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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프랑스)사바테 역사

작성자김수호|작성시간07.01.04|조회수103 목록 댓글 0

1. 사바트의 역사 (출처: http://www.wtmg.co.kr)

사바트의 기원은 19세기 초반에 강도들에 대항하기 위한 싸움의 한 방법으로 발생하였다.

사바트의 아버지 Michel Casseux는 1784년 Courtille에서 태어났다. 그는 사바트의 동작을 연구하고 가장 복잡한 기술을 단순화했다. 여러 공격 방법 목록을 작성하고 자신의 교수법에 따라 그것을 분류했다.

Casseus의 제자 Chales Lecout는 1808년 Oissery에서 출생하였다. 사바트를 굉장히 잘했던 그는 어느날 영국의 권투(Boxing) 챔피언 Owen Swift에 의해 패배하였다. 그후 그는 영국의 또 다른 전문가 Adams로부터 권투하는 것을 배우고 수업을 받았다. Lecout는 발차기에만 국한되어있던 사바트의 기술 발전에 기여를 하였다.

Charles Lecout의 형 Hubert Lecout도 사바트의 전파를 위해 노력했다. 그들은 <<부르주아 designtimesp=19938>>들에게 이 무술의 기본 개념을 주입하는데 성공했다.



이후로 몇년간은 프랑스 사바트의 전 역사를 걸쳐 가장 집중적이고 가장 왕성한 성과를 거두었다. 수많은 선수들이 이름을 날렸으며 그들 중 한 선수가 특히 대단한 힘과 키로 구별이 되었다. 그가 바로 Leuis Vigneron이었다. 그는 1827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칼로 무장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영불해협을 건너온 권투선수들과 대항하여 싸우면서 사바트의 효과를 여러번 증명 했다.

1832년 파리에서 태어난 Joseph-Pierre Charlemont는 일찍이 사바트를 시작해 22살의 나이에 프랑스 육군 99보병연대의 사범으로 있었다. 그는 검과 총신, 곤봉을 다루는데 있어서 아주 훌륭했다. 프랑스 사바트의 효과는 곧바로 빠른 시간내에 알려졌고 그것은 검술 사범들의 교과목 중의 하나로 채택되었다. 이시기에 사람들은 사바트를 학교에서 운동모임에서 군대에서 연마를 했다.

절정기 이후 사바트는 급격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사실 사바트의 성공의 여세는 귀족 자신들까지도 이 무술을 연습했던 영향이 컸다. 그런데 그것이 변화하면서 그 결과 사바트는 운동 종목으로서 더 이상 볼만한 대단한 것이 없었다. 아마추어 경기 일색이었던 사바트와는 달리 영국의 복싱은 선수와 매니저에게 배당금의 이윤이 확보되자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침체기 속에서 프랑스 사바트는 1924년에 개최된 파리올림픽에 시범종목으로 채택되었다. 1937년에는 제 1회 프랑스권투(사바트를 다른 말로 'French Boxing'이라 부르기도 한다) 선수권 대회가 개최되었다. 그러나 제 2차 세계대전으로 한 번 더 모든 활동이 중단되었다. 종전후 베네치아 출신인 Pierre Berozzi(Baruzy라고 불리는)백작이 프랑스권투 위원회의장이 되었다. 그것이 빠른 재개를 의한 첫 번째 행보였다.

1965년의 1월 5일 Bernard Plaisait와 Marc Kunstle라는 두명의 새로운 인물들 덕분으로 국립 프랑스 권투위원회(C.N.B.F)가 발족되었다. 이 위원회에서는 Georges Carpentier(명예회장)와 Baruzy(설립회장) 백작과 같은 유명인사들이 위원이었다.

같은 해 12월 12일 C.N.B.F.는 프랑스 유도 연맹(F.F.J.D.A)에 통합되었다. 1973년까지 지속되었던 재편성으로, 많은 해를 걸쳐 비교적 순조롭게 추진되어온 연맹조직에 적합한 행정조직을 재구성 할 수 있었다. 그 기간동안 심판 규칙뿐만 아니라 모든 체급의 경기에서 용인되거나 금지되는 기술들을 확실하게 명문화했다.

