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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아흐(설교와 묵상)

연중 10주일

작성자오디모테오|작성시간26.06.07|조회수21 목록 댓글 0

연중 10주일 (마태 9:9-13, 18-26)

<믿음의 삶>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교회는 어떤 곳일까요? 우리는 왜 이곳에 모여 있는 것일까요? 한 성직자는 교회는 성인들의 박물관이 아니라 죄인들을 위한 병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교회는 스스로 훌륭하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라, 자신의 죄와 상처를 알고 그 무게를 감당하기 벅차지만 구원의 길을 걸어 보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 완전한 의인이 아니라 빛과 어둠을 함께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사람에게 빛만 있고 어둠이 없겠으며, 또 어둠만 있고 빛이 없겠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빛과 어둠을 함께 지니고 살아갑니다. 문제는 우리 안에 어둠이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어둠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찾고자 하는 의지와 믿음을 꺼뜨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디에서든 반짝이는 진리의 말씀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이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시련이 우리를 흔들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우리 안의 상처가 건드려집니다. 우리는 이곳에 겉사람을 만나러 온 것이 아닌데도 껍질만 바라보다 쉽게 실망합니다. 모든 것 안에 계신 하느님을 찾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어둠을 끌어안으며 그 몸집을 키웁니다.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를 절망의 굴레 안에 가두고 자신을 갉아먹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님께서 바로 그런 사람들을 찾아오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리 마태오를 부르십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마태오가 예수를 모시자 세리와 죄인들뿐만 아니라 그들을 비난하는 바리사이파까지 예수께 나오게 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예수님의 사랑은 어쩌면 매우 편향적입니다. 많은 가진 사람들, 스스로 의롭다 여기는 사람들은 꾸짖고, 죄인이라 멸시와 천대를 받던 사람들은 가까이 하면서 그들과 먹고 마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죄인이란 단순히 도덕적으로 잘못한 사람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하고, 삶의 상처와 한계를 외면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는 사람보다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사람을 부르십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연약함을 아는 사람은 무엇을 의지하여 예수님께 나아갈 수 있을까요? 오늘 복음에 나오는 두 사람은 그 답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그 대표적인 모습이 하혈하던 여인과 딸을 잃은 회당장에게서 드러납니다. 열두 해 동안 병을 앓았던 여인은 모든 희망이 끊어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들었습니다. 회당장은 죽은 딸을 위해 예수님께 달려왔습니다. 이들에게 공통된 모습이 있습니다. 그들은 절망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미 끝났다고 말했을지 모르지만 그들은 예수님께 희망을 걸었습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었을 텐데도 그 들의 마음 한켠에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절망 가운데 희망을 버리는 것은 쉽지만, 무너진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은 어렵습니다. 우리는 고난이 찾아오면 지금까지 살아온 삶 전체를 부정하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이번 생은 망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쉬운 선택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한 번도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넘어질 때마다 다시 예수님께 손을 뻗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믿음의 길을 가장 오래 걸었던 사람이 아브람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람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지만 그 약속은 곧바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랜 세월 흔들리고 넘어졌지만, 하느님께서는 그 기다림 속에서 믿음을 빚어 가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약속의 아들 이사악을 얻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사악 자체가 아니라, 하느님의 약속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은 약속이 곧바로 이루어질 때보다, 더디게 이루어질 때 자라나는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 한마디에 불신이 눈 녹듯 사라지고, 응어리졌던 마음이 풀리며, 불안하던 마음에 평화가 찾아옵니다. 하느님이 계심을 인정하는 데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바로 그런 믿음을 보셨습니다.

 

안심하여라. 네 믿음이 너를 낫게 하였다.” 이 말씀은 그 여인에게만 주어진 말씀이 아닙니다. 자신의 처지와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예수님께 손을 내미는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듣기까지 아브람처럼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더 고생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그 말씀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 곧 믿음의 마음을 빚어 가시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사람의 자리에 서지 말아야 합니다. 의롭다고 자신을 속이며 예수님께 나아가서도 안 됩니다. 오히려 자신을 아프게 하는 문제, 해결되지 않는 상처, 두려움과 불안을 있는 그대로 가지고 예수님 앞에 서야 합니다. 그리고 하혈하던 여인처럼, 회당장처럼, 아브람처럼 끝까지 주님의 옷자락을 놓지 않고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끝났다고 말할지 몰라도 예수님은 아직 끝났다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은 포기하라고 말할지 몰라도 예수님은 다시 일어나라고 부르십니다. 믿음은 어둠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예수님의 옷자락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삶의 어둠이 아무리 짙어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마십시오. 오늘도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드는 사람,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는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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