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의 밀모래 / 김병중
해운대 백사장을 천천히 걸으면
바람의 자국은 푸른 파도가 되고
파도의 자국은 하얀 늑대가 되며
구름의 자국은 회색 추억으로 온다
모래는 헤아릴 수 없어도
모래 위에 발자국은 헤아릴 수 있듯
바람은 볼 수 없어도
파도로 오는 물결은 볼 수 있듯
그대와 그린 시간의 발자국을 헤며
둘이서 그린 물보라의 무지개를 본다
파도에 쉽게 부서지는 모래성이라도
모래는 바다로 돌아가지 않고
꽃과 집과 사람과 그대 얼굴이 되어
모래가 말을 하고 그 말을 바다가 듣는다
밀물에 실려 온 밀모래는 모서리가 없어
그 모래가 다시 섬으로 돌아간다 해도
모래사장을 걷는 사람은 맨발이 되고
모래를 만지는 사람은 맨손의 체온을 느낀다
해운대 모래 위에 사랑해 써 놓고
그대는 눈부신 보석을 찾으며
내가 멎어버린 모래시계를 뒤집으면
화석이 되어 금모래와 은파도로 빛난다
파도가 잠들면 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리
해운대 추억이 사라져도
그대라는 이름의 섬이 사라지지 않도록
두 발이 붓이 되어 자작시를 쓰고
바다와 바람과 갈매기의 노래는
모래톱 만든 밀모래의 가슴에다 악보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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