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 유럽에 가면 가로수를 심은 마로니에의 열매가 지나가는 사람 들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우리나라 밤처럼 가시가 있어 찌르면 아프기 때문에 이리저리 피하느라 난리다.
크기는 우리나라 밤과 상수리의 중간 정도 된다. 물론 과(科)는 다르지만 한국의 밤을 연상시킨다.
가을의 대표적인 과일로 추석 무렵에 나오는 햇밤을 꼽을 수 있다.
삼한시대의 무덤에서도 밤이 출토되었으며 단단한 나무는 위패나 가구, 목책으로 쓰였고
근래에도 철도의 침목으로 이용되었다. 정월 대보름에는 견과로서 부럼에 쓰이고,
추석에는 송편속에 햇밤을 넣어 빚어 조상께 올렸다.
밤나무는 전국에서 자라지만 특히 경기도의 시흥, 과천이 주요 산지였다고 한다.
과천의 과(果)자는 밤이 많이 나서 생긴 이름이라는 기록이 있고,
필자가 다녀본 과천 근교외 청계산, 백운산, 광교산 일대에는 유독 밤나무가 많았던 걸 기억한다.
그 향기가 정액의 냄새와 비슷하다 하여 짖궂은 얘기들도 많고 남자의 사랑에 비유한
시인들도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아빠와 함께 발로 가시를 비벼 알밤을 까는 재미가 있고
겨울이면 군밤을 까먹는 추억이 있다. 혼례식에서 폐백을 마치면 시어머니가
밤과 대추를 신부의 치마폭에 던져 주는데 대추가 사랑과 행복을 주는 과일이라면,
밤은 자식과 부귀를 주는 과실로 여겨진다.
밤은 식량으로 주로 쓰여서인지 약용으로는 기록이 적지만 이제마 선생의 "
사상의학"에서는 태음인의 중요한 약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 밤을 한약명으로는
"율(栗)" 또는 "율자(栗子)", "건율(乾栗)" 이라고 한다.
과일이나 열매는 한의학적인 관점으로 보면 인체의 머리에 해당되며 번식을 위한 것이다.
따라서 두뇌 건강이나 생식기의 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그 맛은 달고 성질은 평범하다.
위장과 비장을 튼튼하게 하고 신장을 보하며 근육을 강하게 하고 혈액의 순환을 돕고
지혈작용을 하므로 매스꺼움이나 설사 허리 다리의 허약증 구토 코피 혈변 등의
증상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하혈 토혈에는 밤 껍질을 태워서 먹고,
설사에는 구운밤을 20개씩 먹으며 허리와 다리가 무력하면 생밤을 매일 열 개씩
먹도록 지시하고 있다. 민방에는 밤이 기침을 완화시키는 데 좋으며 갈색의 떫은 속껍질과 함께
다려 먹으면 가래가 삭는다고 하였다.
그래서인지 "방약합편"의 기침 처방에는 생밤을 까지 않고 껍질 채 넣도록 처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