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페니키아 여인의 믿음(부스러기 은혜) 마르코 7:24-30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오늘의 복음에 개, 강아지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개는 야생동물 가운데 가장 먼저 가축화된 동물로 주인의 말을 잘 따릅니다.
우리나라에도 진돗개, 삽살개, 풍산개와 같이 전통 있는 품종이 있습니다.
요즈음 시대에 와서는 애완견이니 반려견이니 해서 극진한 대접을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개에 관한 속담이 참 많습니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개 따라가면 측간으로 간다. 개눈에는 똥만 보인다. 개 같이 벌어 정승같이 산다. 개발에 편자. 개밥에 도토리. 개팔자 상팔자. 맞파람에 개눈 감추듯 한다.
보통 우리가 사용하는 개라는 단어는 ‘개새끼’ 같이 별로 좋은 의미로 쓰이지 않습니다. 성질이 고약하고 행실이 좋지 않은 자를 욕하는 말로 쓰거나, 권력자나 나쁜 사람의 앞잡이를 비유적으로 말할 때 개새끼라고 하지요.
그만큼 개는 인간과 가까이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보다 격이 낮은 존재를 말 할 때 개 같다는 말을 습니다.
웃기는 얘기로 사람과 개가 달리기를 하는데
결승선에 동시에 들어오면 ‘개 같은 놈’이고
개보다 빨리 들어오면 ‘개보다 더한 놈’
개보다 늦게 들어오면 ‘ 개보다 못한 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개이면서 어린 개인 강아지라고 하면 아주 친숙한 마음이 듭니다. 어린 자식이나 손주를 귀엽게 부르는 말로 ‘우리 똥 강아지’라고 하지요.
공동번역 성경에는 귀여운 말인 강아지로, 개역 성경에는 그냥 개로 번역되어 있는데,
대체로 성경에서 개나 강아지는 대부분 좋지 않은 의미로 쓰여 지고 있습니다.
■ 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띠로 지방으로 가셨고 그 곳에서 이방인 여자를 만나셨다고 합니다.
띠로는 이스라엘 국경너머 지금의 요르단 지방에 있는 땅으로 분열왕국 시대 이전부터 띠로와 시돈이라고 이스라엘과 적대적인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이방인의 땅, 어둠의 땅, 원수의 땅으로 여기에 사는 이방인을 부르는 최고의 모욕적인 말로 개들이라고 했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리레아지역에서 복음을 전하시다가 처음으로 이스라엘 땅을 벗어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띠로지방으로 가신 것은 갈릴리 지역에서 행하신 여러 가지 기적들로 유대 땅의 해롯왕과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갈등이 심해져
잠시 머물면서 아무도 모르게 쉬시려고 어떤 집에 들어 가셨는데 예수님 소문이 이미 띠로와 시돈 지방에 두루 퍼졌던 것입니다.
한 이방인 여인이 이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 이 여인은 성서에서 헬라어 즉 그리스 말을 쓰는 시리아의 페니키아 족속이라고 했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런 이방인들을 개처럼 취급하고 상종도 하지 않는 상태였지요.
우리는 오늘의 복음말씀 속에서 시로페니키아 여인의 믿음을 보게 됩니다.
이 이방인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당시 상황으로 볼 때 예수님에 대한 대단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 여인은 “예수님, 우리 딸을 살려 주세요.”하고 간청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의외로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27절 “자녀들을 먼저 배불리 먹여야한다. 자녀들이 먹는 빵을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라고 거절하십니다.
하느님의 백성으로 부름 받은 이스라엘백성을 먼저 배불리 먹여야하고 이방인은 나중이겠지요.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참으로 견디기 힘들고 모욕적인 거절을 듣고도 이방인 여인의 반응은 예상 밖입니다.
28절 “선생님 그렇긴 합니다만 상 밑에 있는 강아지도 아이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를 얻어먹지 않습니까? 하고 사정 합니다.
‘아, 맞아! 당연히 이스라엘 백성이 우선이고 나 같은 이방인은 나중이지. 그러나 부스러기 은혜라도 반드시 주실꺼야. 주인의 상에 붙어 있기만 하면 개는 주인이 먹고 남은 부스러기 음식이라도 먹을 수 있지 않겠는가?’
이 여인은 이렇게 예수님의 차별적인 말씀에도 서운함이 없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이고 주님께 메 달렸습니다.
주님은 여인을 테스트 하셨고 주님께 지극히 겸손한 믿음으로 엎드려 메달린 이방인 여인은 당당히 합격했습니다.
■ 우리가 이방인 여인에게서 본받을 점은 주님의 냉소적인 거절을 극복하는 겸손하면서도 큰 믿음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간의 삶은 매일매일, 매 순간마다 시험의 연속입니다.
믿음이 없거나 약한 사람들은 지극히 사소한 일로 포기하고, 축복을 걷어 차 버리지만 믿음이 큰 사람은 모든 시험을 거뜬히 통과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방인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여인이 갈구하던 부스러기 빵이 아니라 알짜베기 은혜를 주셨습니다.
29절 그제야 예수께서는 “옳은 일이다. 어서 돌아가 보아라. 마귀는 이미 네 딸에게서 떠나갔다.”하고 말씀 하셨습니다.
마태오복음에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여인아, 참으로 네 믿음이 장하다. 네 소원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하고 칭찬 하십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귀신이 떠나갔다. 라고 말씀 하셨기에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갈 필요가 없어졌지요.
그 믿음대로 될 것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 여인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주님의 응답이 지체되고 응답이 없다고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때가 되면 이루어 주십니다. 끝까지 믿음으로 나가면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믿으면 그 믿음대로 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시로페니키아의 여인처럼 확신에 찬 굳은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자기 집 종의 중풍병을 고쳐 달라고 애원한 백인대장의 믿음도 본받을만 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기도의 응답을 받으려면 내 속에 있는 한치의 자존심도 다 내려 놓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더욱 강해지기 위하여는 때로는 자존심이 상하고 맘에 안드는 말씀이라도 견디고 소화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띠로지방에서 이방인 여인의 부스러기 간청을 큰 은혜로 베푸시고 시돈을 거쳐 갈릴레아로 돌아 오셔서 귀먹은 반벙어리를 ‘에파타’ 열려라 하고 귀머거리를 듣게 하시고 벙어리도 말을 하게 해 주셨습니다.
성공회 대구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는 주님 앞에서 시로페니키아 여인처럼 구원받을 아무 자격도 없는 이방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절대 교만하지 말고
부스러기 은혜라도 주시기를 간청하셔야 합니다.
이러한 간청으로 날마다 더 풍성한 은혜를 누리시며,
승리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