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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샘 말씀

바르게 예배드리는 교회

작성자신동환|작성시간26.06.05|조회수30 목록 댓글 0

바르게 예배드리는 교회

202667일                                                                                                           요 4:16-24

 

1. 우리가 꿈꾸는 교회

참기름이 맞습니까? 챙기름이 맞습니까? 참기름이 맞는 말인데, 실제로 챙기름이라고 발음하는 걸 많이 듣습니다. AI에게 물어보니 ‘l’모음 역행동화라네요. 고기를 괴기로, 아기를 애기로, 어미를 에미로, 왼손잡이를 왼손잽이로 발음하는 것도 다 같은 원리라네요. 발음을 더 쉽게 하려고 나타나는 현상이랍니다. 그런데 진짜 참기름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참기름이면 참기름이지 진짜 참기름은 뭡니까? 가짜가 하도 판을 쳐서, 아니 이제는 시중에서 제대로 된 참기름을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기에 진짜 참기름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제가 오늘 설교 제목을 바르게 예배드리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설교 제목을 적고 보니 딱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왜냐? 이건 하나 마나 한 말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면 당연히 예배드리는 곳인데, ‘예배드리는 교회라니 이 무슨 말인가요? 게다가 또 바르게 예배드린다니, 아니 그러면 바르지 않게 예배드릴 수도 있단 말인가요? 굳이 바르게라는 표현을 덧붙여야 하는 우리의 교회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음 달, 7월 첫 주일(5)은 우리교회의 창립기념주일입니다. 201271일에 하나가 되었으니 이제 올해 7월 첫 주일이면 14주년이 됩니다. 창립14주년기념주일을 준비하는 가운데 과연 어떤 교회를 이루어야 할까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꿈꾸어야 할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우선은 바르게 예배드리는 교회입니다. 하나님께 바르게 예배드리는 교회를 이루어야 합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 같습니다만,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2. 요한복음 4:16-24

오늘 본문에서 사마리아 여인은 수가 마을 우물가에서 예수님에게 그 마음속에 오래도록 담아두었던 신앙의 질문을 던집니다. 그것은 바로 예배의 장소에 대한 물음이었습니다. 4:20입니다.

 

우리 조상은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선생님네 사람들은 예배드려야 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합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유대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을 즈음, 혈통적으로 선민의 순수성을 잃어버린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 산에 자신들의 성전을 세워 신앙의 본거지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경전인 사마리아 오경에 따라 성전을 세웠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했던 산도 그리심 산이라 하였습니다.(22:2) 또 여호수아가 세운 여호와의 성소역시 그리심 산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24:25-26) 이런 전통에 따라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 산에 있는 자신들의 성전에서 매년 절기를 지켰고, 이곳에서는 매년 3대 절기(유월절, 오순절, 초막절)가 지켜졌습니다. 이런 전통에서 살아온 이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이 예배할 장소를 그리심 산으로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남쪽의 유대사람들은 자신들의 예배처소로 예루살렘 성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건축 이래 예루살렘 성전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하나님의 성소였습니다. 남쪽 유대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전통적이고 유일한 예배처소로 여겼던 것은 너무도 당연했습니다. 여기에 이 여인의 고민이 있는 겁니다. 전통적으로 배워왔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그리심 산의 정통성에 의문이 일기 시작한 겁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남쪽에 있는 예루살렘 성전에 하나님이 거하시며, 거기에서 드리는 예배가 참 예배라는 겁니다. 그래서 범상치 않은, 하나님의 예언자로 보이는 훌륭한 랍비를 만난 김에 묻는 것입니다. “어디서 드리는 예배가 참 예배입니까? 그리심 산의 성전입니까, 예루살렘 성전입니까?” 그런데 예수께서는 이 물음에 뚱딴지같은 답변을 하십니다. 23절입니다.

 

참되게 예배들 드리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찾으신다.

 

예배의 장소를 묻는 물음에 예수께서는 전연 다른 대답을 하십니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그리심 산의 성전도 아니고, 예루살렘의 성전도 아니다. 장소가 중요한 게 아니다. 하나님은 장소에 관계하지 않고 진실하게 예배드리는 사람들을 찾으신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합니다. 간혹 종교지도자들이 하나님을 한 장소에 가두곤 합니다. ‘여기에만 하나님이 계신다.’ 가르칩니다.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은 한 장소, 집에 가두어지는 분이 아닙니다. 이런 거짓말의 원조는 솔로몬 왕입니다. 만유의 주재이신 하나님을 좁다란 예루살렘 성전에 가두었습니다. 이 성전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이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을 비롯한 이런 자들이 이렇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욕심 때문입니다. 때로는 신앙적으로, 신학적으로 무지하기 때문에 이런 짓을 하기도 합니다만, 사실은 알고도 가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 자기 이해관계, 자기의 필요 때문입니다.