그 이후로 프랑스 권투는 좋은 항로를 탔으며 1970년 제 1회 <<유럽컵대회 designtimesp=19866 designtimesp=19957>>를 개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3년 이 운동의 교육적이고 학술적 경향의 지지자들과 효과를 지지하는 사람들과의 의견대립으로 인해 C.N.B.F는 F.F.J.D.A.에서 분리되어 독자적 연맹으로 탄생했다. 그 분열은 국립프랑스권투연맹(F.N.B.F.)의 소수의 선수들에 의해 F.F.J.D.A.내부에 많은 대립을 초래하게 했다.

F.N.B.F.는 지지도가 아주 높은 사람들을 모집했고, 창설 2주기가 되자마자 그의 경쟁 연맹인 F.N.S.B.C(1975년에 약 4000명의 회원 보유)보다 4배가 많은 회원을 가질 수 있었다.



그 후 1976년은 이미지 변신의 해였다. F.N.B.F.는 프랑스권투와 유사종목의 연명을 위해 이름을 변경했다. 그 당시 회장은 Marc Kunstle이었다. 그는 1978년 창설된 F.F.B.F.S.D.A.내부의 모든 소수 연맹을 재결합하기 위해 애썼다. 그 후로 회장이 많이 바뀌었지만 가장 좋은 조건에서 일할 수 있도록 차분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그런 이유로 프랑스권투 설립자들이 결코 기대하지 않았던 성공을 거두었다.



2. 여성 사바트의 역사



프랑스의 여성 사바트는 1900년경에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다.

여자 경기 종목으로서 사바트는 상대적으로 최근에 대두되었다. 사바트에 호의적인 소수의 남자와 여자들은 프랑스 여자 사바트가 경기종목으로서 이 운동에 무엇보다도 애호가들에게 플러스 요인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의 추진하에, National Challange 라는 이름으로 1979년 6월 Vincennes에서 제 1회 공식 여자 경기를 가졌다. 그것은 확실히 요구에 부응하는 성공적인 운동 종목이었다.

경기는 현재와 마찬가지로 아쏘형식으로 진행되었다. 프랑스 여성 사바트가 태어난 것이다.

-편집자 주 : 아쏘(힘은 완벽하게 조절되어야 하고 모든 난폭함은 배제되는 타격의 정확성과 기술에 의해 평가되는 시합)

그때부터 선수등록증소지자의 수는 급속도로 증가했다. 사범들은 그 수가 4000에서 5000명 가량으로 계속 증가하는 그들의 수강생에게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소수의 선수권 소지자들에서 84/85시즌에는 최 연소자에서 시니어까지 120명의 경쟁자들이 있었는데 그들 중에는 프랑스 챔피언이나 프랑스 선수권대회 우승자라는 몇 개의 선수권을 가지고 있는 19살에서 30살의 나이를 먹은 90명의 주니어와 시니어가 있었다.

등급에 의하여 <청 글러브 등급 designtimesp=19897 designtimesp=19988>과 <녹 글러브 등급 designtimesp=19898 designtimesp=19989>은 단지 지방 경기에만 참가할 수 있다. 나머지 글러브에 대해서는, 나이에 따라 17살 미만의 청소년을 위한 지역경기와 국가경기가 있다. -편집자 주 : 등급이란?(태권도나 유도의 '단'과 비슷한 개념. 기술의 숙련도에 의해서 정해진다. 사바테의 등급은 경기를 함으로써만 획득된다)

1980 1982년에 프랑스 선수권대회가 <황 글러브 designtimesp=19901 designtimesp=19992> 선수권자들과 <은 글러브 designtimesp=19902 designtimesp=19993>선수권자 사이에 있었다. 1983년, 그 선수권 소지자들의 기술이 발전하고 참가자들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경기는 <동 글러브 designtimesp=19903 designtimesp=19994>와 <은 글러브 designtimesp=19904 designtimesp=19995>에 국한되었다.

