이뤄질 만큼 결사적이었지만,
문인(서인)의 의지만으로는 이루기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해서 실력을 행사할 무인이 필요했죠.
능양군(인조)이 손을 내민 이가 원두표 장군이었습니다
이로써 원두표 장군은 인조반정에 가담해 대사를 성공으로 이끌게 됩니다
원두표 장군이 기거하던 데가 지금의 불광동 독박골이었다합니다
비밀 유지가 관건인 쿠데타에
원두표 장군이 반정에 가담하면서 자연히 독박골에 사람 왕래가 잦아지면서
이런 우려가 커질수밖에요.
산속에 때아닌 사람이 북적거리자 주민들이 의아해하지요
산에서 만난 나무꾼이 연유를 묻자,
원두표 장군은 “염병을 치료하려고 좋은 공기를 마시러 왔다”고
둘러댔다고 하니 임기응변이 탁월한 답변으로
전염될 것을 두려워한 사람들은 이후 근처를 피했다고 합니다.
사람 눈을 피할 수 있었으니 기밀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