 

다빈치 코드라는 영화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숨겨진 예수의 후손을 발견해내면 어쩌시겠습니까?”라는 우려 섞인 질문에 오푸스데이의 주교는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대답합니다. “예수께서는 인간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 후손도 그래야지요.” 왜 죽어야만 하는가? 2,000년 동안 전해져 온 교회의 가르침, 그 전통과 명예에 누를 끼칠까봐 죽어야한다는 겁니다. 예수를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 가두어두는 전형적인 모습이지요. 우주의 창조주이자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한낱 종파에 가두어 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아무 것도 모르는 청소년이었음에도 제가 속한 장로교가 제일 좋은 종파라고, 장로교 외에는 구원이 없는 것처럼 배웠습니다. 교회에서 그렇게 세뇌되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여러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장로교보다 크신 분이고, 개신교보다 크신 분이고, 기독교보다 크신 분입니다. 종교와 인간 세계를 초월하여 계신 분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내 작은 그릇에 담는 이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사이비종파에서는 자기네 교회에만 하나님이 있다고 합니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교회에만, 우리 교주님에게만 하나님이 계시되었다고 말하는 건 무조건 사이비(似而非)입니다. 아니 사이비가 아니라 사기입니다. 그리심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 성전도 아닙니다. 멋지고 커다란 성당과 교회가 하나님 임재의 보증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작고 가난한 교회라고 해서 하나님이 계시다고 보장할 수도 없습니다. 이런 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장소에 따라 영향을 받는 분이 아닙니다.

 

3.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하나님께서 관심하는 바는 단 하나입니다. 그것은 바로 진실하게 예배드리는가?’입니다. ‘진실하게, 바르게를 오늘 본문에서는 영과 진리로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개역 성경에서는 신령과 진정으로라고 번역했지요. 영어성경에는 “in spirit and truth”(NASB)라고 되어있습니다. 24절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이 관심하시는 바는 어느 곳에서 예배드리는가가 아닙니다. 어느 교회에 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예배드리는가, 진실하게 예배를 드리는가가 중요한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예배드리는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그런데 진실하게 드리는 예배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진실한 삶입니다. 12:1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씀하는 산 제물(living sacrifices)’이란, 무슨 인신제사처럼 사람을 산 채로 제물로 바치라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산 제물이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그런 삶을 살라는 뜻이지요. 이것이 우리가 드릴 합당한 예배라는 겁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삶과 예배는 둘이 아닙니다. 하나입니다.

 

유투브에서 재밌는 영상을 하나 보았습니다. 박요한이라는 목사님의 영상인데요, “하나님께서 스타벅스 가지 말라고 말씀하셨냐?”라고 설교하는 목사들의 엉터리 신앙과 신학에 대해 질타하는 영상이었습니다. 삶과 유리된 신앙이란 어불성설이란 점을 일갈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영상을 보고 속이 시원했습니다. 14:31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억압하는 것은 그를 지으신 분을 모욕하는 것이지만, 궁핍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은 그를 지으신 분을 공경하는 것이다.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을 어찌 대하는가가 하나님을 섬기는가, 아닌가의 기준입니다. 오늘날 많은 신앙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사회생활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흡사 두 개의 잣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주일에 하나님을 섬기는 예법이 따로 있고, 평일에 세상사는 방식이 따로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가난한 사람들을 쥐어짜서 끌어 모은 돈을 하나님께 바치고 복을 받기를 빕니다. 신앙적인 무지와 이기적인 욕심이 화학반응을 일으킨 이와 같은 변종의 괴물 신앙이 한국 교회에 판을 치고 있습니다. 가만 들여다보십시오. 이러한 신앙은 하나님을 섬기는 겁니까, 내 욕심을 섬기는 겁니까?

 

사랑하는 하늘샘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떤 교회를 꿈꾸어야 할까요? 세상의 다른 교회들은 어쩔지 몰라도,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바르게 예배드리는 교회를 이루어갑시다. 영과 진리로, 진실하게 예배드리는 참다운 예배공동체를 이루어갑시다. 우리 사는 동안에잠시 묵상기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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