경쟁자들이 동 글러브와 기술 <은 글러브 designtimesp=19907 designtimesp=19998>(프랑스 선수권대회) 등급이라면 그들은 또한 <황 글러브 designtimesp=19908 designtimesp=19999>와 <은 글러브 designtimesp=19909 designtimesp=20000>(프랑스 컵 대회) 등급이기도 하므로 대부분의 경쟁자들은 2개의 국가 경기에 참가할 수 있다.



처음에 여자 아쏘는 거의 일률적이고 잘 조절되지 않는 일련의 동작들을 구사하며 민첩함이 부족했다. 5년 후 기술 수준은 굉장히 개선되었고 어떠한 비교도 있을 수 없었다. 날렵함과 복잡한 동작의 연결은 틀에 박힌 동작과 처음의 상대적인 느림을 대신했다.

참가자들의 수준과 라운드 수(프랑스 선수권 대회에서는 1회전 이상이다)에 따라 프랑스 컵 대회와 프랑스 선수권 대회는 다르다. 판정 기준이 같다 하더라도 프랑스 선수권대회에서는 신체적 참여가 더 중요하다. 신체적 접촉은 본의 아니게 종종 타격이 된다. 동작의 날렵함은 또 다른 요소이다. 남자들처럼 청중들을 위해 완전히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 필요하다.



여자 경기의 진행은 남자 경기 진행과 비슷하다.

국립여성 위원회는 2년전부터 여자들도 남자와 같이 보호장비 - 헬멧, 마우스피스, 경골보호대, 여성을 위한 하복부와 흉부 보호대를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규정한 시합에 대해 논쟁했다.

새로운 형식의 경기는 그의 반대자들에게 프랑스 여자 사바트의 새로운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마침내 반대자들은 기술적 접촉 솜씨를 중요시하는 아쏘와 여전히 기술적인 면을 중요시 하지만 타격 효과가 추가된 꽁바를 선택했다.

연맹이 결단을 내리게 됨에 딸 1986년 꽁바는 알려졌다. 이와같은 발전과 함께 여자 사바트는 남자에 의해 외국에 전파되었다.



3. 승급시험



사바트는 글러브의 색깔로 등급을 표시한다.

등급은 크게 색글러브(청, 녹, 적, 백, 황)와 은 글러브(1단계 기술, 2단계 기술, 3단계 기술)의 두 단계로 구분된다.

16살 미만의 선수들에게는 <1단계 기술 은 글러브>는 <자 글러브 designtimesp=19938 designtimesp=20029>로 대체되는데, <1단계 기술 은 글러브> 와 동일한 시험이 부여된다. 그러나 여러 테스트에서 급제 점만 받으면 <자 글러브 designtimesp=19939 designtimesp=20030> 취득에 충분하다는 점에서 <1단계 기술 은 글러브>와 구별된다. <자 글러브 designtimesp=19940 designtimesp=20031> 자격 선수가 16살이 되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1단계 기술 은 글러브>를 취득하는 것은 아니고 등급의 정규시험에 응시해야 한다.



4. 경기 종류



선수들은 여러 유형의 경기에 참가한다.

1) 듀오

가장 비 형식적 격투기 시합이다. 다양한 동성 또는 혼성팀이 겨룬다. 고난도 기술과 조화로운 시합기술을 평가한 후 승리 팀이 결정된다. 조화롭고 흥미진진한 시합 진행을 위해 각 팀의 선수들은 협력하며 상대팀의 경기진행과 비교해 평가받는다.



2)아쏘

기술시합이라고도 불리우는 아쏘는 녹다운으로 승패를 결정하지 않는다. 그런 돌발사태가 발생하면 그 사태의 원인이 되는 선수는 실격된다. 남녀 모두 이 유형의 경기에 참가할 수 있으나 남녀 별개로 경기는 진행된다. 이 형식의 시합은 완벽한 기술과 정확한 타격으로 판가름 난다. 정 반대로 타격의 강도가 절대 과도해선 안된다. 일반적으로 아쏘의 경기시간은 2분간 3라운드이다.



