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으로 인정 되거나 존재 하게 된 대처승 집단의 종교인 직위 명칭. 목사. 신부. 재가승. 분류 언어 검토
1. 대처승 목사
2. 대처승 신부
3.재가승 스님
등으로 부류가 형성 되었음을 역사적 사실관계를 살펴야 하며. 또한 은처승이라는 용어에 대한 관계적 사실도 함께 살펴야 하리라.
교황들의 자녀 또는 가문의 존속 여부 역사속 변화를 면밀하게 학술적으로 보아야 한다.
승이란 수행자 또는 수도자나 성직자 그룹에 속하는 무리를 지칭하는 언어로 이해함을 전제로 한다면 이 사실을 통하여 올바른 언어 선택으로 사회에 착함을 심어야 하리라.
♤처를 두고 있는(결혼한) 성직자 그룹을 인정하는 주요 종단은 개신교, 성공회, 그리고 동방정교회가 대표적입니다. 각 그룹의 특징과 결혼에 대한 규정은 다음과 같습니다.개신교: 종교개혁 이후, 대부분의 교파에서 목회자의 결혼을 전면적으로 허용하며 권장하기도 합니다. 목사는 가정을 꾸리고 일반 신자들과 같은 평범한 가정생활을 영위합니다.성공회: 성직자의 결혼에 제한이 없으며, 결혼한 신부(사제)와 주교도 존재합니다. 부부가 모두 성공회 사제인 경우도 있습니다.동방정교회: 이미 결혼한 남성에 한해 사제(신부) 서품을 허용합니다. 단, 사제가 된 후에는 결혼할 수 없으며, 주교와 같은 고위 성직자는 독신자 중에서만 선출됩니다.참고로 로마 가톨릭의 경우, 원칙적으로 사제들의 '의무 독신제'를 채택하고 있어 결혼할 수 없습니다.
♤불교의 수행자의 결혼에 대한 종파간의 차이는 있으나 오랜 역사적 흐름에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있다. 한국불교의 조계종이 대표 독신주의를 선택하고있으나 외적 모양에 치우친 현실에서 선종이라는 가치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는 의문이 든다.
출가자가 없다 싶은 현실에 물질주의 결탁된 조계종을 어떻게 보아야할지 안타까울 뿐이다.
부처님 때에도 수행자가 세속으로 나가 자식을 낳고 다시 승단으로 들어와 수행 하기를 반복하여 수행에 승속 구분이 없고 다만 승의 무리에 속할시 갖추어야할 생활 규범으로 수행 집단을 보호하였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처(아내)를 두는 성직자 그룹은 여러 종교와 종파에서 오랜 기간 존재해 왔으며, 시대적 상황과 교리에 따라 공식 인정되거나 갈등을 겪었습니다. 대표적인 성직자 그룹의 역사적 기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가톨릭 교회의 기혼 사제 (초대 교회 ~ 12세기)로마 가톨릭 교회는 오늘날 사제 독신제를 고수하지만, 12세기 이전까지는 기혼 사제가 보편적이었습니다.
초대 교회 기록: 초대 교황인 베드로 사도에게 장모가 있었다는 기록(마르코 복음서 1장 30절)과 바오로 사도의 서간 등에서 초기 성직자들이 가정을 꾸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독신제 공식화: 사제들이 자녀에게 교회 재산과 직책을 세습하는 문제가 심각해지자, 중세 교황청은 세속화를 막기 위해 1123년 제1차 라테라노 공의회와 1139년 제2차 라테라노 공의회를 통해 사제의 결혼을 공식 금지하고 독신제를 법제화했습니다.
2. 동방 정교회 및 동방 가톨릭 교회의 사제 (4세기 ~ 현재)동방 기독교 전통은 서방(로마) 가톨릭과 달리 기혼 성직자 전통을 유지해 왔습니다.역사적 기준: 692년 퀴니섹스트 공의회(트룰로 공의회)에서 확립된 규정에 따라, 주교는 독신자여야 하지만 신부(사제)와 부제는 서품 전에 결혼한 경우 처를 둘 수 있도록 허용했습니다.현재: 그리스, 러시아 정교회 등 대부분의 동방교회에서는 여전히 기혼 남성이 사제가 되는 것을 허용합니다. 단, 사제가 된 이후에는 새로 결혼하거나 재혼할 수 없습니다.3. 개신교 및 성공회의 목회자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 현재)16세기 종교개혁가들은 가톨릭의 강제적 독신제를 비판하며 성직자의 결혼할 권리를 복원했습니다.종교개혁 기록: 사제 출신인 마르틴 루터는 1525년 전직 수녀였던 카타리나 폰 보라와 결혼하여 기혼 성직자의 모범을 보였습니다. 장 칼뱅 역시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습니다.
성공회: 영국의 성공회 역시 수장령 이후 사제와 주교를 포함한 모든 성직자의 결혼을 전면 허용해 오고 있습니다.
4. 한국 불교의 대처승 (삼국시대 ~ 현대)한국 불교 역사에서도 처자식을 둔 승려인 대처승(帶妻僧, 또는 유처승·화택승) 그룹의 기록이 지속적으로 나타납니다.
전통 시대 기록: 고려시대 기록인 《고려도경》이나 《고려사》에는 '유처승(아내가 있는 승려)'에 대한 기록이 존재하며, 원나라 간섭기에는 티베트 라마 불교의 영향으로 대처승의 비율이 매우 높았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승려들의 결혼은 음성적 혹은 양성적으로 지속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 1926년 조선총독부가 사찰령 사법 개정을 통해 승려의 결혼과 육식을 공식 승인하면서, 한때 한국 승려의 70~90% 이상이 대처승이 될 정도로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현대 대전환 (불교정화운동): 해방 이후인 1954년부터 독신을 고수하는 비구승들이 "왜색 불교를 청산하자"며 정화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오랜 법적·물리적 갈등 끝에 독신 비구 중심의 대한불교조계종이 주류 교단을 차지했고, 대처승 그룹은 1970년 한국불교태고종으로 분종하여 현재까지 기혼 승려 전통을 공식적으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5. 일본 불교의 육식대처 (19세기 ~ 현재)일본은 메이지 유신 시기인 1872년(메이지 5년) 태정관 포고를 통해 승려의 육식과 결혼(대처)을 법적으로 자율화했습니다. 이 조치 이후 일본 내 거의 모든 불교 종파(정토진종 등 원래 허용하던 종파 포함)의 승려들이 공식적으로 결혼하여 사찰을 자녀에게 세습하는 문화가 정착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