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남기기보다 삶을 남기기를: 노년의 아름다운 낭비를 위하여
인생의 가을 한복판에 서서 돌이켜보면, 참으로 아등바등 살아온 세월이었다. 새벽이슬을 맞으며 일터로 향하던 젊은 날부터, 가족의 울타리를 지키기 위해 지갑을 닫고 주머니를 움켜쥐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우리는 참는 것이 미덕이고, 아끼는 것이 지혜라 믿으며 평생을 살아왔다. 커피 한 잔 값이 아까워 발걸음을 돌리고, 자식들에게 단 돈 얼마라도 더 물려주는 것이 부모 된 도리라 여겼다.
그러나 백 세를 눈앞에 둔 지혜로운 스승의 나직한 목소리는 내 오랜 믿음의 근간을 뒤흔들어 놓았다. 통장에 채 쓰지 못한 억만금의 숫자를 남겨둔 채 눈을 감는 것만큼 억울하고 슬픈 일이 어디 있겠냐는 준엄한 당부. 평생을 희생해 모은 자산의 대부분이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한 번도 빛을 보지 못한 채 떠난다는 통계 앞에서, 나는 비로소 참된 노후의 풍요가 어디서 오는지를 깊이 자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무조건적인 절약이 아니라, 생의 마지막 순간에 단 한 점의 여한도 남기지 않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열어야 할 곳'에 과감해지는 용기였다. 여기, 내 남은 생을 위해 결코 아끼지 말아야 할 네 가지 삶의 투자가 있다.
첫 번째, 건강이라는 확실한 자산에 대하여
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는 노년의 표정들을 가만히 살펴본 적이 있다. 그늘진 얼굴들 사이로 흐르는 것은 병에 대한 두려움도 있겠지만, 매서운 병원비에 대한 염려가 더 클지도 모른다. 검사비 몇십만 원이 아까워 몸이 보내는 신호를 애써 외면하고 "좀 참으면 나아지겠지"라며 약국 소화제로 버티는 이들을 숱하게 보았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작은 돈을 아끼려다 미래의 거대한 손실을 불러오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노년의 건강 관리는 소비가 아니라 가장 확실한 수익률을 보장하는 투자다. 특히 치아 건강은 노년기 삶의 질을 결정짓는다. 좋아하는 음식을 마음껏 씹고 맛보는 원초적인 즐거움이 사라질 때, 육체의 면역력은 물론 마음의 기력까지 함께 무너져 내리기 때문이다. 젊은 날의 은퇴자들이 한결같이 후회하는 것이 왜 정기적인 치과 검진을 받지 않았던가에 대한 탄식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라에서 주는 무료 건강검진조차 귀찮다는 핑계로 미루지 말 일이다. 어딘가 만성적으로 쑤시고 아프다면 참지 말고 병원으로 향해 주치의와 다정하게 상의해야 한다. 뼈를 단단하게 해 줄 칼슘과 비타민, 혈관을 깨끗하게 해 줄 영양제를 챙겨 먹고, 동네 문화센터나 헬스장의 운동 시설 이용료를 흔쾌히 지불하는 것. 그것이 훗날 병상에 누워 수천만 원의 약값과 간병비로 눈물 흘리지 않을 가장 현명한 예방책이다. 나의 건강함은 자식들에게 짐을 지우지 않는 최고의 유산이며, 나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품격 있는 선물이다.
두 번째, 마지막까지 허락된 축복, 미각을 위한 대접
인간의 다섯 가지 감각 중 눈이 침침해지고 귀가 먹먹해져도,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생의 활기를 더해주는 고마운 감각이 바로 미각이다. 아흔이 되고 백 세가 되어도 입안에 퍼지는 달콤한 딸기 한 조각, 잘 구워진 고기 한 점의 풍미는 우리를 즉각적으로 행복하게 만든다. 어떤 좋은 차나 좋은 집을 사도 금방 익숙해지고 마는 '쾌락 적응'의 법칙 속에서도, 맛있는 음식만큼은 매번 우리 뇌에 신선한 도파민을 선물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비싸서 못 먹는다", "집에서 대충 먹으면 되지"라며 미각의 즐거움을 포기해 왔던가. 매일 사치를 부리며 살 수는 없겠지만, 일주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쯤은 정말 내가 먹고 싶었던 귀한 음식을 찾아 나를 대접해야 한다. 계절의 정취를 가득 담은 제철 과일을 식탁에 올리고, 신선하고 질 좋은 식재료를 고르는 데 손을 떨지 말아야 한다.
평생 가족들의 밥상을 차리느라 손이 부르텄던 세월을 보냈다면, 이제는 남이 정성껏 차려준 밥상을 기쁘게 받을 자격이 차고도 넘친다. 건강을 잃고 난 뒤 병실에 누워 "그 옛날 맛있는 초밥 한 접시, 한우 한 점 마음껏 먹어둘 걸" 하며 눈시울을 붉히는 후회를 남겨서는 안 된다. 음식을 잘 챙겨 먹는다는 것은 단순한 식욕의 충족을 넘어, 평생 고생한 내 육신과 영혼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환대하는 가장 따뜻한 방법이다.