3) 프레꽁바

<제 2 시리즈 시합 designtimesp=19965 designtimesp=20056>이라고 불린다. 전통적인 시합규칙을 따르며 부상을 최소화할 목적으로 보호장비의 의무착용을 명시한다. 이런 경우 부심들은 타격효과를 중시한다.



4) 꽁바

<제 1시리즈 designtimesp=19972 designtimesp=20063>, 혹은 전국대회 시합이다. <제 2시리즈 designtimesp=19973 designtimesp=20064>와 같이 기술보다는 타격효과가 우선한다. 시합 라운드는 3회, 4회, 5회의 3종류가 있고 경기 시간도 1분, 1분 30초 또는 2분이 될 수 있다. 라운드 수와 경기 시간과의 여러 조합의 선택은 나이, 성별, 선수들의 기술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



5. 체급

모든 유형의 시합에서 선수들은 아주 정확한 체급에 속한다.



* 체중 초과시 상당량의 땀을 흘리는 운동을 실시한 후, 3회까지 계체할 수 있다.



6. 공식경기 진행단



경기 시 두 명의 선수 외에 아래의 진행요원들이 참가한다.



1. 세컨드

-라운드간 휴식시간에 선수를 보살핀다.

-세컨드 또는 치프는 모든 시합을 예상해야 한다.

-절박하거나 승산 없는 녹다운 된 선수의 기권은 세컨드가 결정한다.

-또한 그는 공식대표자에게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세컨드는 휴식시간이나 심판의 소환이 있을 때 링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시합이 진행되는 동안 그의 선수에게 시합을 방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큰 소리로 조언할 수 있다.



2. 공식 대표자

경기연맹 대표자의 자격으로, 다음과 같은 책임과 의무를 가진다

- 시합을 공표한다.

- 각 시합에 주심과 부심을 배정한다.

- 시합의 진행을 감시한다.

- 결과와 판정을 공포한다.

- 경기 결과를 공증하기 위해 경기여권과 집회서류에 서명한다.

- 집회 행정문서 책임자이다. : 계체문서, 집회서류, 판정문, 사고 진술서

- 경쟁자의 이의를 기록한다.



3. 추첨인단 대표자 : 모든 경기가 규칙에 따라 진행되도록 한다.

다음의 의무가 있다.

- 선수의 계체시 공식대표자를 보좌한다.

- 경기 전 선수들의 보호장비의 합법성을 확인한다.

- 로프의합법서을 확인한다.

- 글러브와 헬멧의 마모 상태를 확인한다.



4. 주심

주심의 의무는 수없이 많다.

주심은 규칙을 준수하도록 하고, 규칙 위반의 경우에 적용할 처벌 제재를 결정하기 위해 부심의 의견을 구해야 한다.

한 선수가 다운된 경우 주심은 큰 소리로 10을 카운트 다운해야 한다.

8초를 세어도 그 선수가 시합을 계속할 의사를 나타내지 않거나 주심이 시합을 재개하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그 선수는 녹다운으로 선언된다.

심판은 다운된 선수에게 10초의 시간을 주면서 그 선수가 시합을 계속할 수 있는가를 판단할 수 있다. 또한 그는 두 선수의 육체적 공정함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해 공식 의사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5. 부심

부심은 3-5명 일수있으며 링 주위에 자리한다. 부심은 각 라운드가 끝난 후 두 선수 중 승자를 결정한다.

심판의 제재 요청이 있을 시 약호화한 행동으로써 그들의 의사를 동시에 표명해야 한다.

- 찬성 : 머리 위로 팔을 든다.

- 반대 : 얼굴 앞에 팔을 직각으로 교차시킨다.

- 중립(나는 보지 못했다) : 머리 위로 두 팔을 든다.



주심이 요구한 제재는 부심의 다수결에 따라 결정된다.



