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부실하다.

작성자학다리|작성시간26.06.14|조회수19 목록 댓글 0

몸이 부실하다.

 

글 / 정성헌

 

 독서를 한다고 다양한 지식을 얻어지거나 노는 것만큼 재미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내가 머무는 공간에 책이 없으면 눈도 손도 마음도 허전하다. 혼자 잘 노는 것에 익숙한 나는,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스스럼없는 친구가 된다.

이순을 넘기면서, 눈이 침침해지더니 피로가 조금만 쌓여도 눈이 뻑뻑해지면서 눈물이 나고 통증까지 생겼다. 신체 어느 부위라도 아프면 불편스러운데 특히 눈의 이상은 온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의사는 눈을 쉬어주라고 했다. 그래서 티브이 시청을 줄이고 핸드폰 게임도 하지 않게 되었고 책을 읽는 기회도 뜸해졌다.

 늦은 점심을 먹고 ‘아니 에르노’ 작가 자신의 사적이고 숨기고 싶은 불륜을 스스로 고백한 2022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단순한 열정>을 다시 펼쳐 든다. 예전에 읽었는데 내용이 가물가물한 것은 작가 본인이 유부남을 사랑하면서 불안하고 무기력하게 변하면서도 불륜인 사랑을 끊지 못하는 강렬한 사랑의 감각을 다시 느끼기 위해서이다. 칠순을 코앞에 둔 나는 지금 여전히 ‘사랑’이라는 단어에 설레는 것은 내 감정이 흔들리기 때문인가 싶다. 여자 주인공은 유부남을 사랑하면서도 자신을 변호하지 않는다. 책을 읽으며 내내 생각해내는 것은 ‘진정한 사랑은 중독이 된다.’이다. 나도 사랑에 중독이 되고 싶어서인지 여자 주인공의 사랑의 여정에 깊숙이 동행하고 싶어 읽어 내려가는데 눈이 침침해지면서 활자가 희미해지면서 읽히지 않는다. 한동안 소원했던 친구에게 전화할까 말까 망설일 때처럼 눈언저리 어디쯤에서 글씨가 맴돈다. 넘겼던 책장을 다시 뒤적이고, 읽었던 부분을 반복해서 또 읽는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오랜 시간 쉬다가 읽으려니 떨어진 시력과 인내심이 약해져 독서에 쉽게 몰입이 되지 않는다.

 깍, 까~악 까치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까치 울음소리에 끌려 창밖을 내다본다. 까치는 보이지 않고 옅은 흰 구름에 하늘이 가려있고 초록의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린다. 녹색을 바라보노라니 내 가슴에도 파릇한 색이 번진다.

파릇한 색은 봄을 의미한다. 그러면 나의 봄날은 언제였을까. 취직했을 때, 결혼, 딸들이 태어났을 때, 자식들이 대학에 들어가고 학위를 받고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였을까. 돌이켜 보면 한 번쯤은 축하를 받아도 되었지 싶은데 너무 밋밋하게 살았다. 그러고 지금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내 시간을 맘껏 쓸 수 있는 내 삶의 봄날이라 생각해 보기도 한다.

큰 돋보기를 이용해서 다시 <단순한 열정>의 문장을 더듬는다. 책장을 겨우 서너 장 넘긴다. 눈은 글자보다 바깥 풍경을 따라가고 유튜브가 전하는 세상 소식이 궁금해진다. ‘아니 에르노’의 가장 사적이고 숨기고 싶은 고백들이 사실은 내가 살아온 시대의 모습과 비교하면서 나의 말초적 관음증을 해소하고 읽던 책을 덮었다.

 밖으로 나가 옥상에서 키우는 고추와 꽃들에 물을 주고 멀리 무등산 쪽을 바라보며 하늘에 눈을 한번 쓱 닦고 주방으로 돌아와 진한 커피 향을 날리며 편한 자세로 소파에 앉는다. 아까 읽다 모서리를 접어 둔 책을 펼친다. 그새 좀 익숙해졌는지 책장이 술술 넘어가기 시작한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처럼 책 속에 빠져든다. 달리던 자동차가 휴게소에서 잠깐 쉬어가듯이 나도 틈틈이 차를 마시고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면서 빙글빙글 돌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 열차에 타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어쩔 수 없이 타고 보면 목적지를 모른다. 문득 내가 탄 열차는 어디쯤 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가만히 눈을 감으니 낯선 역에 혼자 서서 방향을 가늠하던 앳된 내 모습이 떠오른다. 선로를 이탈해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보려 방황하던 때도 있었고 그랬던 날들이 엊그제인 양 아련하다. 이제 주체할 수 없던 열정(熱情)도 의욕(意慾)도 쇠락해 가는 것을 보면 종착지에 제법 가까이 왔나 싶다.

 이따금 이대로 계속 가도 되나 싶어 생각에 잠길 때가 있지만 그냥 그렇게 종착지를 향해 달려간다. 인생이라는 기차가 더디게 간다라고 느낄 때도 있었는데 요즘은 초고속으로 질주한다고 느껴진다. 이만큼 달려왔으니 이젠 어느 곳이든 내려야 할 때라면 곱게 순응할 참이다.

한 시간이 넘어가니 글자가 뿌옇게 보인다. 그렇지만 익숙한 현재의 삶에서 일탈해 남의 이야기지만 전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여행을 따라가다 보니 멈출 수가 없다. 눈을 가볍게 압박하여 비비고 허리를 폈다. 구부리길 여러 번 반복하면서 둘째 딸이 저녁 식사를 함께하자면 집에 찾아온 19시가 되어서야 책을 덮었다.

 젊은 시절에는 밤을 새워 책을 읽어도 아침이면 거뜬했는데 이제는 허리도 아프고 오래 앉아 있다가 일어서면 무릎이 아프다. 눈에 이물감이 느껴지면서 뻑뻑하고, 어깻죽지가 뻐근하고 온몸이 욱신거린다. 급기야 졸음까지 쏟아지면 머리는 멍해지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싫다. 겨우 책 한 권 읽었을 뿐인데 온몸이 뻐근해서 몸살을 앓는 저질 체력에 스스로가 민망하다.

독서로 마음을 살찌우면서 운동으로 건강을 지키고 체력 증진으로 노화를 늦추자. (‘2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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