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하늘샘 말씀

성도의 교제

작성자신동환|작성시간26.06.19|조회수28 목록 댓글 0

성도의 교제

2026621일                                                                                                         약 5:13-16

 

1. 성도의 교제

   (1) 권찰

교회의 직분 가운데 권찰이란 직책이 있습니다. 들어보셨나요? 이 직책을 맡아보셨나요? 아마도 권사님들이나 연세가 드신 집사님들 가운데는 구역에서 권찰을 해보신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권찰! 권할 ()’자에 살필 ()’자를 씁니다. 그래서 권찰(勸察)입니다. 교회용어사전에는 권찰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장로교회에서 교우의 가정을 살피고 심방하는 직책. 목사나 당회가 제직이 아닌 자 가운데 신앙이 독실한 남자나 여자를 임명하며 임기는 1년이다. 때론 제직회원이 권찰이 되기도 한다. 권찰의 임무는 매주간, 혹은 매월 교인의 가정을 방문하고, 믿지 않는 가정을 심방·전도하며, 구역 기도회를 진행하고, 매월 정기 권찰회로 모여 구역 형편을 보고한다. 주로 구역 내에서 사역하기 때문에 '구역권찰'로 부르기도 한다.]

 

   (2) 권찰의 십계

제 책상 위의 작은 책장에는 조그만 핸드북이 있습니다. 구역장·권찰이란 제목의 핸드북인데요, 여기엔 구역장과 권찰이 알아야 할 내용과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성경구절, 구역 기도회 일지, 구역헌금 장부 등 상세한 내용들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권찰의 십계>란 것도 있습니다. 재밌어서 제가 읽어드립니다.

 

구역장을 앞서지 말라.

보고시 구역장을 소외하지 말라.

파당을 짓거나 교우를 편애하지 말라.

수다를 떨지 말라.

금전거래 및 계놀이를 하지 말라.

심방시 오래 지체하지 말라.

자기 자랑을 하지 말라.

사생활을 침범하거나 누설하지 말라.

강압적이거나 투쟁적인 언사를 피하라.

비신앙적인 언사나 부정적 언사를 쓰지 말라.

 

어떻습니까? 재밌지요. 조금 유치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러나 어느 하나 필요하지 않은 게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처럼 권찰에 대해 말씀드리는 것은 권찰 직분을 우리 교회에 도입하자는 뜻에서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 현실에 맞는 제도를 채택해야 합니다. 다만 권찰이라는 직책에 담겨있는 그 사명만은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뜻에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교우들을 일일이 돌아보며 챙기고 기도해주는 이 권찰의 사명이야말로 더없이 소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야고보서 5:13-16

야고보 사도는 오늘 본문에서 믿는 자들이 생활하는 가운데 닥치는 여러 상황들에서 각각 어떻게 대처할지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약 5:13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고난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기도하십시오. 즐거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찬송하십시오.

 

야고보 사도는 고난 받는 사람은 기도를, 즐거운 사람은 찬송을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꼭 명심해야 합니다. ‘고난의 때에는 기도하고, 즐거운 때에는 찬송을 하는 것이 그 시기를 가장 잘 살아내는 방법입니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14절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병든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교회의 장로들을 부르십시오. 그리고 그 장로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고, 그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십시오.

 

아플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플 때에는 교회의 장로들을 부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장로란 오늘날의 목회자를 뜻합니다. 병든 사람을 치유하기 위하여 기름을 바르고 기도하는 것은 교회의 본래 사명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아주 초기의 교회 법전에는, ‘각 교회는 병중에 있는 여자의 간호를 위하여 적어도 한 사람의 과부를 임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병든 사람을 돌보는 일이 교회의 사명이었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의학이 발달하고, 의료보험과 간병제도가 발달한 오늘 우리 사회에서는 병든 사람을 돌보는 일이 교회의 임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적어졌습니다. 목회자들도, 교우들도 병든 사람을 돌보는 것이 교회의 주요한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실상 많은 질환의 경우, 병원으로 직행하여 치료받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병의 원인에 대하여 무지했고, 또 치료의 기술을 가지지 못했던 고대의 상황과 의료기술과 서비스가 보편화된 오늘의 현실에 똑 같은 지침을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만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통용되는데, 그것은 바로 병든 사람, 아픈 사람을 위하여 기도해주라는 겁니다. 15절입니다.