6. 시간측정원과 부시간측정원

라운드의 시간과 휴식시간을 준수해야할 의무가 있다. 일반적으로 시작과 끝을 알리는 공을 치는 부시간측정원의 도움을 받는다. 한 선수가 녹다운상태가 될 경우 그가 10초를 측정한다.

각 라운드 초에 그는 두 선수와 심판에게 '시작하시오'라는 명령을 내림으로써 주위를 상기시킨다.

라운드 시작 5초전 그는 '시간이 다 되었다.'는 것을 알리고 휴식시간이 끝나면 라운드 시작을 알리는 공을 친다.

심판이 시합을 재개시키려 할 때에만 경기시간의 측정이 시작된다.

심판의 '중지'라는 명령이 내려질 때마다 시간측정원은 시간측정기를 멈추어야 하고 '시작하시오' 명령에 시간측정기를 다시 작동시킨다.



7. 경기공식 의사

경기에 관여될 능력과 비능력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하기 위하여 각 선수를 경기시작 전 검진해야 한다.

필요시 전신상해를 입은 선수에게 응급 처치를 한다. 부상이나 상해가 발생했을 경우 그가 경기 속행과 조기 중단을 결정한다. 그의 소견은 주심에 의해서 요구될 수도 있다.

녹다운 또는 기권으로 경기가 중단될 경우 패자는 반드시 공식의사 검진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집회후 집회서류에 서명해야 하며 선수들에게 그들의 경기여권을 넘겨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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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식 격투기 사바테

사바테의 시작은 18세기 말 프랑스 선원들이 때때로 균형을 잡기 위해 바닥을 짚고 높이 차는 발차기을 하는 독특한 싸움기술을 적용시키는 것으로 부터다.
사바테는 동양의 무예와 접촉한 결과로 생각된다.

사바테가 처음 시작된 곳이 Marseilles와 같은 외항선 배들이 드나드는 곳에서 부터 시작 되었다는 기록으로 알 수 있다.
처음 사바테을 가르친 사람은 Michel Casseux이었고, 싸움이 빈번히 일어나는 댄스홀과 술집이 있는 슬럼가 근처에서 여러가지 발차기를 배울수 있었고, 사바테의 이론을 발전 시킬 수 있었다.

차츰 발차기 위주의 초기 형태에 권투 기술을 가미되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그의 제자중의 하나인 Charles Lecour가 영국 권투선수인 Owen Swift에게 패하자 런던으로 건너가 권투를 배우고 난 후 다시 프랑스로 건너와 1830년대에 체육관을 차리면서 복싱과 사바테를 혼합시켜 Laboxe Francaise라는 새로운 이름을 내걸면서 부터이다.

길거리의 힘자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바테가 급속도로 알려졌고, 이에 따라 이를 가르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초기엔 공식적인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Lecour형제가, 우스운 노래들과 발라드곡을 곁들여 시범을 보였지만, 프랑스식 기술이나 재주라는 신비스런 이름만 주어질 뿐 이었다.

박스 프랑세에즈가 발전하는데 영향을 준 사람은Joseph Charlemon이라는 사람으로서, 1839년에 태어난 그는 군인으로서의 사바테 인생이 시작되었다.
Vigneron등의 뛰어난 선수들과의 시합도 하였고, 1870년 프.러시아와의 전쟁이 시작될 때까지 신병들에게 Boxe Francaise와 La Canne[유럽식의 검술을 말하는 걸로, 찌르기 보다 베는 동작이 많이 포함되어 있고, 갑자기 검을 잡은 손을 바꾸거나, 적이 상단을 공격하면 자세를 낮추며 하체를 베거나, 회전하며 벤다.]을 가르쳤다.
La commune때에 벨기에로 탈출한 그는 부뤼셀에 도장을 열고 책을 프랑스 사바테 기술에 관한 책을 발간하였는데 오늘날 사바테 규칙의 바탕이 되었다.

출처 : 내용출처 : [인터넷] http://www.wtmg.co.kr / 네이버 오픈사전/기타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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