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1주일 (마태 9:35-10:23)
<말씀을 심어주는 사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교회가 지금 서 있는 자리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세상으로 파견하시며 사명을 맡기시는 이야기입니다. 초대교회는 스테파노의 순교 이후 큰 박해를 겪었습니다.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사라질 것 같았지만, 그 흩어짐으로 인해 복음은 더욱 멀리 전해졌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위기라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새로운 길을 만드십니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습니다. 삶의 여러 변화 속에서 한때 우리를 붙들어 주던 것들이 약해질 때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하느님과의 관계가 느슨해지고 교우들과의 관계도 예전 같지 않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신앙이 약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앙이 없어서라기보다 기대했던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아 낙심한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 공동체에 대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뀔 때 우리는 쉽게 지칩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무엇을 하는 곳입니까? 교회는 사람들의 문제를 모두 해결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가 여러 활동을 하지만 한 가지가 핵심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들의 마음에 심어 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바로 그 사명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보내시며 하늘나라의 복음을 전하고, 앓는 사람을 고쳐 주고, 마귀를 쫓아내라고 말씀하십니다. 한마디로 사람들을 회복시키고 구원에 이르게 하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제자들은 한 아이에게서 악령을 쫓아내지 못한 뒤 예수님께 "왜 우리는 하지 못했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능력이 부족했다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 신뢰가 부족했다는 뜻입니다.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보다 자기 판단을 앞세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신 것은 특별한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먼저 사람들을 바라보십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군중을 보시고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시달리며 허덕이는 모습을 보셨다고 전합니다. 목자 없는 양이란 방향을 잃고 지쳐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판단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그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
그런데 예수님께서 찾으시는 일꾼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입니다. 길 잃은 양들을 찾아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땅끝으로 가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길 잃은 양들을 찾아가라." 이 말씀은 먼저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하라는 말씀입니다. 가장 가까운 곳이 어디죠. 세상을 바꾸겠다고 말하기 전에 너 자신과 내 곁에 있는 길 잃은 양들을 돌아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오늘 창세기의 이야기와도 연결됩니다. 아브라함은 천막 어귀에 앉아 있다가 낯선 세 사람을 보게 됩니다. 그는 그들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지만 달려 나가 맞이하고 정성을 다해 환대합니다. 그런데 그 만남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내년 봄 새싹이 돋아날 무렵, 내가 다시 찾아올 때 사라는 이미 아들을 낳았을 것이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미 희망을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사라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웃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포기와 체념으로 가득 찬 그들의 마음속에 다시 약속의 말씀을 심어 주십니다.
생각해 보면 교회의 사명도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할 수 있습니다.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들려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느낄 때, 그 마음속에 하느님의 약속을 다시 심어 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들었던 말씀처럼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아직 하느님의 말씀이 성취되지 않았다. 우리 함께 열심히 살며 기다려보자.’라고 전하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 기자도 죽음의 고통 가운데서 주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건져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그의 희망은 고통이 사라져서가 아니라 주님의 약속을 붙들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바울로 역시 같은 믿음으로 로마서에서 말합니다. "고통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시련을 이겨내는 끈기를 낳고, 그러한 끈기는 희망을 낳습니다. 그리고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희망은 상황이 좋아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살아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교회와 개인의 어려움과 도전도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신앙의 여정을 시작하라는 주님의 부르심일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이 주어집니다. 우리 앞에 찾아온 사람들을 우리는 어떻게 맞이할 것입니까? 우리 곁에 있는 길 잃은 양들을 우리는 어떻게 대할 것입니까? 그리고 그들에게 어떤 말을 들려줄 것입니까?
아브라함이 손님을 맞이했듯이 우리도 사람들을 맞아들이고, 그 만남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전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절망을 말하는 세상 속에서 희망의 말씀을 심어 주고, 포기를 말하는 세상 속에서 약속의 말씀을 들려주며,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번 한 주 동안 낙심하고 지친 사람, 희망을 잃은 사람에게 하느님의 약속을 전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자신 또한 먼저 그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우리 앞에 다가온 사람들과 사건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 안에서 하느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에 귀 기울이며, 희망의 씨앗을 심는 주님의 제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