세 번째, 노년의 육신을 누일 편안함이라는 품격
"이 정도면 참을 만해." 우리가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이 말은, 때로 인내가 아니라 자기 방치이자 학대가 되기도 한다. 젊은 시절에는 딱딱한 맨바닥에서 자도 털고 일어날 힘이 있었고, 더위와 추위쯤은 악으로 깡으로 버텨낼 수 있었다. 그러나 무뎌진 세포와 약해진 관절을 가진 지금의 육신에게 불편함은 곧 질병으로 이어지는 직행버스와 같다.
하루의 3분의 1, 평생의 수십 년을 보내는 침대 매트리스와 베개를 20년이 지나도록 쓸 만하다며 고집하는 것은 미련한 일이다. 몸에 꼭 맞는 푹신한 침구는 사치가 아니라 척추를 지키는 의료 기구이며, 숙면은 노년에게 그 어떤 보약보다 깊은 치유를 선사한다. 닳아빠진 만 원짜리 신발 대신 발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좋은 신발을 신어야 걸음걸이가 가벼워지고, 활동량이 늘어나 안팎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더욱이 한여름의 전기세가 아까워 에어컨을 끄고 버티거나, 겨울철 난방비를 아끼려다 새벽녘 차가운 공기에 노출되는 것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도박이다. 몇만 원의 비용을 아끼려다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으로 응급실에 실려 가는 노인들의 뉴스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잘 보이지 않는 눈을 위해 안경 도수를 맞추고, 잘 들리지 않는 귀를 위해 보청기를 마련하는 것 역시 사회적 고립과 치매를 막는 필수의 지출이다.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온 우리에게는 가장 편안한 환경에서 안식을 누릴 권리가 있다.
네 번째, 통장 장고보다 눈부신 경험과 추억의 저장
생의 마지막 간이역인 호스피스 병동에서 임종을 앞둔 이들이 흘리는 눈물의 의미를 가만히 짚어본다. 그들은 하나같이 "주식 투자를 해서 돈을 날린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들의 가슴을 치는 가장 큰 한은 "내가 원하는 삶을 살지 못했던 것", "그렇게 일만 하지 말고 더 많은 곳을 가보고 더 많은 추억을 쌓을 걸" 하는 미완의 행동에 대한 후회다.
물건은 시간이 흐르면 낡고 유행이 지나 가치를 잃지만,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했던 경험의 기억은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짙은 향기를 풍기며 영혼에 각인된다. 30년 전에 산 가구는 기억나지 않아도, 자식들의 손을 잡고 떠났던 첫 여행지의 푸른 바다는 어제 일처럼 선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년에는 더 늙을 것이고, 내년에는 다리가 더 떨릴 것이다. 신체적으로 가장 젊고 건강한 날은 바로 '오늘'이기에, 오늘의 100만 원은 10년 뒤 병상에서의 100만 원보다 수십 배의 가치를 지닌다.
거창한 세계 일주가 아니면 어떠한가. 해 질 무렵 가까운 국내의 온천으로 떠나는 당일치기 여행, 평소 가보고 싶었던 지역 축제의 소란스러움 속에 발을 들여놓는 것,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장에 가 목청껏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 그 모든 일탈이 매달 내 인생의 일기장에 눈부신 페이지를 추가해 준다. 그리고 그 순간들을 반드시 사진으로 남겨두어야 한다. 훗날 기억이 흐려질 때, 빛바랜 사진 한 장이 그날의 공기와 행복했던 미소를 고스란히 되돌려줄 것이기 때문이다.
중도를 걸으라던 부처의 말씀처럼, 탐욕으로 흥청망청 쓰는 방탕함은 경계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나 자신을 돌보는 데 인색하여 통장의 잔고만 바라보며 미소 짓는 삶 또한 얼마나 허무한가. 우리가 한평생 피땀 흘려 일했던 진짜 이유는 돈 그 자체가 아니라, 내 삶을 풍요롭게 가꾸고 사랑하는 이들을 행복하게 지키기 위함이었다.
이제는 움켜쥐었던 손을 조금은 놓아도 좋을 때다.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집도, 차도, 통장의 숫자도 아니다. 우리가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 품고 갈 수 있는 단 하나의 자산은, 내가 뜨겁게 살아 냈던 아름다운 순간들의 기억과 사랑했던 추억뿐이다. 남은 생의 시간만큼은 오롯이 나를 위해, 내 영혼의 풍요를 위해 아름다운 낭비를 시작하리라 다짐해 본다.
심수봉의 미워요https://youtu.be/sO3cmj81FZQ?si=q1Z0bas-H_P3vla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