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가는 배 / 김병중
남미와 북미의 허리를 삭둑 자른
물길 이백리로
파나마나 바위이던 땅에 운하가 생겨
배가 산을 오른다
산의 길로 8시간을 가다 쉬다
기어코 큰 바다로 나아가는데
그걸 오래 구경하다 지치고
파나마시티 햇볕이 너무 뜨거워서
야자짚으로 만든 페도라 하나를 산다
정장에 잘 어울리는 모자라서
조폭처럼 쓸 수 없고
운동화를 신으면 격에 맞지 않아
코끼리 삼킨 뱀 모양의 모자를 들고 걷는다
햇빛을 모자로 가리며
존에프 케네디와 알카포네
윈스턴 처칠과 찰리 채플린을 생각하며
모자도 못 쓰는 내 용기를 탓하다가
두루막에 근엄하게 중절모 쓴 아버지가 떠올라
모자를 다시 만지작인다
페도라 모자를 쓰면
비가 와도 우산을 쓰면 안 되고
정장은 갖춰야 하는데
거추장스런 옷은 자신이 없는 걸 어쩐다냐
장롱에서 풀이 죽어
이제 쓰나마나 한 모자가 되어버렸어도
파나마에 다시 가고 싶은 건
모자보다 배가 산으로 오르는 기적을
또 보고 싶어도
페도라 쓰고 자신있게 대로를 걸어갈
소박한 용기가 없고
파나마 외딴섬 등대지기로 일할 자신이 없어
잠실로 나아가 태극기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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