 

믿음으로 간절히 드리는 기도는 병든 사람을 낫게 할 것이니, 주님께서 그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또 그가 죄를 지은 것이 있으면,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간절히 드리는 기도는 병든 사람을 낫게 할 것이니,” 믿음으로 간절히 드리는 기도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능력은 기도자에게 나오는 것이 아니고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능력과 관계없이 기도하십시오. 주님의 귀한 역사를 체험하실 겁니다. 그러므로 나 같은 게 기도해야 뭐 해? 무슨 효과가 있겠어?”라고 하는 것은 나를 무시하는 겁니까? 주님을 무시하는 겁니까? 주님을 무시하는 것이죠. 기도의 능력을 부정하는 것은 주님을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그렇기에 성도들은 서로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 가운데 아픈 것이 치유되는 소중한 체험들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기적이 없다. 기적이 없다.” 하는데 기적이 없는 게 아닙니다. 기도가 없습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기적이 없습니까? 기도가 없지요. 믿음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3. 성도의 교제

   (1) 목양(牧羊)의 두 가지 방식

교회의 성도들을 돌보는 일에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하나는 목회자가 혼자 교우들을 돌보는 방식입니다. 다른 하나는 교우들이 서로 서로를 돌보는 방식입니다. 목회자 혼자 교우들을 돌보는 것이 일방적이라면, 교우들이 서로 서로를 돌보는 것은 상호적이지요. 이것이 목사 혼자 돌보는 것보다 성숙한 방식이라 하겠습니다.

 

규모가 큰 교회들의 목회 방침 가운데 하나가 더 크게, 그리고 더 작게입니다. 교회 운영에 있어서 더 크게란 설명하지 않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지요. 점점 더 규모를 키워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작게는 무엇입니까? 점점 더 커져가는 교회에서는 성도의 교제가 사라지고, 교우들을 돌보는 일이 소홀해지는 현상이 필연적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아주 작은 규모로 교우들을 조직합니다. 그래서 셀이라든가, 구역이라든가, 순이라든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작은 규모의 조직에서 성도의 교제와 교우들 상호간의 친교와 돌봄이 이루어지도록 도모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규모가 큰 교회의 자구책이 더 크게, 그리고 더 작게입니다.

 

   (2) 성도의 교제가 살아 있는 교회

성도의 교제와 돌보는 사명과 관련하여 모든 교우들이 이 사명에 힘써야겠습니다만, 그 가운데도 특별히 친교부가 이 사명을 책임 있게 감당해야 합니다. 병든 자들을 돌아보며, 이들을 위해 기도해주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아이고, 목사님! 병든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그러세요?” 혹시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요.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가만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나를 포함해서 죄다 환자들 아닌가요? 모두 다 아프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아프지 않은 분, 나는 아무데도 안 아프다는 분이 있으면 손들어보십시오. 우리가 이러 저러한 이유로, 보여 줄 수 있는 것과 보여줄 수 없는 이유로, 때로는 말로는 설명하지도 못하는 그런 이유로 아파하고 있지 않은가요? 그렇지요. 저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가 기도가 필요한 사람들이지요.

 

또 하나, 우리나라가 아프지요. 우리 민족이 아프지요. 우리도 아프지만 북쪽 사람들은 더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이 중차대한 문제를 우리의 소관이 아니라고 한다면, 우리교회가 기도할 과제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런 교회가, 그런 믿음이, 그런 신학이, 그런 신앙인들이 이 민족 앞에 과연 하나님이 쓰실 구원의 도구가 될 수 있을까요? 오늘은 6.25민족화해주일입니다. 이 민족의 아픔을 놓고 정말 아파해야지요. 기도해야지요. 오늘 본문 16절에는 의인이 간절히 비는 기도는 큰 효력을 낸다고 했습니다. 믿는 자들이 간절히 기도해야지요.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지 않는 한국교회의 죄가 큽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창립기념주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청소도 해야 하고요, 행사 준비할 것도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해마다, 이때가 되면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교회를 이루어야 할까?’를 되새기는 겁니다. 아픈 교우들을 서로 돌아보며 기도해주는, 성도의 교제가 살아있는 그와 같은 교회를 이루어야겠습니다. 성도의 교제가 살아있는 교회를 이루는 일에 힘을 다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잠시 묵상기도 드립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